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천지가 이단 또는 사이비 종교의 대명사로 사계를 석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천지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전해지기론 1980년대 중반에, 여러 이단 및 사이비 종교에서 생활하며 잔뼈가 굵은 이만희가 마침내 자신이 교주가 되어 신천지를 창업했다. 창업 당시에 이만희 교주가 지금의 ‘성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종말론과 관련된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와 잠깐이지만 개인적으로 접촉한 경험은 1992년 10월 28일이었다. 그날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다미선교회의 휴거일이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로 들어올려지는 종말적 사건이 휴거이다. 그때 나는 어느 중앙일간지 사회부 초년병 기자로, 마침 야간당직이라서 서울 마포구 다미선교회 건물 앞에서 그들의 ‘휴거’를 취재했다.
다미선교회는 이장림 목사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말론 종교집단. 원래 해외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는 활동을 한 이 목사가 1980년대 후반에 출판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에서 다미선교회라고 이름을 따왔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 세기말 분위기와 맞물려 종말론을 내세우는 신흥종교들이 많이 나타난 1990년대 초반 종말론의 대표선수가 다미선교회였다. 다미선교회는 종말론자 이장림 목사가 주도하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묵시록을 근거로, 1992년 10월 28일(수)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예언’하여 신도를 모았다.
기성 개신교 교단들에서는 당연히 다미선교회를 이단으로 단죄했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이 종말론 종교에 빠져들었다.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니 응당 신자들이 세상의 인연과 복록을 떠나는 게 당연하였고 이는 사회문제로 비화한다. 1992년 10월 28일이 가까워질수록 다시선교회는 포교에 열을 올렸다. 마침내 그날.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하며 서울 마포구 다미선교회 건물 안에서 휴거를 기다렸고, 나는 경향신문 사회부 당직기자이자 건물 앞에 줄지어 선 매스컴의 일원으로 그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나는 아니고, 유능한 타사 사회부 기자는 건물 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휴거 의식을 지켜봤다고 한다. 흥미로운 체험이었지 싶다.
다미선교회 밖은 취재진, 구경꾼, 휴거 때문에 다미선교회에 들어간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 등 뒤섞여 북새통이었다. 건물 안의 사람들과 달리 건물 밖의 사람들은 휴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에,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휴거에 실패할 사람들이 귀가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사실은 다미선교회 사람들이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든 게 아니라 신문과 방송에서 나가는 이들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포토라인이었다. 그렇게 한 쪽으로 길을 터놓아야 휴거에 이르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이들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물고기가 들어오게 어항을 설치해 놓은 것과 비슷했다.
사진과 카메라 기자들이 몸싸움까지 해대며 길목을 장악하고 있어서 나처럼 펜을 들고 온 기자들은 뒤쪽에 따로 모여 수다를 털며 휴거시점을 기다렸다. 다미선교회 내에서 10월 28일이라는 데에는 일치가 이루어졌지만 정확히 몇 시에 휴거가 일어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정오인가 자정 직전인가, 한국시간인가 이스라엘시간인가 아니면 GMT인가 등을 두고 논의하다가 결국엔 자정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는데 28일이 끝날 때까지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속보도로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졌다. 그중 하나는 “나방이 휴거가 되었다”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누군가 나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소리쳐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다. 또 하나는 휴거가 실패한 후에 한 이장림 목사의 발언으로, 그는 “여러분, 휴거는 불발했습니다.”는 두고두고 회자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휴거를 믿는 종교집단의 지도자였던 이 목사는 파렴치한 희극의 주인공으로 기록됐는데, 그가 1993년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채권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미선교회와 이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1992년에 휴거가 되어 1993년엔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어야 하기에 1993년에 만기되는 지상(地上)의 채권을 산 것은 다미선교회가 사이비 종교라는 결정적 근거의 하나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사기에 해당하기에 이장림은 휴거 날짜 한 달쯤 전에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휴거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그해 11월 2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도들로부터 헌금반환 신청을 받기로 했다. 이로써 다미선교회가 해산한다. 해산할 때 신도가 약 8,000명으로 추정된다. 신도가 25만 명에 이르고 재산이 막대한 현재의 신천지는 오래 전에 다미선교회 수준을 넘어선 셈이다.
이만희 신천지 또한 종말론 교리를 갖고 있지만 무모하게 구체적으로 휴거날짜를 박은 다미선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은 것은 마케팅상의 강점이다. 신천지의 강점은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개신교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만다.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는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말았지만 2020년 코로나 사태의 한 복판에 선 신천지는 대한한국에게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물리고 있다.
'빗나간 그날'이란 제목을 단 199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 23면 사회면 톱기사. 나는 사회부 야근기자로 28일 밤부터 29일 새벽까지 서울 마포구 다미선교회 건물 앞에서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