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知彼知己)보다 '지기지피(知己知彼)'

왜 우리는 적을 알면서도 패배하는가

by 강동현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유래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시대를 막론하고 승리의 대명사로 쓰여 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이 명쾌한 전략은 비단 전쟁터뿐만 아니라 취업, 비즈니스,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오래된 격언을 실천하며 한 가지 치명적인 순서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바로 '지피(知彼, 상대에 대한 이해)'에 몰두하느라 '지기(知己, 나에 대한 이해)'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기 위해 타인의 기호와 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는 능숙해졌지만, 정작 그 세상 속에 서 있는 '나'라는 주체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여기서 순서의 재배열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피지기가 아니라, '지기지피(知己知彼)'가 되어야 한다. 모든 승리와 성공, 그리고 행복의 기점은 언제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에서의 퍼스널 브랜딩은 결국 '나'라는 상품을 시장(기업)에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많은 구직자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지피)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쓰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전략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기 개념(Self-concept)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브랜딩은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다. 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몰입하는지 스스로 명확히 정의할 때 비로소 직무와 산업이라는 외부 환경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프레임'이 생긴다.



비즈니스의 3C 분석(Customer, Competitor, Company) 역시 마찬가지다. 고객과 경쟁사를 분석하는 것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자사의 본질적인 강점과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서비스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이해'가 결여된 채 행해지는 시장 분석은 차별화 없는 모방에 그칠 뿐이다.




얼마 전, 이혼을 고민한다는 한 선배의 고백은 '지기(知己)'의 부재가 삶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배우자의 성격, 취향, 사소한 습관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은 '지피'의 이면에는 텅 빈 '지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따르면, 타인에게 과도하게 적응하는 '거짓 자기(False Self)'는 당장의 갈등을 유예시킬 순 있지만, 결국 내면의 진정한 욕구와 충돌하게 된다. 선배는 평생 상대에게 맞추는 것을 배려라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방치한 것에 가까웠다. 내가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지 공부하지 않은 대가는,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감당할 수 없는 공허함과 분노로 돌아왔다. 결혼의 성패는 상대를 얼마나 잘 고르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얼마나 깊이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세상에서 우리는 늘 위태롭다. 타인은 변하고 시장은 요동치며, 적의 전략은 교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기지피(知己知彼)의 세계에서는 설령 백 번 싸워 이기지 못할지언정, 나 자신이 무너지는 위태로움은 겪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은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지점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인생의 해답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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