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를 뚫고 솟아나는 관광 대국의 꿈
칵테일 중 청색 계열에는 웬만하면 들어가는 리큐르가 있다. Blue Curaçao라는 제품인데, 퀴라소 섬에서 자라는 Laraha 오렌지를 이용하여 생산한다. 이렇게 퀴라소라는 섬은 전세계 칵테일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퀴라소의 역사는 단순히 술 한 잔에 웃어넘길 것이 아니다. 카리브해의 이곳 저곳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던 네덜란드는, 불행히도 퀴라소에는 노예제나 플랜테이션보다 특별히 더 나쁜 유산을 남기고 만다. 바로 정유소 주변 지역의 환경오염 (다행히 정유소 바로 인근 지역을 제외하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퀴라소는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딛고 조금씩 관광대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푸른 바다, 환상적인 해변, 그리고 수백 년 된 네덜란드풍 시가지가 선인장 솟아 있는 평원 뒤로 펼쳐져 있고, 밤에는 다시 흥겨운 나이트라이프가 이어진다.
‘여기는 뭔가 크다. 웬만한 카리브해 섬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퀴라소의 첫인상이었다. 섬도 작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보다는 각종 인프라 등등이 모두 시원시원했다. 바다에는 초대형 크루즈 선이 떠있고, 땅에는 거대한 정유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컨테이너 부두에는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옆을 고속도로가 배가 걸리지 않도록 아찔하게 높은 다리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 옆에 Willemstad 시가지가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나름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퀴라소의 느낌은 밤에도 이어진다. 잘 관리된 네덜란드풍의 시가지가 Sint Anna Bay를 사이에 두고 쭉 뻗어 있고, 양안을 Queen Emma Bridge가 연결한다. 그리고 그 옆으로 17세기 네덜란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총독 관저가 위용을 뽐낸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큼직큼직하다. 카리브해에서도 드디어 도시다운 도시, 야경다운 야경을 본 느낌이다.
퀴라소가 2010년 네덜란드 왕국의 자치국으로 독립하였으니, 1915년이면 아직 네덜란드 식민지이던 시절. 바로 바다 건너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앞바다에서 초대형 유전이 발견되어 개발 중에 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이 기름에 눈독을 들였고, 이 중에는 네덜란드의 Royal Dutch Shell 사도 있었다 (참고로 이 회사는 네덜란드 및 영국 이중 국적사였으나, 2005년 완전 통합 후 2022년 영국 단일 국적의 Shell plc로 사명을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네덜란드 국적의 Royal Dutch Shell 입장에서,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기름을 정유해 내다 팔기에 최적의 장소는 베네수엘라 근해에 위치한 자국 식민지 퀴라소였다. 실제로 이 회사는 1918년 처음 정유소를 세운 이래 1985년까지 거의 70년간 정유소를 운영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그 사이 정유소 주변 땅은 심각하게 오염되어 갔다.
일례로, Royal Dutch Shell은 정유 과정에서 생산되는 아스팔트가 쓸모 없다는 이유로 이를 그냥 정유소 옆 땅에 버려 버렸다. 그 결과는 무려 52헥타르에 달하는 아스팔트 호수. 그러나 Royal Dutch Shell 사는 아무 정화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1985년에 단돈 1길더에 정유소를 통째로 퀴라소 정부에 팔아 넘기고 만다. 실제로 이 기업은 그 이후 이 지역의 오염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2019년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의 정유소 운영 계약이 만료되면서 퀴라소 정부는 정유소의 새 주인을 수년째 찾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오염 지역 정화 등 실질적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를 뒤로 하고 퀴라소는 관광 대국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정유소 주변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천혜의 자연이 널려 있으니, 불가능할 것도 없다.
특히, 퀴라소의 비치 중에는 Playa Porto Marie 등 대형 비치도 많지만, Playa Lagun 등 초소형도 제법 존재한다. 주변보다 더 침식되어 안으로 푹 들어간 해안선 안쪽에, 귀엽지만 로맨틱한 비치가 형성되어 있는 것. 그래서 퀴라소에는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딱 맞는 분위기의 비치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퀴라소의 관광 인프라도 여전히 훌륭하다. 도처에 훌륭한 식당이 널려 있고, 주요 비치에는 chill한 비치바가 존재하여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Willemstad의 중심가는 밤에도 밝고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래서일까. 퀴라소의 관광객 숫자는 코로나19 등장 전까지 매년 급성장세였다. 2015년 50만 명 선이었던 연간 관광객 수가 불과 4년 후인 2019년에는 80만 명을 넘겼을 정도. 비록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줌하긴 했지만, 다시 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길.
하지만 한 가지 운이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플라밍고 관찰이다. 플라밍고 서식지에 가보면 제법 친절하게 안내문과 경고문까지 잘 붙여 두었는데, 정작 플라밍고가 없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하염 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결국 전망대만 두어 번 오르내리다 차에 다시 오른다. 이 지역에서만 보네르에 이어 두번째. 플라밍고 관찰 운은 없었던 듯 하다.
꼭 해봐야 할 일: 나에게 꼭 맞는 나만의 비치 찾기, Willemstad에서 나이트라이프 즐기기, 플라밍고 보러 가기, Curaçao Liqueur Distillery에서 오리지널 Blue Curaçao 마셔 보기.
날씨/방문 최적기: 겨울 기준 매일 25~30도로 따뜻하며, 여름에도 크게 더워지지 않음. 10월~12월 우기* 및 12~4월 성수기 제외 시, 5~9월이 방문 최적기.
위치: 카리브해 남부 소앤틸리스 제도 (Lesser Antilles) 및 리워드 앤틸리스 제도 (Leeward Antilles Islands) 에 속하며, 아루바 (Aruba) 동쪽 80km, 보네르 (Bonaire) 서쪽 40km에 위치.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한국보다 13시간 느림). DST (서머타임) 제도 없음.
항공편: 한국에서 뉴욕까지 이동 후 퀴라소까지 직항편 이용 가능 (비행 시간은 5시간 선).
입국 요건: 퀴라소는 네덜란드령 자치국이기 때문에 자체 입국 규정이 적용되며, 대한민국 국민은 무비자 입국 가능 (최장 90일).
화폐 및 여행 경비: 앤틸리안 길더 (ANG) 가 공식 화폐로, 고정 환율제 채택 (1 USD = 1.8 ANG). 그러나 미 달러도 널리 통용되어 굳이 환전할 필요는 없음 (단, 미 달러 사용 시 공식 환율 대비 불리한 환율 적용 가능성은 존재). 신용카드도 널리 사용되나, 택시 등 현금 소요에 대비 충분한 현금 소지 권장. 도시 지역에는 Banco di Caribe, MCB, RBC 은행 ATM 다수 존재.
언어: 네덜란드어, Papiamento (현지어), 영어가 공용어로, 영어로 의사 소통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음.
교통: 섬이 크기 때문에 (차량 종단 시 1.5시간 정도 소요) Willemstad 중심가 내 이동 등 제외 시 차량 필요. 택시 요금은 비싼 편으로 공항 기준 Willemstad는 30~40달러 선, 퀴라소 최서단/최동단은 70달러 선. 렌터카는 하루 40~60달러 선.
숙박: 대부분 숙박 시설은 Willemstad를 중심으로 해안선을 따라 위치. 호텔은 대부분 합리적 가격에 만족스러운 환경을 제공 (일 150~300달러 선). 해변을 따라 세워진 일부 고급 호텔의 경우 일 300~700달러까지 예상 가능. 빌라 렌트도 가능. 자세한 정보는 퀴라소 관광청으로 (https://www.curacao.com/en/where-to-stay).
식당/바: 보네르보다는 다양하나 아루바보다는 고급 식당이 적은 편. 그러나 Willemstad 시내에서만 찾아도 좋은 식당이 충분히 많으니 참고. Ceviche 91 (해산물), Gouverneur de Rouville (캐리비안), Mosa (퓨전), Soi95 (아시안) 등을 추천. 자세한 정보는 퀴라소 관광청으로 (https://www.curacao.com/en/category/food-and-drink).
전압/콘센트: 127V/50Hz에 플러그 타입 A/B (즉, 미국과 동일). 따라서 대부분 한국 전자기기는 여행용 어댑터 필요.
국제전화 국가 번호: +599 (네덜란드령 카리브해 공용).
주요 연락처: 긴급전화 (경찰 911, 의료 912), 퀴라소 관광청 (+599-9-461-8200),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31-70-740-0200), 주베네수엘라 대한민국 대사관 (+58-212-954-1270/1006/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