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되는구나.
1년 만에 드디어 러닝 2번 코스 완주했다. 바닥이 움직이는 게 무섭고, 빠른 속도면 속도를 늦춰서 걷기만 했던 내가 성공이라니. 집에 와서 곱씹을수록 신기할 뿐이다. 내가? 성공? 러닝을?
일단 작년 내 몸무게는 9nkg 이었으며,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있었다. (임신기간은 예외 상황이니 제외하자) 숨만 쉬며 누워 있었고 몸에 활력 따윈 1도 없던 인생이었다. 지인들이 살 빼라며 도움을 주었지만, 매번 실패하였다. 걷는 건 더 싫고 먹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배달해 먹든가.
나에겐 단체운동보단 개인 운동이 맞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쯤, 동생이 먼저 PT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였다. 자기가 받아보니 너무 좋았다나. 일단 핑크택스도 다른 운동에 비해 없는 편이니(핑크텍스....-_-ㅗ) 시도나 해보란다. 고민하다가 당근에서 검색하고 문의를 했다. 사실, 이때도 튀고 싶었는데…. 관장님이 자꾸 언제 상담 오시냐고 물어봐서 마지못해 갔다. 그리고 시원하게 30회 결제. 내가 언제 생각하고 돈 썼나 Don't think. Just do지.
아무튼 시작도 하기 싫었고, 지금도 운동은 싫다. 24시간 중의 20시간 누워있는 거 좋아하고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책 읽고 영화 보는 인간의 운동이라니. 게다가 운동에 관해서는 성공 경험이 40년간 제로에 수렴한다. 공부? 하면 된다. 돈? 벌면 됨. 근데 운동? 매번 실패하고 미루는 것 아니던가.
몸은 정직하다지만, 그 정직함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정직함이 쌓인다. 너의 성실함에 바로 대답하진 않겠지만 언젠가 답을 준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50분 수업 내내 전부 실패하고 (당연함. 이번 달은 운동보다 술을 많이 먹었다) 관장님이 내놓은 대안은 천국의 계단 대신 달리라고 지시하였다. 그럼, 뭐, 해야지. 오늘은 속도 조절 꼭 안 하고 완주해 보겠다는 마음먹었다만- 늘 내 마음은 나를 배신 하였기에 기대는 없었다.
러닝을 시작한 지 15분. 여기까진 괜찮다. 이제 고비가 시작이다. 사브리나 카펜터와 모네스킨을 들으며 속도기를 조절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자 이제 속도 7이다. 조금만 더, 더, 속도 8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저번에 도전했을 때도 그때 멈췄으니까. 그런데 어라? 마음속으로 프란츠 퍼디난드의 보컬 알렉스 카프리노스를 생각하며 일단 뛴다. 50살 넘은 너도 뛰면서 무대에 서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싶어서 일단 버틴다. 근데 버틸 만하다. 목구멍에서 슬슬 비릿한 맛이 올라오는데 어쨌든 1분은 견딜 만하다. 이제 다시 속도가 점점 내려온다. 세상에! 그 마의 구간을 버틴 거다. 내가!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서 벙찐 상태로 운동을 끝냈다.
되는구나. 1년을 하니까 이게 되는구나. 운동하기 싫어하는 회원 1등급인 내가 이게 되네? 스스로 뿌듯해야 하는데, 실감 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 기쁨으로 느끼려면 몇번은 더 성공해야 할 듯싶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고 든 생각은 인생은 장기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남들과 인생 사이클이 달라. 조금만 더 기다려. 그러면 언젠가 네가 원하는 인생 속도를 가질거야. 그게 마치 오늘의 러닝머신 같았다. 하기 싫어도 해야지. 그러면 1년 뒤의네 모습이 달라질 거다. 이번 주에는 꼭 개인 운동 가야지. 아마도?
PS 그나저나 천국의 계단은 너무 힘들어서 주님 만나는 익스프레스 코스라서 이름이 저런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