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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Paloma Sep 22. 2023

낡은 사진첩


여러가지 이유로 포르투갈이 요즘 핫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연장선이며, 서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알려진 것이 적고, 물가가 저렴하고 등등. 각자의 이유는 달라도 어쨌든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낡은 사진첩을 찾아보다 눈을 감고 잠시 그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대학생 배낭여행이 유행하던 시기, 나도 학교를 휴학하고 영국으로 날아가 얼마간 살았었다. 어느 날, 서핑에 미쳐 있던 친구가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 파도를 타러 가자고 했다. 목적지는 햇살이 작렬하는 포르투갈. 나는 파도 따위는 전혀 탈 줄 몰랐음에도, ‘대서양’이라는 단어에 홀려 어느새 ‘토마스 쿡’ 여행사를 찾아 항공권을 구하고 있었다. 높은 파도를 만나려면 바다를 마주한 ‘포르투(Porto)’로 가야 했는데, 여행관련 물가가 오르는 부활절 기간에는 모든 항공요금이 터무니없었다. 친구와 나는 저렴한 티켓을 찾아 포르투갈 남부의 항구 ‘파루(Faro)’로 간 다음 고속버스를 이용해 ‘포르투’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주변도 함께 구경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만난 도시의 첫 인상은 키 큰 팜트리가 줄을 지어 서있고, 새하얀 벽과 붉은 테라코타 지붕의 건물이 눈부신 햇살아래로 유독 빛났다. 반짝거리는 요트가 줄지어 정박해 있는 마리나 옆으로 난 돌바닥은 흰색과 회색의 돌로 문양을 넣어 마치 양탄자를 펼쳐 놓은 듯했다. 리우의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처럼,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거쳐간 여러 나라에서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교하고 독특한 길바닥은 포르투갈식 길(calçada portuguesa)이라 불리는 고유의 포장길이다. 그래!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엔히케 왕자(Infante Dom Henriqu)’의 나라, 인도양 항로의 개척자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나라가 아니던가?


‘파루’ 사람들은 무뚝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친절했다. 바닷가 사람 특유의 바이브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하면 곧바로 대답을 안 하는듯 느껴져 돌아서려 할 때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가지 추가 정보를 무심한듯 전해주었다. 게다가 길가에 앉은 몇몇 할아버지의 훈수는 덤이다. 예를 들면 ‘그 길은 복잡해서 여행자가 찾아가기 어렵다. 이쪽이 돌아가지만, 더 쉽다’ ‘아니다. 내가 며칠전에 가 봤는데 저쪽이 훨씬 편하다’ 대충 이런 식의 토론으로 시간을 지체했다. 자칫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당시 나는 콧대 높은 영국 사람들에게 질려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 참견마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계획은 ‘파루’에서 하루만 보내고 북으로 이동하며 몇 개의 도시를 함께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고장 사람들의 말이 여기까지 와서 ‘알가르베(Algarve)해안’도 안 보고 그냥 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심지어 ‘포르투’같은 대도시(?)는 볼 게 없다는 거였다. ‘라고스(Lagos)’가 좋은데 여기서 가깝다고, 기차를 타면 금방이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가보자.” 어차피 우리는 시간만은 넉넉한 학생이었고 계획 따위는 변경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 ‘알부페이라(Albufeira)’를 거쳐 ‘라고스’에 도착하니, 역 앞에서는 민박집 주인으로 보이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차에서 막 내린 여행객을 붙들어 자신의 숙소가 얼마나 편리하고 해변에서 가까운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지리산 피아골로 엠티를 갔을 때 버스터미널에서 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우리는 한 아주머니와 형식적인 흥정을 한 후 그녀의 아파트로 따라갔다. 집은 아담했지만 과연 설명대로 단정하고 청결했다. 짐을 풀면서 순식간에 일어난 이 일이 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낯선 나라에서 예정에도 없던 곳으로 여행을 와 처음 만난 아주머니를 따라오다니… 지금 같아서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무모했고 사람들은 대체로 순박했다.


라고스는 포르투갈 남쪽 끝에 위치한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사방이 온통 하얗고 정말 뜨거운 곳이다. 이곳에 머무르는 내내, 나는 집 근처의 예쁜 노란색 어닝이 달린 조그만 상점에서 매그넘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해변으로 향하곤 했다. 해가 저물면 북아프리카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낮 동안 달구어진 도시를 서서히 식혀주었다. 메뉴라고는 흔한 ‘바칼랴오(Bacalao)’와 지역에서 잡히는 해산물로만 준비된 소박한 식당에서 매일 비슷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떤 날은 조용한 식사자리에 난데없이 꽃바구니를 든 할머니가 들어와 남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공략해 장미꽃을 팔기도 했다. 식당 안의 누구도, 심지어 주인조차도 제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와! 되게 이상한데 어쩐지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껌이나 볼펜보다는 훨씬 로맨틱하지 않은가?


문자 그대로 에메랄드 빛 바닷가에서 계획에도 없던 날들을 보낸 우리는 곧장 ‘포르투’로 올라가기로 했다. 하룻밤 숙박비도 아낄 겸 나이트 트레인을 예약했는데, 아무리 어렸어도 덜컹거리는 기차를 일고여덟시간이상 타고 이동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하늘에는 아직 검푸른빛이 남아있는 새벽,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역전에 떨어진 우리는 카페테리아를 발견하고 무작정 들어갔다. 갓 구운 빵냄새가 가게를 채우고 있는 가운데, 소주잔 만한 새하얀 컵에 담겨 나온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차역의 교대근무자들이 출퇴근길에 이곳에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가는듯 보였다. 뜨거운 카페인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밤새 시달렸던 몸을 사르르 녹이고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던 그 찰나의 순간을 설명할 적절한 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부활절 휴가가 끝나고,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며 아쉬움의 눈물까지 흘리며 리스본 공항을 떠났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는 보고 싶은 유럽의 다른 도시가 너무 많았고 그렇게 틈만 나면 에딘버러, 암스테르담, 파리, 베니스 등지로 돌아다니는 사이 포르투갈에서의 시간은 추억으로 남았다. 요즘 들어 이 곳을 다녀온 지인들이 많아지면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상 벤투(São Bento) 기차역’의 ‘아줄레주(Azuleju)’는 여전히 푸르고 영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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