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사가 겪는 오해
교사의 직업 인지도는 굉장히 높다. 인지도가 높다는 말 속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교사를 접하고 교사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 모여 교사의 사회적 이미지를 만들고 이는 직업적 편견으로 이어진다. 이번 에피소드에는 교사를 향한 오해와 편견을 다룬다.
"저 고등학교 선생님이에요."라고 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있다.
"우와~! 방학이 있는 직업.. 너무 부러워요!"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면 맛집도 많이 다니고 취미 생활도 즐길 수 있겠네요!"
교사는 기본적으로 워라벨이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저도 교직에 들어서기 전에는 교사 워라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현실은 사뭇 다르다. 우리 학교는 조례가 8시여서 7시 30-40분까지 출근한다. 퇴근 시간은 16시지만 담임의 경우 종례와 학급 청소가 있어 16시 20-30분 사이에 퇴근한다. 점심시간인 11-12시를 제외하면 8시간 30분을 근무한다. 일주일에 대략 42.5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9-18시에 근무하는 회사원들과 비교하면 근무시간이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6시 30분 퇴근은 부서,담임,교과 업무가 비수기일 때 가능한 퇴근시간이다. 출제 기간, 부서 업무가 많은 시즌에는 야근도 함께 따라온다. 고등학교는 출제의 부담이 크고 저희 학교는 출제를 한 달 내내 준비한다. 주말에 무거운 학교 노트북을 챙겨가 문제 출제, 검토, 편집 등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출제 기간은 1학기에는 3-4월, 6-7월 2학기에는 9월, 11-12월로 학기 업무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변별의 부담도 높아 업무 곤란도도 상당하다.
출제 업무와 함께 부서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함께 병행하며 진행해야 한다. 현재 속한 부서는 창의체험부로, 5,10월에 큰 행사가 학기별로 있다. 교내 축제가 있는 10월을 위해 일년 내내 준비한다. 축제가 임박한 10월에는 일주일 내내 밤 10시까지 야근한다.
설상가상으로 바쁜 와중에 담임 업무도 맡는다. 학교폭력, 학부모 민원, 학생 면담 등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교실 내 최대 약자는 선생님이다. 교실 내 발생하는 모든 사안을 면밀하게 살피고 기록하고 아이들을 살펴가며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일상이다. 엑셀처럼 숫자가 딱딱 떨어지는 업무보다는 감정 소모와 노련한 대처를 요구하는 일들의 연속이어서 업무의 정서적 피로도가 높다. 동료 교사들 간에는 ‘방학이 없으면 학교는 폭발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쉼은 교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네 일, 내 일’을 칼 같이 구분할 수 없는 잡무가 많다. 부서 내에서 ‘전시팀’과 ‘공연팀’을 구분해도 행사 관련 물품이 도착하면 ‘택배 분류 담당’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같이 택배를 정리하고 물품을 분류한다. 공무원 사회 특성상 비교적 어린 신규에게 택배 정리 업무도 맡기는 일이 흔하다. 이런 이유로 신규 교사들 중에서는 2-3년 근무하고 의원면직하는 경우도 많다.
분주한 학교에서 재미를 찾는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교사가 적게 일하고 많이 쉰다는 말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학교와 학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태평양을 가르는 큰 고래를 학교에 빗대어 보면 고래의 배에 붙어 있는 작은 상어와 잡어가 학원이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00고 00 교과 전문 학원! 15년 부동의 1등", "00 내신은 00학원이 잡아줍니다."과 같은 홍보 문구가 버젓이 붙어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 이미 충분히 레드오션인 입시가 메가레드오션으로 변모했다.
Z세대(성인이 되기 전부터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세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입시에 진지하고 성적에 집착한다. 유명 학군지에는 ‘자퇴 트렌드’가 돌고 있다. 내신 4-5등급대 되는 아이들은 수포자(수시 포기자)가 되고 더 나아가 학포가(학교 포기자)가 된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정시로만 대학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한다. 이들의 선택 뒤에는 학원의 입김이 거하게 작용한다.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쌤을 믿는 세대다. 학원 열풍은 과거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강했으나 여느 때보다 학원의 파워가 막강함을 실감한다. 내신을 챙기는 1-2등급대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2024년에 흥행한 드라마 <졸업>에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표상섭)에게 시험 문제 이의제기를 하러 찾아온 학원 강사(서혜진)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는 평가를 진행하는 내신 평가원이고 사교육에서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교육 구조를 잘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한다.
"학교쌤보다 학원쌤이 더 잘 가르쳐요!"
통탄스러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 진심으로 반박할 수 있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 EBS 강사로 활동하거나 남다른 수업을 선보이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하지만 담임, 교과, 부서 업무의 챗바퀴 속에서 돌고 돌아야 하는 교사가 수업 준비에 있어 학원쌤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까?
3년 동안 학교에서 일하다보니 여러 업무를 쳐내고 쳐내다 보면 수업 준비가 후순위가 된다. 수업 내용도 포드식 공장에 나온 것처럼 획일화되어야 하는 부담도 크다. 앞반 뒷반 선생님과 짚은 내용이 동일해야 하고, 추가 자료와 설명은 교과 회의를 거쳐 논의된 후에 공유되어야 한다. 지문에 대한 질문도 현장에서 즉답하지 못하고 교과 회의를 통해 공통된 답변을 내놓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교사의 획일화된 수업에서 학교는 평가의 공정성을 지켜내야만 하는 기관임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암울한 현실을 비판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교사의 수업은 학원의 것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학원은 ‘평가’에 치중된 기계식 교육에 가깝다. 최단 시간에 지문을 분석하고 문제를 푸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훈련소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인적 배움을 선물할 수 있는 유일무일한 공간이다. 집-학교-학원을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학교 수업만이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 1번지다.
수업 주제와 연관지어 아이들의 생각을 말 또는 글로 표현하는 활동을 미약하게나마 시키려고 노력한다. 교내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수업에 배운 지식을 활용해 사고를 펼칠 수 있는 답 없는 활동을 진행하는 걸 좋아한다. 평가의 굴레에 벗어나 배움에 임하는 경험은 교사가 만들기 나름이다. 더 많은 교사가 교직에 들어선 초임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좋은 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