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슬픈 습관
어디선가 일론머스크가 하루를 5분 단위로 계획한다는 글을 보고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 전까지, 내 인생에서 시간 단위로 무언가 계획한다는 건, 어릴 적 방학 때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던 게 마지막이었다. 자기 객관화를 하자면, 시간 계획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건, 그걸 짜 놓고 지키지 않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 내지 자책감이 싫어서일테다. 하지만 이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이런 나 조차도 시간을 계획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게 꽤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첫 회사에서 업무 루틴을 돌이켜보면, 크게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졌다. 오전에는 뭐 하고, 오후에는 뭐 해야지. 이런 느슨한 틀 안에 나를 넣다 보니, 오전에 할 일이 오후에 넘어가는 일이 허다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업무상 문제는 없었다. (단순히 나를 위해 오전 마감으로 설정했을 뿐, 실제 데드라인은 모레인 경우.)
생각해 보니 정말 급한 일이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직 후,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며 깨달은 점은 결국 이 느슨한 마인드가 역설적으로 삶의 질을 저해한다는 거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주어진 8시간 동안, 그날 마감인 일이 20정도라고 치자. 리스트 위에서부터 하나씩 붙잡고 하다 보면 3-4번째에 머물러있는데 퇴근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럼 '어머 남은 일은 어쩌지? 일단 집 가서 하자.'라는 위험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3-4개쯤 하다가 지쳐 잠이들고, 다음날 아침 지친 채 (그리고 일은 여전히 남은 채) 출근하게 된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쓸데없이 업무를 집까지 끌고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주어진 시간을 잘게 잘게 쪼개서 해야 하는 일을 끝내야 된다.
그래서 출근하고 매 시, 분 단위로 오전 계획을 세운다. 대부분 양적으로 주어지는 일은 프로그레스가 명확해서 먼저 쳐내고, 질적으로 주어지는 일 (보고자료, 피치덱 준비 등)은 봐도 봐도 수정하고 다듬을게 무한대이므로 가급적 마지막에 배치한다.
설령 시간이 다 되었는데 뭔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점심시간에 마무리하거나, 그냥 스스로 뇌를 셧다운 해서 다음 업무로 넘어간다.
이렇게 습관을 들이게 된 이유는 첫째로, 빠른 페이스의 업무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아주 정성 들여 늦은 시간까지 뭔가를 완성해도, 그만한 대가와 보람은 딱히 없다는 거다. 내가 밤 11시까지 뭘 수정하던, 칼퇴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다음날 결과물에 큰 차이는 없다. (특히 PPT에서 정렬, 아이콘 크기, 폰트 수정하느라 붙잡고 있는 시간이 제일 아깝다.)
이렇게 퇴근 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업무시간 동안 시간을 잘게 나누어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이 버릇은 주말이나 휴일에도 꽤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쉬는 시간조차도 아주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밀린 개인적인 일이나 하고 싶던 일을 주어진 시간 내 가장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주말에도 나름의 루틴을 짜는데, 조금 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아침 9시-10시에는 뭐, 10시-11시에는 뭐, 이렇게 시간을 정해서 행동하기보다, 내가 하려는 행동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할애하는 시간을 짜는 거다.
예를 들면, 운동은 해야지, 운동 한 시간. 쉬는 날이니까 인스타도 좀 해야지, 그럼 누워서 인스타 보는데에 한 시간. 주말에 집안일도 해야되니까 한 시간. 커피랑 간식타임도 삼십 분 정도.
이렇게 활동 별로 시간을 정해두면, 그 시간 내에서 아주 알차게 시간을 쓸 수 있다. 집안일을 한 시간 정해두었으니, 세탁기 먼저 돌려놓고, 화장실청소 하고 나오면 건조기 돌리고, 그 사이 분리수거를 하고... 대충 꽉 꽉 욱여넣어 시간 안에 꽤 많은 걸 하게 된다.
쉬는 날에도 계획을 세우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하루를 돌이켜보면 조금 더 많은 일을 해낸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