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직업이 그렇듯, 분기별 업무에 따라 하루 템포가 달라진다. 고1 담임, 교과, 창의체험부(부서) 업무를 일년 간 맡으면 업무의 분주함이 다음 표로 정리된다.
일반적으로 9~10월은 여느 교사에게 힘든 시기다. 2학기 개학과 함께 밀려오는 교내 행사 및 각종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해서 야근도 많고 정신 없다. 간혹 칼퇴를 사수하며 모든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선배 교사도 있다. 테트리스처럼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해 일이 과하게 쌓이지 않도록 효율적인 업무 블록 쌓기를 선보인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 완벽한 일 처리는 저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이번 편은 3년차 교사의 하루가 흘러가는지 소개한다. 가장 바쁠 9~10월의 일과를 다루겠다.
우리 학교는 아침 조례가 7:50 ~ 8:10분까지다. 저의 하루는 7:30분부터 시작해서 16:30분에 끝난다. 9 ~ 10월이 되면 하루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것을 실감한다. 교무실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지만, 7시에 출근하는 얼리버드 선생님도 여럿 계시다. 체감상 교사 중에는 아침형 인간이 많다. 아무래도 나인 투 식스 직장인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직업군이라 그런 듯 하다. 교무실에 도착하면 업무용 노트북을 키고 여유가 있으면 책상 정돈도 조금 한다. 7:30 ~ 40분 사이에 학부모 문자가 많으면 6 ~ 7건 온다. 인정 결석을 사용하는 학생, 복통으로 출발이 늦어지는 학생, 병원 방문으로 점심에 도착하는 학생 등 다양한 사유로 지각과 결석을 신청한다. 업무포털 나이스에 출결 현황을 표기하고, 7:50분 즈음 조례하러 교실에 간다. 교실 출석부에도 출결 현황을 표기하고, 학부모님 연락이 따로 없었으나 학교에 도착하지 않은 학생들의 출결 유무도 확인한다. 학부모와 학생에게 전화하여 지각하는 학생의 도착 시간을 물어본다. 단골 지각생들은 타종 시간 8시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교실 문을 통과하지만, 간혹 성실하게 학교를 나오는 학생이 특별한 사유 없이 늦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경우, 학부모와 짧게 면담해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조례 시간에는 학급함 (가정통신문 및 유인물을 비치하는 함)에 있던 유인물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안내하고 중요 공지사항이 있으면 전달하고 칠판에 작성한다. 고등학생들은 밤 늦게까지 공부해 조례 시간에 졸거나 멍 때리는 아이들이 많다. 구두로 중요 안내사항을 전달하고 카톡방으로도 한번 더 공지하는 편이다. 출결과 전달사항이 정리되면 교무실로 복귀한다.
고등학교는 1 ~ 3교시까지가 오전 수업이고 4교시 ~ 7교시가 오후 수업이다. 1교시는 50분 수업으로 운영된다. 수업 시간표에 따라 수업과 공강 시간으로 나뉜다. 수업 시간이 많은 날은 보통 4교시(200분)이다. 5~6시간 수업이 기본인 학원에 비해서는 수업 시간이 적지만, 정시 퇴근인 16:00 전까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학교 특성을 고려했을 때는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다. 공강 시간이 많은 날에는 비교적 느긋하게 업무에 임할 수 있어 좋다. 조례 후 밀린 쿨 메신저 (교사 메신저 플랫폼)을 읽는다. 9 ~ 10월은 학생 선택과목 안내, 체육대회, 학급 소풍 등과 관련된 안내가 온다. 작년에는 고1 대상으로 디벗(디지털 벗)으로 아이패드를 지급해 2학기에는 관련 공문 검토와 안내로 분주했다. 부서 업무로 바빠 쿨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날에는 중요해 보이는 메세지를 저장하고 공강이 많은 시간에 몰아 읽기도 한다. 메세지 확인을 마친 후 K에듀파인 문서등록대장에 들어가 교내 공문을 열람한다. 문서등록대장은 교내에 일어나는 일을 확인할 수 있는 뉴스 포탈이다. 인사위원 회의록, 요보호 학생 명단, 공무원 복지 관련 안내 등 중요 자료가 올라가 바쁜 날에도 최소 한 번은 확인하는 편이다. 메세지와 공문 확인을 완료한 후, 부서와 교과 업무에 집중한다. 9~10월은 교내 행사 준비로 바쁜 시기다. 부서원들 공강 시간에 맞추어 축제 진행 현황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하고 업무 분장을 정리한다. 행사 예산, 업무 편성, 협조 사항 등을 문서로 정리해 부장과 진행 현황을 공유한다. 부장님께서 행사 내용을 컨펌하면 행사 관련 부원 및 선생님과 컨텍해 준비사항을 정리한다. 기획 업무는 행사의 큰 흐름과 진행을 담당해 부서 회의와 보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학생회와 진행하는 행사여서 학생회를 관리하는 생활안전부와도 행사 사항을 컨펌하고, 학생회장과 부회장과도 행사 준비를 진행한다. 교과 업무로는 중간고사 출제가 있다. 시험 범위를 같은 1학년 팀인 선생님들과 논의하고 시험 원안을 편집하는 편집자를 선정한다. 편집자는 대학교 팀플의 조장과도 같은 역할이다. 원안 편집부터 제출까지 출제 총괄을 맡는 중책이라 책임이 크다. 편집자가 시험 출제 관련 안내 사항을 정리하면 그에 맞추어 팀원들은 출제를 준비해야 한다. 영어과의 경우 10월에 시험이 있으면 9월 한 달 내내 시험 준비에 돌입한다. 같은 출제팀인 교과 교사와 공강 시간을 맞춰 시험과 관련된 중요 논의 사항을 만나서 정리한다. 업무와 관련한 ‘소통’은 대체로 오전에 처리하는 편이다. 오전에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오후 업무의 얼개가 잡힌다.
우리 학교는 점심 시간이 이른 편이다. 식사는 부서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분위기다. 모든 교사가 급식을 먹지는 않는다. 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락을 싸오는 교사도 꽤 있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는 외식파도 있다. 학교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교사도 많다. 물론 학생들은 배달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안내한다. 식사 후 인근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거나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자유 시간을 즐긴다. 간혹 이 황금같은 휴식시간에 조퇴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은 조퇴증이 있어야 조퇴를 할 수 있고, 조퇴증은 담임 교사가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던 중에 갑자기 학생 편으로 전화가 와서 교무실로 뛰어가야 하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평화로우면서도 돌발 상황도 발생하는 점심시간이다.
오전에 논의된 부서 및 교과 업무 사항을 반영해 오후에는 문서 작업에 몰입한다. 부서 업무는 대체로 행사 관계자와 공유할 안내사항을 파일로 준비한다. 행사가 있는 10월에는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주문해야 해서 오후에 행정실을 자주 방문한다. 교과 업무로는 출제 외에도 수업 준비가 있다.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수업 PPT를 만들어야 해서 오후에는 수업 자료 만들기로 분주하다. 9~10월은 선택과목 관련해 상담을 신청하는 학부모도 있어 학부모와 전화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체육대회, 소풍, 축제로 행사의 꽃인 10월에는 학급 내 갈등이 깊어지는 일도 종종 생긴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 상담 전화와 담당 교사 보고 등으로 오후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15:58분 즈음 종례를 위해 교실을 간다. 교실을 가기 전, 쿨 메신저와 학급함 유인물을 확인해 중요 안내사항이 있는지 점검한다. 종례시간은 짧고 굵게 끝낸다. 17:00 ~ 18:00가 학원 시작 시간이라 학생들은 저녁을 먹을 마음으로 정신이 가 있다. 안내 후 청소당번과 함께 교실 청소를 진행한다. 청소를 마치면 대략 16:15-20분이다. 퇴근 전 놓친 쿨 메신저를 확인하고 분주한 하루를 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