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사회복지개론 과제
1. 사회복지학개론 1강에서 6강 중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나 주제를 선정하시오.
1) 제 5강 빈곤의 운명에 대하여.
빈곤은 운명인가? 아니면 책임인가? 봉건시대의 빈곤은 태어날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다. 귀족만이 권력을 독차지하며, 사회의 책임을 지고자 하였다. 그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라고 하였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도덕적 의무였다. 타고난 운명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빈곤한 하인은 자신의 계급을 인정하고 귀족에게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그들의 시혜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탄생하면서 빈곤은 개인의 책임으로 변했다. 봉건사회가 끝나고 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면서, 초기 자본주의의 주장은 “부와 가난은 개인 노력의 결과”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개인의 빈곤은 게으름의 결과였고 그 결과에 개인이 책임을 져야 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은 움직이고 국가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산업혁명 이후 빈민의 비참한 삶은 찰스 디킨스(C. Dickens)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러다이트 운동, 차티즘 운동을 벌이며 이후 개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획득하였으며,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면서 조금씩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더 이상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 위험 때문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자본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많은 사례를 보며 결국에는 정부가 개입하였으며 이제 빈곤은 단순하게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바뀌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빈곤의 관점이 변화했다.
2) 빈곤의 역사가 왜 인상적이었을까.
내가 자주 하던 게임은 “런던의 그림자”라는 스토리 게임이다. 이 게임은 19세기 말 런던을 배경으로 런던 동부의 빈민가를 중심으로 이상한 병이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야기 속 경찰은 동부지구에 사는 빈민들은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이고 망나니 같은 부도덕한 인간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토리에 등장하는 동부지구 빈민들은 배고픔에 힘겨워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주인공은 귀족 출신으로 그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게임 내 인물들이 읽던 맬서스의 인구론도 흥미롭고 신구빈법을 비판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게임 속 동부지구에 사는 시민들의 가난은 그들이 게을러서 당연히 겪게 되는 것들일까. 게임을 하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빈곤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빈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하루아침 만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빈곤의 시선이 나의 진짜 생각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고 싶었다. 그때 5강의 빈민의 역사를 설명하는 연극 속 인물들을 보며 강한 흥미를 느꼈다.
3) 나의 생각은.
19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으면 빈민이 언제나 등장한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라던가,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이 그렇다. 특히 조지 오웰의 책에서는 냄새로 계급을 구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빈민에 대한 편견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지나 우리들의 생각에 바닥부터 켜켜히 쌓아올린 것들이다. 부랑인의 비참한 생활은 글에 잘 드러나 있다. “부랑인 생활의 나머지 큰 악폐는 강요된 게으름이다. 우리는 부랑인 법에 의하면 부랑인은 길 위에서 부랑하거나 부랑자 구호소 방 안에 앉아있거나 또는 그 사이에 부랑자 구호소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땅바닥에 누워 있거나 하도록 되어있다” 빈곤을 삶의 조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빈곤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지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때 중요한 법이 구빈법이다. 빈곤을 어떤 시선으로 보았길래 이런 악법이 등장했을까. 그 흐름을 알고 스피넘랜드 법의 의미, 빈곤의 시선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선은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내가 읽는 책과 즐기는 게임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빈곤 인식의 흐름을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하였다. 빈곤의 인식 변화에 따라 나의 삶과 복지도 달라졌다는 배움을 얻었다. 처음에는 나의 가난은 “노력”해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빈곤의 역사를 통해 사회적 연대로 다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이 변했다.
2. ‘게을러서 가난할까 가난해서 게으를까’라는 질문에 대해 논하시오.
1) 두 입장에 대해 각각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오.
우리는 고전과 옛이야기에서 게을러서 가난하고 불행해짐을 멀리해야 한다고 교훈을 얻었다. 성경 잠언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또는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같은 말로 게으르면 가난해지고 고통받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도 비슷하다. 여름내 부지런하게 일한 개미는 추운 겨울에도 풍족하게 보내지만, 베짱이는 개미와 정반대다. 즉, 게으름은 원인이고 가난은 결과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부지런해야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전와 우화, 속담 등에서 부지런한 삶을 교훈으로 전한다. 그렇다면 가난해서 게으를 수 있을까? 여기에 장기적 빈곤에 시달리는 기사를 읽어보자. 2010년 한겨레 21에서 취재한 기사다.
20대의 이영호·박선영 씨에겐 공통점이 있다. 잠만 잔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뭘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본보기’가 가족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런 역할 모델은 이웃집에도 없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통틀어 별로 없다. 그들의 부모는 돈 버느라 바빴다.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가끔 자식을 마주칠 때면 때리거나 윽박질렀다.
이 기사에 나오는 청년은 누가 봐도 “멀쩡한” 사람이다. 건강하고 젊으니 어디든 가서 부지런하게 일한다면 앞으로 삶이 나아질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빈곤하기 때문에 무기력을 학습하였고 그들에겐 삶의 의지나 희망은 없다. 이들은 가난해서 게을러진 사람들이다.
2) 두 입장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우리는 새벽배송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폭설과 폭우, 코로나와 독감 따위 상관없이 밤 12시 이전에 주문만 한다면 새벽 7시까지 배송을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잠을 자는 시간에 그들은 일한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가.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는 부지런한 사람이니 부자는 아니어도 평범하게 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쿠팡·마켓컬리 등 새벽배송 노동자의 우울증과 자살 생각 빈도가 다른 노동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통제’에 과로로 내몰리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사회적 고립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야 할 시간에 그들은 고강도 노동을 하며, 건강을 위협받는다.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겪고, 실제로 과로사한 사례도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므로 복지안정성도 덩달아 낮아진다. 불안한 삶은 개인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의 불안한 삶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기업을 통제하지 못한 국가와 사회다. 단순하게 부지런해야 잘 살 수 있고, 빈곤이 개인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실 “부지런해야 잘 산다”라는 것도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아닌가. 부지런함을 개인에게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오로지 개인이 져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나만 사는 사회가 아니다. 나와 이웃, 사회, 더 나아가 국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난은 게을러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과로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국가와 사회가 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정책을 통해 연대로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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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과목은 만점이고, 심리 상담은 늘 점수가 깎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아무튼 이 과제는 멘트까지 달려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 칭찬은 40대 아줌마도 기쁘게 하는것...!
역시나 아카이브 의미로 올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