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이해학으로 확인하는 나의 본모습
* 이 글은 출판 예정 도서 《자기이해학》의 일부 내용을 브런치 독자분들께만 미리 선공개하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막연했던 내면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답게 살아가는 실마리를 발견해 가세요.
“네가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우리 집에 있는 돌순이도 웃겠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MBTI를 주제로 이야기하던 중, 저의 유형이 INTP이라고 말하자 돌아온 반응이었습니다. 친구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을 이었습니다. “수학 시간에도 음악 시간에도 제일 까불거리던 네가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너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한테 까불다가 3학년 체육 선생님한테 교무실로 끌려갔던 것 생각안나냐? 넌 그때 우리 반에서 제일 앞장서서 까불거리는 놈이었어.”
친구와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인 돌순이가 저를 내향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소위 ‘인싸’까지는 아니었어도, 늘 학급의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옆 반과의 축구 시합에 나갈 엔트리를 직접 짤 정도로 운동장에서도 목소리가 컸습니다. 친구들에게 저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확신의 외향인’이었습니다. 돌순이와 함께한 캠핑장에서의 모습처럼, 저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활기차고 외향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였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친구가 묘사한 그 활기찬 모습이 곧 저의 본 모습이라 굳게 믿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제가 맡았던 역할들 또한 외향성을 요구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가지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서 다져진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호주에서는 낯선 이방인들이 사는 집들의 문을 두드리며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었고, 아프리카의 거친 건설 현장에서는 수십 명의 작업자들을 진두지휘하는 총괄자로 살았습니다. 함께 땀 흘린 선배들은 저를 두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함 없이 나서는 전투력 강한 인간”이라 평하곤 했습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저는 언제나 외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가 강제로 멈춰버린 병상에 누워서야, 저는 비로소 ‘세상이 규정한 나’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위중한 상태라는 것, 그리고 몇 주 뒤 천신만고 끝에 수술대에 오른다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의사의 서늘한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 사형 선고와도 비슷한 말 뒤에 저를 가장 먼저 집어삼킨 감정은 공포감보다는 지독한 실패감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무너져 버린 저의 비참한 상황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저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기를,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생사의 문턱에서 마주한 진짜 제 모습은 타인의 위로조차 침범으로 느껴질 만큼 철저한 고립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부와 연결된 모든 선을 스스로 끊어내고 실존이라는 밑바닥에 홀로 던져지자, 그 적막한 틈을 타 평생을 외면해왔던 내면의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소임이라는 소란스러운 소음에 파묻혀 보지 못했던 진실들, 화려했던 외향적인 모습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불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던 사실을, 저는 그제야 똑똑히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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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인증한 맛집이라고 해도, 그 긴 대열에 합류해 내 차례를 기다리는 행위에는 좀처럼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발길을 이끄는 곳은 대중의 선택을 받은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은 골목 끝의 낯설고 투박한 식당이었습니다. 주말에는 방 안에서 고립될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금요일 저녁에 남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서라도 약속을 치러버리려 애쓰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외 프로젝트 당시에는 같은 숙소를 쓰던 엔지니어들이 “주말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서운함 섞인 불만을 터뜨렸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세상의 요구에 맞춰 ‘전투력 강한 인간’으로 분장했던 소란스러운 낮 시간이 지나면, 저는 다시금 나라는 동굴 속으로 깊이 숨어들어 소모된 영혼을 간신히 수습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업무적인 궤적을 찬찬히 복기해 보아도, 저를 지탱해 온 힘은 결코 외향성이 아니었습니다. 제 곁의 동료 영업사원들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정적인 서류를 들여다보는 일을 일종의 감옥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은 현장의 소음 속으로 뛰어들어 낮에는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고, 밤에는 그들과 잔을 부딪히며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반복적인 서류 작업이 지루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고객을 설득할 논리를 구축하고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할지 홀로 고민하는 시간만큼은 흥미로웠습니다. 상황을 해부하고 자료의 이면을 파고들어 조용한 전략을 설계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저는 타인과 섞일 때보다 훨씬 더 밀도 높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은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주 오랫동안 필드 위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성과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는 제게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현장을 누비며 사람들을 조율하던 제게, 느닷없이 R&D 사업을 맡아 연구 논문들을 분석하고 사업의 기획을 설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솔직히 첫 심정은 거부감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던 내가 왜 갑자기 골방같은 사무실에 갇혀 깨알 같은 글자들과 씨름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는 일이 나의 유일한 무기라고 믿었던 저에게, R&D 연구를 위한 리서치 업무를 하라는 일은 유배 생활을 하라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업무를 진행해보니, 제 안에서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회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본질을 정의하고, 그 매듭을 풀기 위해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은 제게 단순한 업무 이상의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시장의 흐름과 기술적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물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는 과정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말한, 자아마저 잊게 만드는 완벽한 ‘몰입의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매료시켰던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아이디어의 탄생’ 과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설계하고, 그것을 법적·기술적 실체인 ‘특허’로 구체화하여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작업은 제게 가슴 벅찬 성취감을 안겨다주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구조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일,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해법을 실험해 나가는 일, 그리고 그런 과정을 차분히 정리하는 일들 속에서 저는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저는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꼈지만, 당시 신체적으로는 생애 가장 무력하고 처절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심장 수술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긴 뒤 마주한 것은, 쪼그라든 폐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재활 훈련이었습니다. 매일 플라스틱 기구를 입에 물고 공을 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을 불어넣어야 했습니다. 가슴의 절개 부위가 채 아물지 않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전신을 훑었었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평범한 잠자리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었습니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완전히 눕지도 못한 채,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댄 어정쩡한 자세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평소 엎드려 자는 습관이 있던 제게 그 자세로 잠을 청하는 것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듯한 끔찍한 괴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제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R&D 사업을 수행하며 몸에 익힌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본능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정의해야 하는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가?’ 이러힌 지적 갈등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학문인 심리학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퇴원 후 저는 마치 새로운 R&D 프로젝트를 수행하듯 심리학의 방대한 자료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 인류가 오랫동안 답을 찾으려 애써온 거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To be continued...
▶ 《자기이해학》은 ‘세상이 만든 나’가 아니라 ‘내가 작동하는 방식’을 발견하도록 돕는 책입니다. 더 이상 남의 기대에 맞춰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텀블벅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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