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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업무학개론

by 커리어걸즈

3년차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고등학교는 학창시절의 꽃이다. 학생들이 대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학교 현장에서 무수한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을 지도하고, 부끄럽지 않은 단단한 교육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학교에 출근한다.


교사를 꿈꾸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교직에 들어서기 전, 교사의 주업무는 당연히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사범대에서도 ‘좋은 수업’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 수업이 기다려질 정도로 몰입감 넘치는 활동, 학생들이 자신만의 상승 곡선을 그리는 수업, 여한 없이 수업에만 몰입할 수 있는 교사 이 삼박자를 갖춘 좋은 수업을 꿈꿔왔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180도 달랐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급급한 학생들, 공평한 평가를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 학교 업무에 치여 부랴부랴 수업을 준비하는 현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보다 학교 일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해.

신규 시절 동료 교사가 해주셨던 말이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감했다. 수업은 교사의 여러 업무 중 하나일 뿐, 온갖 종류의 업무가 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교사의 주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업무 내용은 학교마다 다름을 참고)


담임 업무: 교사의 꽃, 그러나 보이지 않는 노력의 연속

담임은 반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전담한다. 반 편성이 이루어지는 1-2월에 어떤 선생님이 무슨 반 담임 교사를 맡을지가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일 정도로 담임 교사의 역할은 중요하다. 출결 관리, 생활지도, 진학 상담, 생기부 작성 등 행정 업무 외에도,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겪는 크고 작은 갈등을 조율하고, 정서적 문제를 살펴야 한다. 담임 교사의 최대 과제는 ‘예방’이다. 반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수처럼, 교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재난 상황을 골든 타임에 맞추어 해결해내야만 한다.


특히 3년째 맡고 있는 1학년 담임의 업무는 생활지도에 방점이 찍힌다.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학기 초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며 마음 상태를 살피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직 입시의 때가 묻지 않아 순수하고 귀엽다. 일부 선생님은 1학년 특유의 해맑은 에너지가 좋아 1학년 담임을 ‘힐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꽤 있다. 다만, 새로운 환경 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취약해 학생들의 꾸준한 정서적 케어가 필수다.


2학년 담임은 조금 다른 색깔을 띤다. 이 시기의 주된 업무는 진학 상담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업 방향을 정하고 수시와 정시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학교도 이 시점에서 학생들의 성향과 학업 스타일을 반영한 반 편성을 고민한다. 담임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옆에서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는 마치 대입이라는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학생들을 안내하는 ‘셰르파’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3학년 담임은 그야말로 대입의 엔드게임이다. 담임의 입시 이해도가 학생들의 수시,정시,논술 등 입시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보력’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 개개인의 내신, 비교과, 모의고사 데이터를 분석해 적합한 대학과 학과를 추천하는 일이 고3 담임 업무의 코어다. 고3 교실은 대체로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아이들이 입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야말로 고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필요한 학년이다.



부서 업무: 학교를 움직이는 톱니바퀴 6개

현재 재직 중인 학교는 크게 6개의 부서로 나뉜다. 부서 업무는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행정적 요소들을 맡는다. 학교의 안정성과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교사 개개인의 역량이 크게 요구된다.

교무부: 학교 운영의 심장부다. 고사 및 학적 관리, 출결과 수행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정확하고 체계적인 운영이 요구된다. 바쁜 부서이지만 업무 매뉴얼이 잘 정리되어 있어 안정감을 선호하는 교사들에게 인기다.

연구부: 교내 연수와 교육자료를 기획하며, 교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허브’다. 젊고 열정적인 교사들이 특히 선호한다.

생활안전부: 학교폭력, 도난, 흡연 등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는 부서다. 마치 학교의 경찰 같은 역할을 하며, 업무의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창의체험부: 교내 축제와 행사 기획을 맡는다.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부서지만, 매뉴얼 없는 업무가 많아 유연한 대처와 창의력이 필요하다.

과학정보부: 디지털 기기 관리와 AI 교과서 도입 등 최근 주목받는 부서다.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교사들을 돕는 일도 이 부서의 주요 과제다.

인성복지부: 학생들의 정서적 어려움을 지원한다. 코로나19 이후 정서적 위기가 증가하면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교과 업무: 교사의 본질,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

교과 업무는 교사가 맡은 과목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영역이다. 수업 준비, 중간·기말고사 출제, 수행평가, 교과 행사, 세부능력특기사항 작성 등 다양한 업무를 아우른다. 특히 고등학교는 평가 업무가 중요하기에, 작은 실수 하나도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민원이 잦은 학교일수록 교사들은 평가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학교 업무는 그 자체로 어렵다기보다는 다양성과 무게감에서 오는 복잡함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담임, 부서, 교과 업무라는 세 축을 저글링하며 매일 우선순위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수업이 뒷전이 되는 암울한 현실도 마주한다.


학교 학사일정이 매년 비슷하게 흘러가 연차가 쌓이면 업무 처리에 있어 자신만의 노련미가 더해진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꽉찬 육각형 같은 교사로 성장하고 싶다. 그런 저를 위해 오늘도 정신없이 저글링하며 학교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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