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아이슬란드 노트: 1월의 세이디스피요르드

by 영웅 캐리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지 2주가량이 지났다.

나는 동부 해안에 자리한 세이디스피요르드에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왔다. 4명의 초청작가 중 한 명으로.





바람이 잔잔한 날 아침 11시의 세이디스피요르드.





바람이 점점 세게 분다. 30km/h – 50km/h의 속도. Beaufort wind scale에 따르면 이 정도는 6번으로, strong breeze 인 것 같다. 다음 단계인 7, Near Gale 에나 가야 걸을 때 불편함이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집이 흔들리고 나무 내벽이 자작거리는 소리에 잠을 이루고 있건만.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에는 Sigur Rós와 Björk의 노래를 듣다가, 여기서 지내면서는 보사노바를 듣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오진 않았지만 시멘트 도로의 얇은 얼음 위에 조금이나마 쌓인 눈가루가 흩날린다. 높이 오르지 못하고 파도를 만들고 있다. 바람의 결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적정량의 입자를 남겨놓은 것만 같다.



3 내내 눈보라가 친다.

작은 토네이도가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오늘도 실내에서 보사노바를 틀어놓고 창밖을 촬영한다.

이번 주 내내 눈과 바람 때문에 트래킹, 탐사, 야외 촬영은 모두 불가능한데, 다음 주는 가능할지도 확실치 않다.

욕심이 많았지만 무시무시한 자연 앞에 자꾸만 사그라든다. 잘못하는 것만 같고, 고여있는 기분이 들어 불편하다.

무언가를 희생해서라도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 같고

멈출 없는 자기비판은 북극해 아래에서 눈보라가 치건 한국에서 장맛비가 내리건 똑같다.





아이슬란드에서 유럽 대륙으로 가는 유일한 페리 항구.





세이디스피요르드의 사람들은 무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능한 일을 미루지도 않는다. 눈보라가 치고 체감 기온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지난 며칠간, 사람들은 바닷가 사우나에 가고 영화관에 모인다. 날씨에 따라 위험 없이 수행 가능한 활동과 위험한 활동들을 구분하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떨 때는 덤덤하게 취미활동이나 사교활동을 하고, 어떨 때는 과감하게 계획을 포기한다.

온갖 병원과 , 기구와 도구, 사람 간의 드라마로 가득한, 그러나 자연에 대한 어떤 지배권을 쥐고, 그를 어떤 승리 혹은 당연한 문명의 결과라 여기는 한국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저 방에 숨어서 관찰하고, 피신하며 힘을 모으고, 가끔 그들을 따라가며 천천히 배운다.

Edda와 Silla, Tara 저렇게 집이 흔들리며 바람이 부는데 해맑고 가볍게 사우나에 가자고 한다. 그들의 며칠간의 사우나행 제안을 거절하며 나는 거절하는 법을 너무나 아는 내가 망신스럽다.



24시간 내내 실내에서 눈폭풍이 동반하는 감각들, 나무집의 흔들리는 소리와 진동을 느끼고 있다 보니 정신이 사납다.

아이슬란드는 화산지대의 풍부한 지열을 이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에 보통 실내공간의 라디에이터는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도 옷을 두세 겹 씩 입고, 비니를 쓰고, 머리를 모두 묶어서 비니 안으로 집어넣고 한올도 나오지 않게 한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보사노바의 부드러운 사운드로 사나운 소리를 상쇄해 본다.

툴의 중요성 혹은 의존에 대해 생각한다.





침대에 누워서 조각난 눈폭풍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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