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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by 안치용

서울ㆍ경기 지방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 웅크린 몸에 천 쪼가리 칭칭 감아놓은 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기세다. 밍밍한 몸 말고 동여맬 추억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어제인 양 오늘 집 나선 개, 찬바람 귓등으로 날리고 맨발로 눈길 위에 족적 남기느라 흥이 난다.


국민안전처가 문자를 보냈다. “오늘 11시 폭염주의보 발령. 노약자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수분섭취, 물놀이 안전 등에 유의하세요.”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먹은 게 어디로 가지. 똥 싸. 많이. 잘 싸? 잘. 설사가 아니면 괜찮은데.


나의 개는 버거킹 문 앞 가로수 밑에다 똥을 싸기를 좋아한다. 되도록 그전에 해결하려고 공원을 여러 바뀌 돈다. 그래도 기어코 그 앞에서 자세를 잡으면 나는 몸으로 버거킹 쪽을 가린다. 버거킹 앞이라고 스콜이 빨리 똥을 누는 법은 없다. 똥 치우는데 문자라도 오면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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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여주인공 테레사는 평생 전무후무한 외도의 현장에서, 격렬한 섹스를 마치고 곧바로 똥을 싼다. 섹스하고 똥 싸기. 배설에게 배변은 넘사벽이다. 배배 꼬인 내장의 말단, 최종적 인터페이스에서 똥은 사랑의 엽기적 은유가 될 수도 있다. 엽기적이 아니라 평범한 은유라고 해도 된다. 스콜의 배변은, 그나마 버거킹 앞의 배변은 은유 없는 서사라도 형성하며 나는 그 서사에 검은 비닐 봉다리만한 무게로 구겨 들어간다.


얼음 위에 댓잎 자리라도 볼까. 댓잎 이불 덮을까. 자리 보고 이불 덮어 전할, 빙점 아래의 기억, 기억의 기억이라도 찾아볼까. 세월처럼 개는 앞서 걷는다. 서울ㆍ경기 지방에 한파주의보 내린 날 세월과 회한처럼 개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 땅을 걷는다.


국민안전처의 문자를 결연하게 지우며 자외선 아래로 뛰어든다. 내 손에 목줄이 없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내 목에 그 줄을 건다. 이런 날 털 없는 얼굴엔 자외선차단제가 필수다. 버거킹만 하지는 않지만, 인간이란 포유류가 똥 싸기에 특급호텔만 한 곳은 없다. 물 내림. 그저 똥만 싼다.



**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는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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