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맨 : All pie is good pie
*스포주의
1. You Enjoying your pie?
‘탑건 매버릭‘에서 톰 크루즈보다 더 눈이 가는 배우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글렌 파월- 콜사인 행맨. 전형적인 할리우드 백인 남자 배우다. 잘생긴 얼굴에 홀려 출연작을 훑던 중, 흥미로운 영화를 발견했다. 바로 ‘히트맨’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경찰의 의뢰로 부업 삼아 살인 청부업자 행세를 하는 온화한 성품의 교수. 그런 그가 잠재 고객에게 끌리기 시작하면서 여러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온다. (출처 : 넷플릭스)
죽어가는 남자 앞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환장 로맨스와 게리 내면의 화끈하고 섹시한 남자 ‘론’을 더 알아보고 싶었다. 시작은 팬심이었으나, 현실과 환상 그 사이로 나아가는 덕질이 되었다. 그 환상 역시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이니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다.
2-1 초자아 게리 VS 이드 론
영화 속 게리 존슨은 심리철학 교수이자 시간제 경찰이다. 교외의 한적한 집에서 새 모이를 챙기고 고양이 ‘이드’와 ‘에고’를 기르는 이혼남이다. 프로이트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의식의 구조를 나타낸 빙하 그림이다. 영화 초반, 마치 빙하를 화면 속으로 그대로 옮긴 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양이 이드 즉 본능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으며 부엌 어두운 구석에서 사료를 먹는다. 고양이 에고는 게리와 이드 사이. 그리고 오른쪽에 게리가 화면 절반 이상 차지한다. 한 프레임에 고양이 둘, 인간 한 명이 잡히는데 이것을 무의식의 구조로 본다면 어떨까.
현재 고양이 이드(본능)은 부상을 입었다. 고양이 이드에게 깁스라니? 이드가 마음대로 제 방을 돌아다닐 수가 없다. 마치 게리의 이드와 똑같은 상황이다. 에고는 이드와 초자아를 중재하기엔 힘이 없다. 초자아는 간단하게 말하면 도덕과 양심이다. 게리의 현재는 본능이 억압되고 도덕적 판단으로만 삶을 꾸려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전처는 게리에게 연애를 권유한다. 하지만 게리의 대답이 놀랍다.
“이드와 에고라는 충실한 친구들이 있는데.”
맙소사. 고양이가 있으면 모든 게 다 만족스럽단 말인가. 게다가 언제나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의 초자아가 공격받는 일까지 생긴다.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의 도덕이 공식적으로 비난받는 장소는 법정이다. 법원에서 배심원들이 개인의 도덕성을 판단한다. 게리는 예비 범죄자들에게 환상을 팔아 미래에 생길 살인을 막아야 한다. 그는 성실하게 예비 범죄자를 잡는다. 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반드시 살인이 일어날까? 그 지점에 대해 변호사에게 지적 받지만, 게리는 이 일을 ‘현장연구’라고 말하며 놓지 않는다.
심지어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의 인생에서 나타난 변수는 바로 ‘매디슨’이다.
게리가 처음 히트맨으로 등장한 순간, 그는 눈앞의 음식을 먹었다. 자의로 고른 메뉴가 아닌, 고객의 메뉴였다. 그 후 다이너 메뉴는 항상 파이로 고정되었다. 파이는 그가 히트맨으로 연기하는 순간이자, 고객이 게리를 알아보게 하는 암호였다. 그런데 매디슨은 게리가 고른 파이를 거리낌 없이 먹는다. 이때 현실과 환상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이것이야말로 게리의 변수이다. 그의 이드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전처의 충고대로 게리처럼 fucked up한 여자 말이다. 게리는 적절하게 행동하면 보상을 받는, 사회 규범과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인간이다. 그러나 론은 결과보다 눈앞의 매디슨과 쾌락에 몰두하는 충동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초반에 고양이 이드를 껴안고 매디슨의 문자를 읽는 그의 모습에서 영화의 진행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게리와 론은 적절하게 융합되어 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과연 도덕적일까.
2-2
집단을 방해하는 자, 이드의 원시적인 해결.
집단이란 둘 이상의 사람들이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하는 모임을 말한다. 론과 매디슨의 만남은 원시 집단의 출발이다. 만약 집단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사람이 등장하면 어떨까. 게리는 강의에서 시대별 해결책에 대해 말한다.
현대는 도덕과 이성이 발달한 시대이다. 이제는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다. 범죄자는 시민이 만든 도덕적 가치(법)에 의해 처벌한다. 도덕성은 내면의 법이며, 2-1에서 말한 초자아이다.
자, 그럼 본능의 힘이 강하던 구석기 시대로 가보자. 현대처럼 배심원이나 법체계는 없던 야만의 시대. 집단을 위협하는 지도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학생들은 열심히 토론하고, 게리에게 결론을 말한다.
“대부분은 지도자를 제거하자는 의견이에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할 일을 해야죠.”
게리는 무자비하다고 웃지만, 그 선택이 역사적으로도 옳은 선택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표적 살인이 사회 진화에 더 큰 기여를 하였고, 이런 균형을 깨는 요소를 제거하려는 충동은 우리의 역사적 DNA의 어두운 측면에 있을 거라고 답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보자. 론과 매디슨은 마약을 먹고 기절한 재스퍼의 처리 방법을 고민한다. 재스퍼는 어떤 인물인가. 초반에는 10대 청소년을 폭행하여 정직당하고, 후반에는 론의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돈을 요구한다. 론과 매디슨이라는 1차 집단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해당하는 경찰도 재스퍼가 필요 없다고 여긴다. 인종과 여성 차별에 폭력적인 인간을 사회에 그대로 두는 게 도움 될까? 아니다. 재스퍼의 제거는 사회 진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제거하는 방법은 본능이 힘을 차지하는 론의 생각대로 한다. 원시적인 방법, 즉 살인이다.
영화 속 게리의 강의 때문에 론과 매디슨의 살인이 타당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들의 살인은 혐오가 아닌 본능적 판단에 의한 행동이었다. 살인이 쉽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어 영화처럼 피범벅으로 쾌감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다. 영화 속 살인은 세심하게 연출된 각본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살인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사랑을 확인하는 커플에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윤리보다는 본능으로 저지른 살인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초자아인 게리보다, 이드에 해당하는 론이 점점 더 힘을 얻는다. 게리이자 론은 원초적인 본능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였다. 살인은 집단을 위협하는 인간을 처리하는 아주 야만적인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는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고 게리의 어두운 DNA가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재스퍼 머리에 쓰인 비닐봉지를 보라. “Thank you"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재스퍼가 죽어서 고마운 걸까. 아니면 론이 야만적으로 처리해서 고마운 걸까. 어쨌든 재스퍼의 죽음이 경찰과 게리, 매디슨 커플에게 사회적 안정을 주었으니 ”Thank you“하지 않은가.
2-3
게리의 빙하 옆 매디슨. 단순한 조력자?
게리가 살인청부업자 임무에 익숙해질 때 매디슨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력은 평범하다. 부모님은 이혼. 아버지 없이 성장. 헤어디자이너와 승무원으로 근무한 경력. 남편은 가족기업에 근무. 가정폭력 두세 건이 전부다. 이 영화는 게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그녀의 생각은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 오로지 그녀의 행동과 대사로만 그녀를 알 수 있다. 영화가 중후반으로 흘렀을 때, 우린 어딘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만다. 매디슨을 아이 캔디로 단순하게 판단했는데, 뜬금없이 그녀의 전남편이 살해당한다. 여기서부터 영화 초반부터 깔아두었던 복선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매디슨이 론에게 ‘살인을 들키지 않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 그때 론의 대답은 이러하다.
“저쪽에서 뭘 찾을지 알고 먼저 움직이는 거야. 자. 날 쏘면 어디를 쏴야 할까. 심장. 머리나 목 같은 곳은 피가 밖으로 말고는 갈 곳이 없어. 피바다가 될 뿐이지. 사람은 피를 담고 있는 가죽 주머니일 뿐인데. 이 크고 아름다운 흉강은 그걸 전부 담을 수 있어. 시신을 옮기고 상황을 꾸며놓은 다음에 얘기를 지어내면 돼.”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며 섹스 후 나른함을 즐기는 커플의 대화치고 내용은 과격하다.
자, 이제 남편이 죽은 사인을 확인해 보자. 고속도로에서 마약 거래가 틀어진 것으로 보이고, 대동맥(심장에서 몸 전체로 혈액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혈관)에 38구경 총알 한 발을 맞았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이상함을 느낀다. 곧바로 게리는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이때 그녀의 손에는 우유가 있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이 우유를 마신 장면들을 생각해 보라. ‘시계태엽 오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에서 흰 우유로 공포를 극대화했다. 그런데 남편의 죽음을 따지러 온 론 앞에서 그녀는 뻔뻔하게 우유를 마신다. 우유는 집요하게 화면에 등장한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살해했음을 론에게 시인한다. 그녀가 처음 등장하던 때처럼- 마냥 수동적인 여자는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영화 초반. 그녀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었다. 그러나 론을 만나고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간다. 남의 손에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닌, 직접 실행한다. 여기서 반전이 또 등장한다. 매디슨은 이미 6개월 전 남편의 생명 보험금을 잔뜩 올려두었다. 초반 매디슨의 모습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알고 보니 그녀는 능동적으로 욕망을 실천하는 여성이었다.
이제 엔딩으로 넘어가 보자. 2-2에서 집단을 위협하는 인간을 제거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론이 재스퍼를 살해하기 전에 이미 매디슨은 마약을 탄 맥주를 재스퍼에게 먹였다. 그리고 감옥에 갈 거라고 자책한다. 그녀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욕구를 만족시키는 전형적인 이드의 모습이다. 무력하게 죽어가는 재스퍼 옆에서 게리와 매디슨은 무엇을 하는가. 바로 계약이다. 어쩌면 법이나 도덕보다 우선인, 우리의 유전자를 하나로 만들 합법적인 계약. 바로 결혼 서약이다.
For better or worse?
좋거나 나쁠 때도?
So, we're in this' til the end? ‘til death do us part? We can agree this is kind of the worst, right?
끝까지 같이 하는 거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Yes. because i don't believe in divorce. i‘m kidding. So, do we agree on the terms?
응, 나는 이혼 같은 거 안 믿거든. 장난이야. 계약에 동의하는 거지?
I do.
맹세합니다.
I do.
맹세합니다.
이때 그들의 대사는 “결혼식”에서 하는 전형적인 대사이다. 집단을 방해하는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2-1에서의 이드가 2-2에서 집단을 방해하는 인간을 살해하며, 2-3에서 결혼 서약문을 읽는다. 매디슨은 게리의 이드를 자극하기 위해 등장한 몸매가 끝내주는 아이 캔디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집단을 위협하는 인간(전남편)을 제거하고 게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여성이다. 그녀의 역할은 게리의 무의식 빙하 옆 조력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3.
All pie is good pie
히트맨은 인간 내면에 관한 흥미로운 상업영화다. 고양이를 이용하여 성격의 구조를 설명하고, 게리의 강의를 통해 살인을 정당화한다. 엔딩속 게리는 초자아와 이드의 균형을 찾은 건강한 자아다. 어떤 교수가 안경 벗는다고 미소녀가 되겠는가. 현실 교수에게선 찾아볼 수 없으니, 이것조차 영화 속 환상이라 할만하다. 게리는 마지막 강의에서 말한다.
“너희가 바라는 자아를 쟁취해.”
게리는 자신이 바라는 자아를 쟁취하였는가? 그렇다. 2-2의 살인이 끝나고 2-3에서 결혼 서약문을 낭독하고 영화는 마무리에 들어간다. 게리는 태어난 딸을 안고 새를 설명한다. 영화 초반, 새를 사랑하던 게리 즉 그의 초자아도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이제 고양이가 아닌 개를 키운다. 개를 좋아하지 않던 게리였다.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개”를 사랑해서 키우게 되기보단, 억지로 개를 사랑하는 척하던 론의 연기가 현실로 드러난 것을 암시한다. 새를 좋아하고 개를 키우게 된 게리. 게리의 자아는 이드, 초자아를 현실에서 잘 융합시키게 되었다. 마치 칵테일처럼 말이다. 그리고 집단을 위협하는 적을 처리하여 안정을 되찾았다.
매디슨은 어떠한가. 수동적인 여성인 줄 알았더니, 게리와 결이 비슷한 fucked up한 여자였다. 게리에게 배운 대로 전남편을 살해하고 평소처럼 우유를 마신다. 사람들은 쉽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인은 저질러서 안 되는 강력한 범죄임을 알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살인을 실천한 매디슨은 사람들의 농담에 어색하게 웃고 만다. 어쩌면 매디슨과 론의 집단에서 살인은 그들의 사이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고리이자 비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집단 구성원이 그 비밀을 알 필요가 없다. 마치 엄마 아빠는 언제 처음 만났냐고 묻는 딸에게 적당히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조금은 fucked up해도 어떠랴. 너의 맛 간 부분이 나의 맛 간 지점과 비슷하다면, 우린 같은 집단으로서 잘 헤쳐나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You Enjoying your pie?
All pie is good pie.
어쨌든 모든 파이는 좋은 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