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 첫 기사

by 안치용
수습 첫 기사.jpg

6문장. 날짜는 확실하지 않다. 30일. 이날이 1991년 11월 30일인지, 12월 30일인지, 아니면 해를 넘겨 1992년 기사인지 알 수 없다.


1991년 11월 11일 경향신문에 입사한 나는 1~2주의 사내 교육을 받고 그해 아마도 국제부에서 처음으로 편집국의 수습기자 교육을 받았지 싶다. 당시 신문사 국제부엔 24시간 텔렉스라는 게 들어왔다. '와이어실'에 들어가 밤새 쌓인 AP 등의 텔렉스를 쇠자를 대고 기사별로 잘라서 미주 유럽 등 지역 담당 기자 책상에다 올려놓는 게 수습기자의 업무였다. 수습이 없을 때는 탈수습한 일반기자가 그 일을 했다.


그런 일을 하던 어느날 내 기억엔 송 아무개로 생각되는 선배가 "번역해봐" 하며 AFP통신의 영문 텔렉스를 찢어서 던져주었다. 그걸 번역한 게 이 기사이다.


"하노이에 전자공장 대우 호텔도 짓기로"


초판 종이신문이 편집국에 배달되어 이 1단짜리 기사를 읽던 날의 기분은 두 말할 필요 없이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이제 기자를 그만두었지만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첫 기사를 보며 생각한 각오(아마 그런 게 있지 않았을까?)가 기자 생활에 반영되어 그만큼의 좋은 기자가 되었는지는 그냥 물음으로 남겨놓자.


사진은 내 스크랩북에 남아있는, 종이신문 오래낸 것. 오른쪽 메모는 아마도 내 글씨 같은데, 왼손으로 썼는지 알아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두 개의 별이 표시돼 있다.


국제부 수습 시절에 기억이 남는 사건은, 지금은 다른 언론사에서 간부급 기자로 있는 아무개군과 함께 국제부에 배치를 받았는데, 모범생인 아무개군과 달리 호연지기가 넘치던 나는 수습업무를 마친 다음에 할 일이 없자 "목욕 하고 오겠다"며 근처 대중탕에서 호기롭게 목욕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당시엔 목욕문화가 활성화하여서 마감하고 나서라든지, 틈이 나면 목욕탕에 가서 욕탕에서 몸을 불리곤 했다. 오후 5시반에서 6시반 사이엔 상당히 많은 기자들, 그것도 데스크들을 볼 수 있었다. 욕탕에서 벌거벗은 우리는 말하자면 서로 평등했다고 하겠다.


어느 사이 목욕문화에 물든 수습기자 안 아무개는 할 일을 다하자 아침 시간임에도 그냥 쪼르륵 목욕탕으로 달려간 것. 나중에 출근한 사수 선배는 나에게 온갖 폭언을 퍼부었다. 사실 지나고 생각하니 그때 내가 대범하긴 너무 대범했다고 할 수 있다.


"수습새끼가"로 시작해서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는 정도의 욕설로 기억한다. 실제로 구타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이 양반은 나중에 몸이 좋지 않아서 조금 고생했고, 더 나이들어서는 언론계의 주요 자리를 맡아 편한 말년을 누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