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등학교 교과 업무의 사계

by 커리어걸즈

지난 3년 동안 고등학교 1학년 영어과 업무를 맡았다. 영어과는 학년별로 네 명의 선생님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14개 반의 수업을 담당한다. 수업 외에도 매달 빼곡히 이어지는 교과 업무가 있다. 이제 1학년 영어과 업무의 1년을 따라가 보자.


2월: 신학기 준비 주간 – 첫 단추를 꿰다

교과 팀이 정해지면 시수 배정과 업무 분장이 시작된다. 교과 주임이 팀원 간 업무를 배분하고, 팀 회의를 통해 수업 방향을 논의한다. 이 시기에 학업 계획서를 작성해 1학기 전체 일정을 정리하는데, 이 작업이 1년 업무의 초석이 된다.


3월: 가보자고, 중간고사

신학기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중간고사 출제를 준비해야 한다. 영어과는 한 달 동안 출제를 준비한다. 내신이 치열한 학교여서 출제에 대한 부담이 크다. 시험 문제는 ‘편집’을 맡은 교사가 중심이 되어 출제와 검토를 진행한다. 출제자들은 이원목적분류표를 작성하고, 회의를 통해 난도를 조율하며, 반복적으로 문제를 검토해 오탈자를 잡는다. 특히 1학년 첫 시험은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가늠하고, 1~2등급 컷을 확인하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한다.


4~5월: 수행의 계절

이 시기에는 수행평가 준비와 진행이 주를 이룬다. 말하기, 쓰기, 듣기 등 여러 영역에서 공정한 평가를 위한 기준과 활동지를 마련한다. 가장 골칫거리는 수행평가 미응시자다. 특히 최성수(최소성취수준) 대상 학생은 장기결석이나 학교 부적응 사례가 많아 담임 선생님과의 협조가 필수이다.

“00쌤, 000 학생 오늘 등교했나요? 점심시간에 수행평가 볼게요!”

이런 대화가 교무실에서 자주 들리는 시기다. 한 선생님당 약 200명의 수행평가를 채점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6~7월: 마무리해보자고, 기말고사

수행평가 주간이 끝나면 기말고사를 준비한다. 이때는 교사들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시기다. 기말고사 출제를 마친 뒤에는 과세특(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을 기재하며 학기를 마무리한다. 세특은 학생들의 활동과 성취를 기록하는 중요한 작업이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여름방학 직전까지 교사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8~9월: 어머나, 벌써 중간고사?

여름방학 후에는 2학기 학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중간고사 출제를 준비한다. 방학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진행되는 시험이라 시간 압박이 심한 시기다. 학생들은 방학 동안 학원에서 공부했지만, 교사들은 아직 다 나가지 못한 진도와 시험 범위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0~11월: 비교적 여유로운 수행평가

2학기 수행평가는 1학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여서 학생들도 비교적 여유롭게 임한다. 이 시기에는 영어과 선생님들이 1~2차시 동안 특별 수업을 기획하기도 한다. 올해는 콜롬비아 대사관을 방문해 대사와의 만남을 주선했는데,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11~12월: 세특세특세특

기말고사 출제를 마치면 2주 동안 과세특 기재에 몰두해야 한다. 1월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지만, 방학을 하루라도 더 누리고 싶은 선생님들은 12월에 마무리 짓는다. 1년 동안 진행했던 수행평가와 교과 시간에 학생의 활약 등을 종합해 기재한다. 자소서가 폐지되어 대입에서 과세특의 비중이 많이 상승했다. 세특을 정신없이 쓰다보면 어느새 12월 말이다.


영어과 업무는 팀워크가 핵심이다. 출제와 평가처럼 민감한 일이 많아 팀원 간 긴밀한 소통이 필수다. Queen의 “The Show Must Go On”라는 노래처럼 어떻게든 해내야만 하는 업무들의 연속이다. 교사로서 어려운 과정을 헤쳐 나가며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1년 내내 고되고 치열하지만, 그 속에서 교사도 성장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사가 되고자 오늘도 노력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등학교 1학년 담임의 사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