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보름 쇠듯”이란 말이 있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날 개에게 음식을 주면 그해 여름에 파리가 꾀고 개가 마른다 하여 개를 굶겼다고 한다. 개에 빗대 곤궁한 형편을 일컫는 옛 말이다. 당사자인 개가 얼마나 곤궁하였을까. 그러나 다른 집 애완견과 마찬가지로, 우리 스콜은 대보름이나 추석이나 곤궁한 적이 없다. 오히려 1년 365일이 한가위라고 할까. 자신이 사람인 줄 아는지 잘 때 굳이 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그러면서도 그 옆에 애지중지하는 공을 널어 넣고 지내는, 요즘을 사는 나의 개에겐 “개 보름 쇠듯”이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당사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청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냥 그런 것으로 하자.
저녁 무렵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갔다가 그 사람을 또 만났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단정한 머리에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공원에서 늘 소주를 마신다. 아침에 공원 벤치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여러 번. 추석 전날에도 소주병 두어 개가 어김없이 그의 옆에 있고, 그 기세에 장악되어 정자는 온전히 그의 차지다.
처음 보는 할머니가 전화로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걸으며 (들려서) 듣다 보니 며느리 욕이다. 추석 같은 명절엔 대개 가족 간의 갈등이 고조된다. 부부갈등, 형제갈등, 부모ㆍ자식갈등 등 많은 갈등이 목격되지만 명절 갈등의 최고봉은 단연 고부갈등이다. 고부갈등은 근본적으로 가부장제에서 비롯하는데, 갈등의 전선에서 맞닿은 건 통화하는 저 할머니처럼 여성이다.
전래의 명절 중에 가장 큰 명절은 사실 설과 추석이 아니라 대보름과 추석이다. “개 보름 쇠듯”을 비롯하여 대보름과 관련하여 많은 속담이 있듯이, 추석에도 관련한 많은 속담이 있다. 그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란 속담은 추석의 풍요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는 “팔월 추석 때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밤낮을 즐겁게 놀듯이 한평생을 이와 같이 지내고 싶다는 뜻의 속담”이라고 한다. 사전 집필자는 유래에 관한 옛 문헌을 인용한 뒤 “이때는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다. 또 즐거운 놀이도 많고 과일도 풍성하고 각종 놀이도 있어 아이로부터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겁게 지낸다”라고 적었다.
사전의 이 항목 필자가 아마도 나와 같은 남자가 아니었을까. 여자 필자였다면 조금 다르게 쓰지 않았을까. 여자들은 더러 추석을 노동절로 표현한다. 매우 정확한 표현이라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서부터 나에게 추석은 배 불리 먹고 뒹구는, 조금은 귀찮은 명절이었지만, 그 음식과 저간의 정황을 갖추는 데 들어간 어머니의 노동에 대해서는 지금에서야 눈을 돌리게 된다.
북핵이다, 총기난사다, 세상은 갈등과 대립, 분노와 폭력으로 얼룩지지만 추석 상(床)만은 이해와 동감(同感)이 넘치는 한가위에 어울리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전에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겠지만 말이다. 스콜은 소주병, 고부갈등, 북핵, 총기난사, 뭐 이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고, 맛있게 먹고 배불리 먹고 나면 다음엔 무조건 공에만 생각을 집중한다. 내일 보름달처럼 큰 공을 보면 어쩌려나. 물려고 하늘로 뛰어오르려나, 아니면 던져달라고 나를 보려나. 철(Fe) 없는 게 스콜 또한 남자(Male)라서 그럴까. 기왕 철없는 거, 내일 네가 좋아하는 여자 개에게 달이라도 따서 물어다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