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강도와 줄다리기하기

대학원 2년차, 논문 학기에 외장하드를 빼앗기다

by 영웅 캐리



대학원 2년차 논문 학기, 칼바람이 부는 로드아일랜드의 한겨울, 칼을 든 강도를 만났다.





나는 추위를 아주 싫어한다. 사랑하고 싶은데 온몸이 거부한다. 머리 속으로는 나는 추위를 즐기는, 멋진 코드를 입었지만 귀마개는 하지 않고, 가벼운 가죽 부츠를 신고 그만으로 스타일링을 완성한, 가벼운 가방만 있어도 많은 일이 가능한, 그리고 왕성한 열기를 지닌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서, 나는 차를 가지고 기숙사로부터 도보 30분 거리의 대학원 건물에 겨울학기 저녁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이 수업은 당시 수료하고자 했던 교육자 자격증 커리큘럼의 필수과목으로, 대학원생 신분으로 본교 학생들을 대상 첫 스튜디오/세미나 수업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교육론을 논하기 위해 듣는 수업이었다.



프로비던스의 강변, 사우스 메인 스트릿에 차를 대고 수업 전에 다시한번 읽기자료를 검토하느라 랩탑을 열고 차 안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문을 열라고, 보통 사람의 노크 강도라기엔 조금 세게 차창을 두드린다. 그런데 운전자 창이 아니고 조수석 창을.

창문을 조금 여니 길을 물어본다. 랩탑을 무릎에 둔채로 최대한 자세히 길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창문 틈으로 팔이 휙 들어온다. 팔 끝에 칼이 달려있다.

칼이 근데, 조수석 창문으로부터 뻗어오다보니 내 얼굴에 닫지 않고 바로 앞에서 흔들거린다. 팔을 더 뻗느라 흔들거리나?

아무튼 칼을 인지한 후로는 괴성을 지르느라 그가 한 협박 혹은… 인사였을 수도 있는...그 어떤 발화였을수도 있는…칼 끝에 달린 말을 듣지 못한다.

기억나지 않는게 아니라 나의 비명이 찢어질 듯 커서 정말 들리지 않는데, 그 와중에 나는 운전자 쪽 창문을 살짝 열고 아무도 없는 (보통의 프로비던스다운) 길 위에 저 앞 두명의 소중한 행인들을 향해 내 비명이 들리도록 비명의 방향을 바꿀 정도로, 그치만 클락션을 울리거나 그대로 액셀을 밟아 창문에 매달린 그를 넘어뜨리거나 조수석 창문을 닫아버려 그의 팔이 끼도록 위협할 생각은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꽤 온전하다.

내 얼굴에 칼이 도저히 닫지 않자 손이 그대로 내 가방을 향한다. 안타깝게도 창 틈으로 겨우 들어온 손에 닿기 좋게 꽤 크고 위에 손잡이가 달린 나의 반사광이 달린 자전거용 백팩은 그의 손에 낚인다.

그 가방에는 나의 디지털 매체 전공 대학원 생활 모든 것이 들었다. 나의 외장하드, 작업노트, 고프로… 모든 것은 아니고 다행히도 핸드폰, 지갑, 용량이 가득 차고 자판이 고장난 소중한 랩탑은 기계 이름 그대로 내 무릎 위에 있다!

어쨌든 가방을 뺏길 순 없어서 가방을 두손으로 붙잡고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물론 성인 백인 남성인 그의 한쪽 팔이 대학원 생활 동안 자전거만 겨우 타 운동이 많이 부족한 내 두 팔보단 강하다. 내 가방을 안타깝게도 가방이 빠져나갈 만큼만 빼꼼 열린 창문 틈으로 가져간 그는 바로 뛰어서 골목으로 사라진다.





칼은 다음날 조수석 바닥에서 발견됐다. 미국 휴게소에서 팔 법한 흔해빠진 사냥 칼이었다.

그렇게 사냥 칼과 나의 입 속 표피를 채취해간 프로비던스의 형사팀도 해결하지 못한-덕분에 나의 긴장되던 첫 대학 강의를 하루 빼먹게 해준-때문에 학교의 카운슬러에게 괜히 내 더 깊은 과거의 심란한 트라우마 얘기만 늘어놓게 해버린-가방을 잡아당기느라 손톱 두개가 피난채로 뜯어지고도 메디컬 어텐션attention과 트리트먼트treatment의 차이 혹은 필요를 몰라서 당당하게 거부해버린 기록이 남은 2020년 1월의 프로비던스.

그날의 허무한 가방 줄다리기가 아직도 머리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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