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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가드너 Apr 17. 2024

신이 주신 축복

'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나만 보여  

   

나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분명히 가린다고 가렸고 피한다고 피했는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꼭 저만 시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얼굴이 너무 큰 거였어요. 한때 진지하게 ‘머리가 커서 고민이야’라고 고민을 털어놨는데 ‘어깨를 키워봐’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던 그 친구, 소두(小頭)였어요. 이런 고민을 고민하는 제게 부모님은 ‘머리가 크면 똑똑하다’라고 책임을 회피하셨죠.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인 외모로 약간의 불편한 점만 있을 뿐 사실 머리 크기와 삶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대두’, ‘가분수’, ‘큰 바위 얼굴’이라고 쉽게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얼굴의 각이 뚜렷이 드러나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강하고 늘 화가 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머리가 크면 맞는 헤드셋을 찾기도, 설령 찾는다 해도 장시간 착용 시 압력 때문에 쉽게 피로해지고, 크기에 맞는 모자를 구하기도 어렵다. 노화로 쓰게 된 대두 안경도 구입 후 가장 먼저 안경다리를 구부려야 했고, 심하면 목 디스크로 평생 치료가 아닌 관리를 해야 한다는 기사도 봤다.     


그러나 의외로 운명적인 장점도 있다. 평균치보다 두꺼운 머리 두께로 안면 방어력과 내구성도 좋아 종합격투기나 복싱 등 타격계통 스포츠를 할 때 맷집면에서 좀 더 유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단체 사진에서 무리 속 머리가 큰 나만 보인다는 고집스러움도 있다.          



고집과 아집사이     


한 달에 한 번, 고집과 아집 사이에 빠지는 날이 있어요. 미용실 가는 날요. 매번 가는 미용실, 미용사의 한숨 쉬는 소리를 들을땐 괜스레 주눅이 들어요. 한 마디 거들며 "저, 그래도 악성 곱슬은 아니죠?(웃음)"라며 멋쩍게 말을 건네요. 받아 주지는 않지만. 생머리만 환영받는 더러운 세상!     


'O씨성에다, 옥니이고, 곱슬머리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마라', 'O씨성 안은 자리엔 풀도 안 난다'란 두 속담은 모두 'O씨성 고집'이 얼마나 센지를 나타낸다. 확실한 근원이나 연원을 찾기 힘들지만. 곱슬머리에 대한 편견은 드라마나 미디어에서 '곱슬머리는 성격이 드세고 지랄 맞다'라고 안 좋게 표현되기도 한다. 세상에 다양한 머리카락이 존재하지만 ‘악성 곱슬머리’는 미용사들한테 항상 골칫거리다. 특히, 비 오는 날에 부스스해진 머리는 완전 노답. 운동선수시절 숏커트로 10여 년을 보냈던 기억에 매직머리만 고수했었다. 그러다 ‘축복받은 곱슬머리! 숏컷트로 샤프하게’라는 원장님 덕분에 매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린 딸이 당신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마치 마룻바닥으로 추락하는 와인잔 같이 

당신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겠지.

당신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야.

당연히 예쁘지, 우리 딸.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톱을 치켜세운 한편으로는

그래 당신은

딸아이의 양어깨를 붙들고서는

심연과도 같은 딸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는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까지 들여다보고는

그러고는 말하겠지.

예쁠 필요 없단다. 예뻐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건 네 의무가 아니란다.     


- 미국 시인 케이틀린 시엘 <그건 네 의무가 아니란다(It is not your job>  -


   



얼굴은 한 사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창’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매력, 개성이 얼굴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외모는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먼저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것도, 취업이 어려운 것도 외모가 문제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외모 콤플렉스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케이틀린 시엘의 시처럼 굳이 예쁠 필요는 없다. 곱슬머리에 머리가 큰 것도, 그건 내 의무가 아니므로.     

                                   

고집은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틴다는 의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지식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것만이 옳다고 여긴다. 나 또한 그렇다. '버틴다'는 느낌의 뼈대는 비슷할지 몰라도 긍정적인 느낌을 풍기고자 할 때는 '고집', 부정적인 느낌의 '아집'으로 온도 차는 꽤 크다.  


적당한 고집은 소신이 되지만 지나친 고집은 아집이 된다. 매 순간 내 것만을 주장하는 아집에 빠지지 않도록 고집과 아집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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