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겨울 수습기자의 취재수첩

by 안치용

언론사에 입사해 사내교육이 끝나면, 편집국 부서를 돈다. 이른 바 내근 부서에서 돌아가는 모습을 겉핥기로 파악하고 나면, 그 유명한 사회부 수습기자 교육이 시작된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신문사에서 쓰는 말 중엔 일본어가 많다. '사스마와리'가 대표적이다.


'사스마와리'는 察回를 일본어로 발음한 것으로 기자가 경찰서 등을 정기적으로 돌며 취재하는 일을 말한다. 수습기자 교육은 이 사스마와리 교육에서 시작한다. 새벽에 경찰서와 병원을 돌며 밤 사이에 어떤 강력사건이 있었는지를 경찰관과 당직 간호사에게 물어 보고 다닌다.


병원에선 주로 시체를 찾는다. D.O.A(Dead On Arrival)는 살인사건과 관련될 확률이 있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당직 간호사에게 세수 안 한 얼굴로 새벽마다 시체를 찾으러 다니는 게 수습기자가 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젊은 수습기자와 젊은 당직 간호사가 눈이 맞아 연애를 하기도 했다는데, 내가 수습할 때는 본적이 없고 다만 그렇게 만나 결혼했다는 선배 부부 얘기는 들었다.


경찰서에선 형사과와 강력반을 방문한다. 이른 새벽에 이런 활동을 마쳐야 하고 보통 수습기자 교육 기간이 겨울철이기에 각사의 거지 떼 같은 수습들이 경찰서와 병원을 몰려다니는 모습을 수습기자 교육철엔 볼 수 있다. 그 거지 떼 속에 나 또한 포함돼 있었다. 간호사와 로맨스는 없었다. 내 기억에 로맨스가 힘든 게 그땐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연애보다는 잠이 우선이었다. 병든 병아리들처럼 과거 기자들은 수습 시절에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던 기억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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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문사엔 이런저런 기관에서 만들어서 제공한 취재수첩 또는 기자수첩이 널려 있었는데, 수습기자 교육을 받으면서 저런 걸 하나 들고 다녔다. 나는 성균관대학에서 제공한 기자수첩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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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안엔 저런 내용이 적혀 있다. 취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먹, 발길질"이라고 적힌 건 단순 폭행 사건을 취재하며 적은 듯 하다. 아래는 삐삐가 저 번호로 5번이나 울렸다는 메모인데, 그게 입사동기 한테 온 것인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내 기억에 적어도 회사번호는 아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분명 저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수습 기자가 제 삐삐에 찍힌 번호를 보고도 전화를 걸지 않는 건 매우 드문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그런 일이 있긴 있었다.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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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취재 메모는 경찰청 외사과에다 전화로 취재한 내용이지 싶다. 이게 어떤 기자로 연결됐는지는 알 수 없다. 수습기자의 취재가 직접 기사로 연결되는 일은 드물고 거의 연습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와중에 특종을 터뜨리는 대단한 선수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대단한 선수 부류에 속하는 인간 유형이 아니었다.


내가 지도하는 지속가능바람이란 대학생 단체에서 더러 언론계로 진출했는데, 얼마 전에 듣자니 사회부(와 수습기자)의 사스마와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경찰서에서 취재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전언이다. 아무튼 시대가 변하지만 과거는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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