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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사의 고난과 극복

by 커리어걸즈

모든 일은 힘들고 어렵다. 학창시절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고 꿈을 쫓아 교직에 들어왔지만 현실은 ‘임용 수업 실연’처럼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대학교 화석이 학교 막내?

우리 학교 교원수는 약 90명으로 타 학교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20대 선생님이 3-4명 남짓이다. 30대도 20-30명 정도이고 4-50대 라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학부를 졸업할 무렵 나름 고학번이었던 내가 학교에서는 가장 어린 막내가 되었다. 나이도 어리고 교직 경험도 0에 수렴해 학교 업무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다. 같은 선생님이어도 나이차가 기본 10-20년 나는 선배 교사와 일하는 근무 환경이어서 말과 행동을 특히 조심했다. 사립 학교는 근무지 변동이 없어 옆자리에 앉은 동료 교사가 평생 동료다. 미디어에서 비판하는 MZ로 비춰지고 싶지 않아 초임 때는 선생님 간의 ‘관계’에 포커스를 두었다. 복장 관리에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1년차 때 일다. 임용 공부할 때 애용했던 바지를 입고 출근한 적이 있다. 무릎 위를 조금 넘는 짧은 기장의 바지였고, 저의 착장은 선배 교사의 지적으로 이어졌다.


바지 너무 잘 어울려요!
하지만 학교에서 입기에는 적절하지 않아요.


학교가 처음인 저를 위해 학교의 룰을 알려주는 선배 교사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학부 시절에도 ‘선생님처럼 입는다’라는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포말한 룩을 선호했지만, 이 날만큼은 학교 특유의 보수성에 숨이 턱 막혔다.


평균 연령이 높아 디지털 문해력도 교사마다 편차가 크다. 엑셀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업무 능력자인 선생님도 계시지만, 듀얼 모니터 사용법을 모르고 모니터를 메모 부착판으로만 사용하는 아날로그형 교사도 많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어서 안정성이 높은 점이 교사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다. 연수도 듣고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선생님은 소수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에 따라가지 않는 선생님이 많다. 같은 교직에서 일하는 모든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조직 문화의 특성이 갖고 오는 한계에 부딪히며 아쉬움을 느꼈다. 선배 교사가 저에게 해준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교사는 본인이 어떻게 하기에 따라 가장 편한 직업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도전적인 일이 될 수도 있어.


이 말에 100% 공감한다. 교사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업무의 깊이가 달라진다. 교직에서 ‘참교사’나 ‘열정’은 결코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다른 교사보다 눈에 띄게 노력해 과한 에너지를 소진하는 부류의 교사를 농담조로 놀릴 때 쓰는 말이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은 ‘열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참교사’가 되고 싶은 저경력 교사다. 학교를 2-30년 근무한 선생님 중에도 ‘열정’을 품은 참 선생님들이 많고, 이들을 롤 모델로 삼는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으로 좋은 학교를 선생님들과 만들고 싶다.


선생님도 이번 생에 선생님이 처음이라…

20대 교사는 학교에서도 담임 반에서도 막내다. 학생들은 이미 최소 9명의 담임 교사를 경험한 베테랑 학생이지만, 저는 담임 경험이 5번도 안되는 병아리 교사다. 학부모 네트워크 망이 발달한 학군지여서 입시 박사인 어머님이 학생들의 든든한 서포터인 점도 큰 부담이다.


학창 시절 담임하면 떠오르는 노련하고 든든한 이미지는 저와는 거리가 멀다. (잊지 말자, 누구나 입학식 날 안내를 잘못 이해하고 아이들을 강당으로 이끈 어리버리 담임인 시절이 있다) 1년차일 때는 학교 지리에도 약해 분리수거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교실 쓰레기 봉투 묶는 법도 잘 몰라 중학교 때 분리수거를 많이 해 본 학생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 앞반에는 수행평가 안내문 뿌렸는데요 저희반은 오늘 나누어주나요?”라고 반장이 물어보면 그때서야 학급함에 유인물을 놓고 왔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우당탕탕한 신규 담임 생활 그 자체다.


물론, 모든 신규 교사가 똑같지는 않다. 담임 경력 1-2년차에도 교실을 모델 하우스처럼 깨끗하게 관리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한석봉도 울고 갈 정도의 필체로 중요 안내사항을 게시판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본투비 담임 선생님도 있다. 초임 때는 저보다 유능한 선생님들과 비교하며 저의 부족함에 스스로 손가락질했다.


사범대학교에서는 교안 작성법과 교수법만 공부했지 청소당번표 만들기, 1인1역 정하는 방법, 학부모 총회 준비하는 법 등을 배운 적은 없다. 말 그대로 헛똑똑이 신규였다. 담임 업무는 담임 교사의 고유 영역이라 독립적이다. 담임 업무 메뉴얼이 따로 있지 않고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배우는 일이 더 많다. 절벽에서 첫 비행을 하는 새가 날개짓을 하며 하늘을 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처럼 담임 업무도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체득한다.


누구나 신규 시절을 거치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건넌다. 낯설고 힘들어도 그 직업만의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하고 계속 나아가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동료도 사귀면 더 힘차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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