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작가의 관점에서 기획하는 여행’이나, ‘인문학이 연계된 여행’에 대해 배우는 것인 줄 제멋대로 짐작했다. 커리큘럼을 자세히 읽지 않았지만, 살펴보았다고 해도 당시에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첫 강의시간에 ‘망했다!’ 싶었다. ‘여행기사’라니! ‘여행에세이’라니! 이건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과제나 꼬박꼬박 제시간에 제출하고 ‘딱! 중간만 하고 끝내자!’고 마음먹었다.
한편으로는 내 평생에 읽은 책의 권수가 얼마인데, 짧은 글 정도는 무리 없이 쓸 수 있다고 막연하게 믿었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이과’와 ‘문과’같이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것이었다. 고작 A4 두 장을 채우는 것도 버거웠다. 뒤돌아보니, 나는 그때까지 소설만 집중해서 파는 독서 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필'이나 '시'에는 흥미가 없었다. 심지어 요즘은 소셜미디어에서 끄적거리는 것이 버릇이 되어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엉망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을 만나면,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이 들곤 했는데, 그 손가락질이 나를 향하게 될 줄이야. 세 번의 글쓰기를 하고 수정을 받는 과정을 거쳤지만, 내 글은 향상되지 않았다. 하긴, 글이 그렇게 단번에 써지는 것이라면 누구나 다 작가를 하겠다고 나서겠지.
과정을 수료하고 새로운 글쓰기 강좌도 의욕적으로 참여했는데, 과제제출일이 다가오면서 후회가 커졌다. ‘수필 쓰기’는 또 다른 세계였다. 수필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수필을 쓴다는 말인가? 급하게 검색해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다는 산문집 두 권을 구입했지만,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 글쓴이가 이전 세대의 사람이라, 지금의 도덕적 규범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예를 들면, ‘동네 식당에 새로 온 종업원을 좋아하는 친구가 그녀를 겁탈할 수 있게 담을 넘어가도록 친구들이 공모를 했다’는 내용에서 나는 기함을 했다. 공감을 할 수 없으니, 수려하다는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책을 덮었다. 힘들어하는 나와는 달리 쉽게 술술 읽히면서 재미있는 글을 선보이는 옆사람을 보면 부럽기만 했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쳐다보았지만 소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중간만 하자!’가 인생의 모토인 나에게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소재가 될만한 활동을 따로 해야 하나?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위해 계획에 없던 여행을 무리해서 가고,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는데 그 심리가 이해될 지경이었다. 글 지도작가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글을 쓰라고 했지만,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이럴 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집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작가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면서, 다음에 가 볼만한 여행지도 메모해 두었다. 섬진강 단락에 이르렀을 때 ‘재첩 국물은 삭신의 구석으로 스며 들뜬 것들을 가라앉힌다.’라는 한 줄에 나의 옛 기억을 소환했다.
어려서 살던 부산의 우리 동네에는 새벽마다 재첩국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지금은 재첩이라 하면 하동을 제일 먼저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낙동강 하구의 강바닥에서도 재첩을 긁어 팔았다. 국을 가득 담은 양동이에 비닐덮개를 씌워 머리에 인 아주머니는 새벽의 골목을 깨웠다.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사이소~”
나는 잠결에 그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재첩국이라 하지 않고 ‘재치국’이라고 했다. 그때는 단순히 사투리라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받침을 발음하지 않으려는 아주머니만의 비법이었나 싶다.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이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국을 파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고, ‘재첩국’보다는 ‘재치국’이 호흡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가끔 냄비를 들고 대문밖으로 나가 ‘재첩국 아지매’에게 국을 사 왔다. 나는 재첩국을 끓이는 날의 우리 집 아침상이 반가웠다. 뽀얀 국물에 채 썬 부추만 동동 떠있는 국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짭조름하면서 달큼한 맛이 입안에 남았다. 한 알 한 알 건져 빼먹는 손톱만 한 살도 쫄깃했다. 언제부터인지 강이 개발되고 수심이 깊어지면서 흔하던 그 민물조개는 사라져 버렸고, 재첩국 아지매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제 재첩은 섬진강 주변에서나 구할 수 있는 귀한 먹거리가 되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쇼핑몰을 열었다. 원래 재첩의 제 철은 봄이지만, 요즘은 냉동제품으로 유통되니 맛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면에 주르륵 뜬 목록에서 적당한 것을 눈으로 재빠르게 훑었다. 재첩국 여섯 봉지에 삼만 원, 택배비 포함. 나쁘지 않았다. 결제버튼을 누르고, 마트 배송에는 부추를 추가했다.
아직까지도 내 모니터에는 글 다운 글은 한 줄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습관처럼 온라인 쇼핑만 했다. 작가의 자전거는 이제 노령산맥을 지나고 있다. 택배가 도착하면 오랜만에 재첩국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