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본래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는 금지에 동원되는 조치들이 효과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금지 자체가 그 너머에 추구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동경의 감정마저 자아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금연 구역에는 오히려 금연 구역이 아닌 곳보다 더 많은 담배 꽁초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금연 구역이라는 표지 자체가 그 곳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야 할 만큼 많은 흡연이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만큼 그 곳이 흡연에 적합한 장소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퇴폐적인 서구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금지 리스트를 작성하던 소련 검열관들은 사실 보통의 서구 사람들보다 더 서구 문화에 해박한 서구 문화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이 작성한 리스트는 메탈리카, 주다스 프리스트,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같은 서구 문화 상품에 대한 추천 가이드북이나 다름없었다. 당대에 가장 잘나갔던 음악가가 누구인지 알아보려면 당시 소련에서 누구의 음악을 금지하는지를 알아보면 되었다. 그러한 검열 규정의 함의, 즉, 어떤 음악이, 영화가 사회의 '미풍양속'에 해가 된다는 규범적 표명, 그것들이 모종의 규범적 정상성을 넘어선 과잉을 표현한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아무런 독기도, 과감함도 품지 않은 관제 예술보다 진짜에 가까운 예술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던 소련 당국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 인민들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구 록밴드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 중 한 방편은 후대에 이른바 bone music 또는 ribs라 알려진 것이었는데, 병원에서 폐기된 엑스레이 필름을 잘라 LP판으로 가공한 것이었다.
1991년,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라이브 무대로 회자되는 Monsters of Rock이 소련의 붉은 광장에서 개최되었고, 무려 50만명의 소련 인민들이 AC/DC, 판테라, 메탈리카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인민들이 서구 문화에 무지하고 혐오감마저 가지기를 바랬던 소련 당국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소련 인민들은 서구 문화에 그야말로 미친듯이 열광했다. 그것이 밝혀지자, 소련의 해체 이전부터 소련이라는 체제의 이상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급, 퇴폐 문화에 대한 검열은 곧 우월 문화에 대한 규제임이 드러난다. 소련, 북한 같은 나라들이 특유의 집요한 폐쇄성을 고수하는 이유는 자기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아무런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체제의 이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회주의 지상 락원, 강성 대국의 전망이 곧 허상임을 폭로하는,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정보의 유입을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반면, 정상 국가는 곧 자유민주주의적 국가라는 후쿠야마적Francis Fukuyama, Fukuyamaistic 합의는 그깟 반동 몇 마리쯤 있어도 나라가 망할 일은 없다는, 체제의 견고함에 대한 자신감에 의해 가능하다.
불륜, 근친상간이 정말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라면 굳이 그걸 사회적 금기로 지정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러한 충동을 느끼기에, 이를 동물적이고 저열한 욕망으로 낙인찍고 규제해야만 했던 게 아닐까? 반면, 자살 금지법, 독극물 섭취 금지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제초제를 들이켜 자살 시도를 한다고 해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게 되거나 불륜, 근친상간을 할때와 같은 사회적 지탄에 직면할 일은 없다. 어차피 그런 조치없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죽음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정말 어느 누구에게도 권면하지 못할 만큼 해악적인 것이라면 금지 조치 자체가 무의미하다. 농약 병에 해골 마크와 엄중한 경고 문구가 적혀 있지 않더라도 그걸 즐겨마실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흔히 담배를 백해무익하다고 하지만, 피우는 사람 나름대로는 체감되는 편익이 있으니까 피우는 것이다. (흡연을 하면 할 수록 실제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한다는 게 생리-화학적인 팩트라 해도 그렇다. 팩트만큼이나, 어쩌면 팩트 이상으로 기분이 중요하다.) 담배가 진정한 의미에서 백해무익하다면, 즉, 담배를 피워도 일체의 해소감, 고양감이 들지 않는다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국가적 캠페인을 펼칠 것도 없이 모두가 알아서 금연을 할 것이다. 사치, 향락, 퇴폐, 방종 그 어떤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악덕이라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입으로는 정해진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일탈을 범하고 싶어 하기에 금지의 당위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