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득 : 사랑하지 않는 나의 친할머니

이름에 관한 짧은 소개입니다.

by 조화득







다들 누구나 두 명의 할머니를 가진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다. 내 이름에 관한 할머니 이야기를 고백하고자 한다.


한국은 가부장 사회이므로 친할머니부터 기억을 더듬어 가보자. 내 기억 속 친할머니는 장남과 장손을 무척 사랑하셨다. 그 외의 손주들과 자식은 관심을 딱히 두지 않으셨다. 차남의 자식인 나에게 고기 그만 먹으라고 잔소리한다던가, 남자와 장남의 손주들만 큰상에 나머지는 작은 밥상에 식사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내가 태어났을 때 손주가 아닌 손녀라서 실망하셨어도 이름은 지어주시려고 했었다.


문제는 그 이름이 ‘조화득’이었다.


85년도 이름 통계 평균치에서 한참 벗어난 이름이다. 지혜, 지영, 수진같은 그 시절 감성이 아닌 화득이. 어쩌면 85년이 아니라 1930년대 여성에게 예쁜 이름은 사치였던 시절 대충 지어주던 이름 같다. 감성 따윈 중요하지 않고 계집에게 이름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 같은. 80년대면, 아들딸 상관 없이 둘만 낳아 잘 기르던 시대 아닌가. 엄마는 그 이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모양이다.


그 당시 사연은 잘 모르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현재 내 본명은 외할머니께서 절에서 무려 '20만 원'이나 주고 지어오셨다. 85년도 짜장면 가격이 평균 500원이었으니,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극락왕생하신 스님께서 나의 태어난 날과 시간, 사주에 맞춰서 좋은 이름으로 지어주셨다. 방금 태어난 아기가 새로운 복으로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안타깝지만, 외할머니는 30년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은 흐릿하다. 나를 무척 예뻐하셨다고 해도 유아가 기억하기엔 너무 먼 시절이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할머니가 소중하게 지어주신 이름은 여전히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된다.


그깟 이름이 뭣이 중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주 불리는 이름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내 본명으로 살아갈 때는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추억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그 애정을 배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것이 고운 이름을 지어주신 외할머니의 애정에 보답하는 길이다.


하지만 ‘조화득’은 다르다. 대충 지어준 이름이므로 나는 친할머니에게 반하는 사상을 떠들고 행동하는 시끄러운 여자가 될 것이다. 친할머니가 상상조차 못 했던- 어디 기혼 여성이 취미나 생각을 가질 수 있었겠나. 내 마음대로 말할 거다. 이 이름이라면 19세 미만 구독 불가 피폐하고 극단적인 BL 야한 소설 써도 당당하다.


친할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으로 먹칠하며 살려고 한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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