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을 3년간 맡았다. 같은 학년이지만 매년 새롭다. 사람 MBTI가 다 다른 것처럼 한 반에 30명의 학생들이 있으면 30명의 다른 인격체들이 공존한다. 한 덩어리처럼 똘똘 뭉치는 반도 있었고, 개성이 강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반도 만났다. 3월 입학식부터 12월 방학식까지의 여정을 소개한다.
빳빳한 교복을 입은 병아리들과 맞이하는 3월이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설렘 반 긴장 반을 안고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선다. 번호 순대로 앉은 자리에서 아이들은 서로 조금씩 말을 섞으며 어색한 친목을 다진다. 담임은 신학기 면담 주간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살펴본다. 노련한 담임은 면담 주간에 학생들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지도한다. 초임 때는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는게 그 자체로 긴장된다. 개학식 날 교실에서 입학식을 진행해야 하는데 안내문을 잘못 읽고 강당으로 저희 반 학생들을 데리고 간 일화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학생 면담 후 학부모 총회를 준비한다. 담임으로서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소개하는 시간으로 학부모님들께 처음 인사하는 자리다. 우리 반은 보통 총회 시작 전에 음악을 트는 편이다. 학부모님이 들어오시면 아이의 얼굴과 닮아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과의 첫만남이 이루어지는 바쁜 3월이다.
정신없는 3월이 지나면 중간고사가 찾아온다. 고등학교 첫 시험이다 보니 학생들이 매우 긴장한다. 담임 교사로서 아이들을 살펴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면학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비타500, 에너지바, 사탕 등 소소한 간식과 응원문구를 적어주며 학생들을 응원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 반에는 ‘나곰돌’이라 불리는 큰 곰이 있다. 학교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곰으로 1학년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마스코트다. 저는 나곰돌 로고가 붙은 간식 세트를 선물한 기억이 난다. 첫 시험이라 아이들을 소소하게 챙기면 반 분위기도 좋아지고 긴장도 조금 풀린다.
첫 시험이 끝나면 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해진다. 5월에는 스승의 날과 현장체험학습이 있다. 교사가 가장 사랑받는 달로, 학급 반장을 중심으로 선생님을 위한 비밀 아닌 비밀 이벤트를 학급에서 준비한다. 손편지, 간식, 귀여운 율동까지 1학년 병아리들의 재롱을 만끽할 수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현장체험학습 주간이다. 2박3일 숙박하는 활동이어서 학생 간 교우관계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반배정부터 조별 활동까지 학생들 간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체험학습 후에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많아 매의 눈과 같은 관찰력이 필수다.
다사다난한 5월이 지나면 기말고사가 찾아온다. 5월 말~6월 사이가 수행평가 주간이어서 학생들의 피로도가 높은 시기다. 우리 반은 현장체험학습 마치고 면담 주간을 진행하는 편이다. 학생 관계도도 살피고 2학년 선택과목 선택 현황도 확인한다. 이 시기에 학생들 중에 수포자(수시 포기자)가 나온다. 아직 1학년 1학기 성적이 다 나오지 않았는데, 첫 시험을 잘 보지 못해 자신감이 떨어진 학생들이 많아진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챙기고 뼈 있는 말로 응원해야 한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내심 귀담아듣는다. 이 시기에 담임은 치어리더처럼 아이들의 에너자이저가 되어줘야한다.
기말고사 끝나면 학교는 놀자판이 된다. 여름이고, 날은 부쩍 무더워진다. 이 시기에 학급 이벤트를 기획하는 학급이 많아진다. 우리 반은 화채 만들기를 했다. 아이들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방학 맞이 전 반 전체가 협업하는 활동을 하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좋은 추억도 덤으로 생긴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학생들은 한층 피로해진 모습으로 교실에 돌아온다. 3월보다 어른스러워지고 중학생 티를 벗는다. 고등학교 입시 특성상 아이들은 여름방학에 학원을 많이 다닌다. 학원에 갇혀 산다는 표현이 적절하니다. 학원-집 무한반복을 해 기력이 소진된 아이들을 8월에 맞이한다. 담임 면담 주간에 "선생님 저 학원에 감금되었어요…", "방학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등과 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8월 중순에 개학하면 한 달 뒤에 중간고사가 기다리고 있다. 방학 동안 학생들은 중간고사 준비를 위한 공부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험 일정이 빨리 다가와 교실에는 긴장감이 돌고 담임 선생님도 고사 업무로 바빠 반에 비교적 신경을 쓰기 힘든 시기다.
중간고사 지나면 행사의 꽃 10월이 찾아온다. 10월에는 반별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학교 축제 행사 3콤보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신경은 오로지 행사에 가 있다. 반별 현장체험학습은 담임 교사의 센스가 발휘되는 영역이다. 놀이동산, 한강, 공연, 전시 등을 자주 간다. 우리 반은 북촌한옥마을을 선택했다. 내향적인 아이들이 많은 반이라 정적인 공간에서 반 아이들과 한 박자 쉬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 해 반 아이들의 성향에 맞춰 장소와 활동을 구상하는 게 중요하다.
체육대회는 학급 임원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학급 반티 선정, 운동 종목 대표 선정, 응원 단장 선출 등 학급 내 의사결정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반에서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는 계주를 가무에 능한 아이는 응원 단장을 맡는다. 반에서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학생들의 의외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행사가 많다보니 학생 간 불화도 자주 발생한다. 불화의 소재는 대체로 학생들 간 의견 불일치가 많다. 이 시기에는 담임이 학급 임원과 적극 소통하며 학급 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체육대회는 체육과에서 주관하는 행사여서 체육 선생님께도 자문을 구해 학급 내 문제를 전달받기도 한다.
행사 주간이 지나면, 기말고사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여서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는 시기다. 선택과목 마감도 이 시기에 이루어져 학부모와의 연락이 잦아진다. "선생님, 과탐 3과목 중에 물리를 선택해야 할까요?", "사탐 3과목 선택했는데, 과탐으로 하나 바꾸려고 합니다.", "저희 아이가 사탐 1개 과탐 2개로 하려고 하는데요, 어떤 과목으로 할까요?" 등의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학생의 성적에 맞추어 조언을 하는 편이고, 답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을 때는 고3 선생님께 찾아가 질문하기도 한다. 수시, 정시, 논술 대입 정보는 넘쳐나고 명확한 답이 없고 자녀의 1학년 내신은 거의 끝나가 학부모의 불안도가 높아지는 시기다. 학부모와 학생의 니즈를 파악해 그에 맞는 답을 신중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에 많은 담임 선생님들이 체력적으로 소진되는 경우가 많고, 건강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기말고사 마치고 반은 본격적으로 숙면 모드에 돌입한다. 겨울잠에 들어간 곰처럼 두꺼운 패딩으로 몸을 감싸 잠을 자는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주간에 소소한 학급 이벤트를 꾸리는 학급이 많다. 재작년 반은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진심이어서 아이들이 쿠키를 직접 굽고 반별 퀴즈를 준비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올해 반은 연말 영상제 주간을 꾸려 1년 동안 있었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 반에서 감상했다.
긴 겨울방학 후 신학기 준비 기간이 찾아온다. 2학년 반배정 결과에 학생들은 일희일비하고 다사다난했던 1학년을 마친다. 담임 선생님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는 반도 있고 꽃다발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2학년에도 즐겁게 학교 생활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낸다. 초임 때는 종업식 마치고 퇴근길에 울었던 기억이 남는다. 담임과 아이들 모두 처음이었던 일년이 끝났다는 것에 시원 섭섭함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도 매년 새로울 담임 업무입니다. 학생들한테 가장 큰 상처와 기쁨을 받으며 교사 또한 성장한다. 지금 반도 앞으로 만날 반 아이들이 저를 만나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나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