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직 다이어리-1

by 포슬린

이직 준비를 시작한 건 5년 차부터였다.


그간 넣은 이력서가 몇 개인지 기억은 안 난다. 때때로 소개팅처럼 들어오는 면접들을 거쳐 총 5곳의 최종합격을 받았고 8년차가 되어서야 이직할 회사를 결정했다. (쓰다 보니, 기간 대비 꽤 저조한 성과다.) 나처럼 회사에 큰 불만이 없는 경우는 준비를 느슨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솔직히 이직률이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력한 동기가 없다 보니 미친듯이 이력서를 몰아서 써보거나, 매일같이 채용공고를 뒤진 적도 없다.


하지만 당시 회사가 내 커리어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점이 확고해질 무렵부터, 채용공고 사이트를 틈틈이 들여다봤다. 주에 1번 꼴로 출근길에 올라온 공고들을 슥슥 보면서 몇 개를 저장해 둔다. 가볍게 1차로 스킴하고, 그 다음 출근길에 다시 찬찬히 읽어보며 정말 혹하는 곳만 남기고 지운다. 공고가 매일 쏟아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한 달에 이력서를 3-4개 정도 넣었던 것 같다. 한 번에 수십 개를 돌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가볍게 해볼 수 있고, 높은 확률로 더 양질의 이력서를 제출할 수 있다.


면접은, 실제로 전 회사 인터뷰어로 꽤 오래 참여했던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피티면접, 영어면접, 화상면접 등 별 종류의 면접을 겪어보았지만 대체로 핵심질문은 크게 10개 내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서류통과가 관건인데, 채용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부 프로필이 잡혀 있다. 공고에 적나라하게 넣지 못하지만, 사수 나이보다 적거나 비슷할 것, 직무에 따라 어디 출신을 선호한다던가, 어떤 성향이면 좋겠다라던가.

이런 '보이지 않는 강력한 필터'에 의해, 지원자의 업무 역량과 별개로 열심히 넣은 이력서들이 부지기수로 떨어지는 일이 많다. '잘 준비해서 빨리 이직해야지'라는 마인드는 바람직하지만, 채용판에서는 일단 이 필터를 통과하는 곳에서만 준비한 걸 보여줄 수 있다. 때문에 정성껏 쓴 이력서들이 무수히 걸러질 각오를 시작부터 하는게 좋을 것이다. 기간을 충분히 잡고, 멀리 내다보는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근 3년이라는 시간을 낭비라 보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이 글의 요지는, 이직준비 자체는 아주 가벼운 일이라는 거다. 어렵게 생각해서 시작을 미루기보다는 가벼운 취미활동처럼 시작해보자. 미루고 미루다 나중에 이직처를 찾으려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초조해지고 당장의 선택지에서 답을 내야 되는 압박이 올 수 있다.

그러니 다음 기회를 자연스럽게 맞이할 준비를 하되, 미래의 나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자. 준비한 시간이 아깝지 않게 좋은 기회들이 계속 나타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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