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경지

Rambling reports from my 30s

by 영웅 캐리



리셉셔니스트receptionist에 대한 소고를 쓴 적이 있다. 내 삶 안에서 나는 리셉셔니스트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대한 것이었다. 보통은 온라인 툴이 따로 있어 더 이상 예약을 받을 일도 별로 없거니와, 혹은 있다고 해도, 실수한다 해도, 치명적이지 않은. 자리만 지키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빤히 구경하는 노인, 혹은 따사로운 들판에 앉아 잔디를 만지작거리는 평화…그 이상도 이하도 누리고자 하지 않는 노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쓴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쉼을 얻고 지나가는 텐트 같다는 생각도.



20대 초반에 쓴 노트들이다.



영향력에 대한, 혹은 영향력을 갈망하는 욕망이 거세된 마음에 대한 것일까.

나는 불교를 좋아했다. 내가 겉핥기로 취사선택하여 이해한 불교는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 그 한가운데 앉아 그것들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동조하지 않고자 하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언젠가 나는 식물과 같다는 말을 듣고 쓴 메모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원본을 찾기는 조금 우울한 메모 같다.



최근에는 동력과 일상에의 캐퍼시티capacity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동력….

필요와 욕망이 있으면 사람은 움직인다.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 저 녀석을 제끼고 싶은 욕망, 정신은 성숙해도 신체는 늙지 않으려는 욕망, 왜 없겠냐만…

나는 정말로 이것들을 이뤄야 하는가? 이루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블로그를 쓰고 워크샵을 열어야 하는가? 수익화해야? 전략을 설파해야?



필요를 충족하고 나면 욕망은 그저 나에게 동력을 요구하는 대상 - 사람, 기관, 사회, 문화 등 - 에 대한 비판도구로 남는다. 그런데 이것들을 함께 욕망하고, 이를 위해 함께 뛰고, 수다를 떨길 기대하는 이가 생각보다 정말로 많다. 나는 지난날동안 넘쳐나는 욕망에 대한 수요...

그런 것들을, 내 멋대로 골라먹은 부처의 말을 빽 삼아, 안전한 곳에 서서 아니꼬이 바라보다가, 결국 관찰과 전달, 비판과 대안제시, 조율과 응원을 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대학 겸임교수가 되었다.



내가 거부하는 욕망들과, 그 욕망을 따르고 이루고자 하는 흐름… 그 속에서 안전하게 나만의 데스크와 캐노피 아래 앉아서 관망한다. 학생들을 그들만의 흐름에 맡겨 보내고, 속도를 조절해 주고, 흐름을 탈 때 필요한 것들을 지목해 주고, 흐름에 엉킨 애들을 잠시 튜브 끼워 주기도 한다.



이로써 정말로 내 생의 리셉셔니스트 혹은 텐트/캐노피로서의 최고 레벨을 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