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모르는 너의 무심
며칠 전, 독일로 잠시 여행을 떠난 동생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연애를 다시 시작했다나. 나는 요즈음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았기에, 적당한 축하도 하지 못하고 알겠다고 대충 답하였다. 연애를 축하하고 호들갑 떨 나인 이미 지났지 않았는가. 이번에 만난 동생 남친이 그간 만났던 남자와 조금 다른 스타일이다.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단다. 오 이런, 바로 거절했다. 내 감정도 소화가 안 되는데, 새로운 사람이라니. 그런데 동생 대답이 놀라웠다.
-울 언니 무관심한 사람이라 안 할 거라고 했어. 내 말이 맞지?
그러게. 네 말이 맞네.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 보아도 뒷맛이 씁쓸하다. 내가 주변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었나? 이상하게 그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막내딸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무관심한 인간이니?
-응. 엄마는 공부 말고 관심 없잖아.
그나마 셋 중에 가장 귀여워하는 막내딸이- 이렇게 대답하니 할 말이 사라진다. 무관심이라,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심지어 남편도 종종 나에게 너무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인거지?
이제 해야 할 일은 그간 내가 살아온 걸 다시 곱씹어봐야 한다. 일단 나는 내 옆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하지 않다.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나와 무슨 상관인가. 앞집에서 소리 질러서 나의 잠을 깨우는 게 아닌 이상 문제없다. 남편 회사에 가끔 놀러 가긴 해도, 거기 계시는 직원분들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굳이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가까이 있는 가족을 생각해 본다. 내 자식이어도 잘 있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사춘기라서 알려주지도 않는다) 가끔 성적표나 구경하는데 그마저도 흥미는 생기지 않는다. 매년 고만고만한 성적이니 놀라울 것도 없다. 엄마가 돼서 그 성적을 가만두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다. 시킨다고 될 공부면, 얼마나 좋겠나. 딱히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자식들이기에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내가 차가운 사람인가? 하지만 관심이 가지 않는데, 억지로 신경 쓰는 것만큼 피곤한 건 없다.
게다가 막내딸 말에 의하면 엄마는 “예민” 하단다. 정말이지 살면서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다. 눈치 없고 둔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는데, 예민이라니.
감정적으로 예민한 걸 따지자면 일단 동생이 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상대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적당히 커피를 마시면 상관없고, 누군가의 감정은 내 관심 대상이 아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대충 흘러가게끔 내버려 둔다. 곱씹을 일이 있다면 그건 나 혼자 고민해 볼 일이었다. 굳이 누군가에게 털어 넣고 해소할 일이 아니었다. 책이나 영화로 도피하여 상상 속에서 혼자 버티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니 스스로 예민하다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몸과 감정이 예민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기에, 대부분 이런 사람을 예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예민함이란, 한 가지 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자꾸만 모든 신호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싶다. 지금 내가 “언니는 무관심한 사람이야“ 라는 한 마디를 파고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한마디였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까. 나 자신도 무척 피곤하게 느끼면서 그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글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야 그나마 머릿속이 정리되니까 말이다.
나는 언제나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내면으로 파고드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이 장난 삼아 한마디 했어도, 왜 그렇게 말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찾아야 만족스럽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을 해석하고 분석할 수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관심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신호를 보지 못하게 닫아버린 인간일지도 모른다. 삶 자체가 너무 버겁고 무거워서 모든 신호와 관심을 강제로 로그아웃시켜야만 겨우 사는 인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그중에서 어쩌면- 돌연변이 같은 이상한 동물.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나는 무관심한 사람이라서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타고난 기질이 이모양인걸 어쩌겠나. 변명 같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무심해야 한다. 너의 모든 말을 듣기엔 나는 너무 생각이 많으므로.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다. 나도 너에게 관심 없으니, 너도 나에게 관심을 꺼줬으면 하는 바람. 하지만 사람들은 남 일에 너무나 관심이 많으니 괴로운 건 여전히 나일 거다. 불안을 가슴에 품고 어찌어찌 살아가겠지. 남은 일생동안 말이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