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계약을 맺은 사람들

방송대 지역사회복지론 과제

by 조화득


도서 『행복계약을 맺은 사람들』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시오.



1.


“저속노화 식사”


‘저속노화 식사’란 정희원(40)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 조교수가 2023년 X(구 트위터)에 “새해에는 남들보다 뇌 늙는 속도를 1/4로 만드는 식사를 해보자”라는 글을 올린 후 화제가 된 용어다.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 초가공식품, 단순당, 정제 곡물 대신 야채와 과일 콩류를 많이 먹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운동하면 된다. 그러면 노화 속도가 1/4로 줄어든단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희원 교수의 말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만다. 토마토 가격에 깜짝 놀라 숫자를 다시 본다. 그리고 다시 고민한다. 내가 이걸 손질하고 냉장고에 넣어둘 시간은 있을까? 신선식품은 가공식품에 비해 금방 상하는데, 상하기 전에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보관이 편리한 가공식품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단순당, 즉 설탕이 좋지 않다는 건 안다. 비정제 설탕이나 알룰로스 같은 대체 감미료 가격과 흰설탕 가격을 비교하자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과연 건강하게 살고 싶은 나의 욕망이 제대로 실천되지 못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


개인의 소비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혹은 조금 저렴하게 식품을 구입할 방법을 알아보라고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온라인으로 대량구매하면 저렴하다던가, 못난이 채소를 구입하여 요리 할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건강한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온라인 구매를 어려워하는 노인이 있을 것이며, 시간이 부족하여 저렴한 마트까지 직접 다녀오기 힘든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식품 구매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2.


책의 머리말에서 행복 달성의 의미를 설명한다. 행복을 달성한다는 것은, 충족되어야만 하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조건은 ‘본질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인간의 행복 추구는 당연한 권리이며,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때 저자는 행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함수로 수치화하여 설명한다.


행복함수란 욕망을 소유로 나는 값이다. 경제학자 새뮤얼슨이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의 본질적 존엄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욕망의 종류와 수준, 그에 대응하는 소비 활동과 소비 능력에 대한 개념이다. 저자는 행복함수를 이용하여 복지 사회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행복 달성 운영 방식은 공동체 구성원 각각의 행복함수=1의 충족이 중요하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건강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일까. 빈곤한 가정이 가공식품을 선호하고, 채소류를 사 먹지 않는건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저소득층의 먹거리 문제는 이들의 건강과 삶의 질 문제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누구나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보다 여전히 열악한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 결과, 제3세계 유형의 지속적인 기아는 아니더라도 간헐적으로 계속되는 굶주림 상태에 놓여 있는 인구는 선진국에서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값싼 패스트푸드나 정체불명의 정크 푸드를 먹고 비만에 시달리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이다.


농업ㆍ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목적에 따르면 국민에게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2024년 10월 현재 안정적인 공급은커녕 수산물(14.2%)과 채소류(11.1%)가 10% 선을 넘는 평균 가격 상승률을 기록하며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가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회적 구조 안에서 개인의 건강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가파른 물가 상승과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의 변화를 개인의 선함 마음에 기대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오래전 지역아동 센터에서 근무했을 때 일이다. 처음 실습 나갔던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은 지역 내에서 인맥도 넓고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곳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기농 먹거리와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식재료가 무척이나 풍부하였다. 같이 실습하던 학생끼리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이 곳이 낫다며 농담할 정도였다. 개인의 선한 마음에 기댄 후원이 넉넉하였으며 아이들은 영양가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제공받았다. 그 당시 실습이 끝나고, 지역아동센터도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간 지역아동센터에서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너무나 열악했다. 그 곳은 후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음식은 늘 고만고만했다. 신경 써서 아이들에게 음식를 제공한다는 느낌보다, 그냥 마지못해서 주는 식사같이 보였다. (심지어 에어컨은 센터장실에만 있었다. 아이들은 선풍기로 한 여름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어른도 그렇게 느꼈으니, 아이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후원의 차이라지만, 차이가 심해서 충격이 컸다.


마을 안에서 후원이란 개인의 선한 마음에 기대어야 한다. 그렇다면 후원자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아동은 질 낮은 식사를 해야 하는 걸까. 성장기 아이들이 영양가 있는 식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나눔의 소외가 발생한다면, 후원자의 시혜와 자선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즉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의 건강한 식사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청소년의 건강한 먹거리 권리를 위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역사회내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라면 지역사회보다 더 큰 공동체가 필요하다. 바로 국가다. 저자는 국가는 공동체로서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결국 공공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지역사회의 현안을 제도, 법률, 행정 등을 통해 바꾸어야 하고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시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이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첫 번째 목적이다. 시민과 지방정부의 역할은 공동체 구성원 연대를 위한 구조의 제도화이다.


인간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의식주를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욕망을 채우는 행위는 소비이며 소비 행위는 공동체에서 달성한다. 소비 능력에 따라 행복달성 지수는 달라진다. 행복이 달성되지 못한, 즉 행복함숫값 1을 달성하지 못한 개인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저자는 제도, 구조가 갖춰지면 되지 않을까 하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때 “지역사회복지”를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것인지 개념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내가 경험했던 지역아동센터의 급식처럼 말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지역사회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후원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행복한 식사를 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지역사회로만 한정짓게 된다면 지속성이 사라진다. 동시에 지역사회 정체성도 흔들리고 삶의 수준, 즉 행복한 지역사회 모습도 약화된다. 지역사회 복지는 국가 단위의 사회복지 정책이 구체화하여서 개인 및 집단의 삶의 질을 높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개인이 건강하지 못한 식사를 하는게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식사를 만들게 하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 구조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 저자는 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타심이다. 공동체 내에서 인간에 대한 기준, 우열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존엄하고 평등한 인간이라는 연대성에 기반한 이타심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타심에서 나오는 연대성은 너와 나 사이를 뛰어넘고 공동체로 확장하여 작동하도록 만든다.


3.


인간에겐 동물처럼 생존에 필요한 날카로운 발톱이나 송곳니는 없다. 대신 이타심이 주는 진화적 혜택이 있다. 바로 안전과 생존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인간이 그 긴 역사 동안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순수한 이타적인 행동을 계속해서 해왔는지에 대한 의문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개인이 모든 사람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기에 우리는 국가가 필요하다. 공동체의 이타심이야말로 지역사회복지에 가장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너와 나 사이를 시혜적 입장으로 보는 것도, 구걸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한 권리이다. 공동체에 의한, 국가에 의한 나눔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나눔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누구나 소외되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이것이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근본적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서, 저속 노화와 지역아동센터 경험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리고 건강을 생각해서 마트에서 장을 보는 행위에서 사회구조를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먹거리의 물가는 어떠한지, 우리 사회 안에서 누구나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는지, 혹은 식품 물가가 너무 올랐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에서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등을 말이다. 나만 건강하게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지역 내 빈곤층 청소년들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으려면 우리 지역 내 복지가 어떤 것이 있는지 공동체에 힘을 보탤 방법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나의 생존이 곧 공동체의 생존이니 말이다.










------




재작년 방송대 지역사회복지론 만점 받았던 과제다.

어쨌든 내가 쓴거니, 아카이브해둘겸 그냥 올려본다. 아무래도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니, 각주가 없어서 민망하네.


잘써서 만점을 준건지, 그냥 논리에 맞으니까 준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우습다. 수치화된 결과를 보니 기쁜건 어쩔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재미없는 너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