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킹덤 오브 헤븐: 디렉터스 컷>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은 영상언어로 작성된 서사시이다. 영어단어로는 ‘narrative’보다 ‘epic’에 가깝다. 이 영화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당연히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라는 점을 의식하며 감상해야 한다. 세부적인 고증이 잘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흥미롭게도 극화의 소재인 역사 자체는 왜곡했다.
스콧 감독이 현실의 역사를 새로운 창작물의 형태로 영상에서 재구성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우리에게 전해진 서사시라는 것이 오래전 어떤 영웅적 인물의 이야기를 대를 이어 구전(口傳)하고 여기에 후대의 상상력이 더해져 종국에 하나의 문서로 완성된다고 할 때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은 서사시의 생성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서사시는 발생 시점의 영웅적 사건이며 동시에 후대의 관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서사시 수용집단 공동의 기억과 기대이다.
<킹덤 오브 헤븐>이 그렇다고 역사를 대체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에 관한 확정된 기록이 공인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웅서사(epic)가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생한 실례를 본 듯하여 한 말이다. 구성원에 의한 누대의 끊임없는 재구성이 epic의 정수라면, 영화적 재구성 또한 왜곡은 아니다.
십자군전쟁을 영화로 기억하는 법
십자군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이 8차례에 걸쳐 이슬람세계를 침략한 종교전쟁이다. 인류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중동에서 무수히 많은 제국과 왕조가 명멸하며 전화(戰禍)가 잇달았지만, 십자군전쟁 같은 전쟁은 없었다. 종교적 신념이란 외피를 뒤집어쓴 서유럽 기독교권의 정치와 권력, 탐욕이, 신앙이 아니라 약탈과 학살로 점철된 야만으로 분출한 것이 십자군운동의 본질이었다.
<킹덤 오브 헤븐>은 1187년 7월 4일 기 드 뤼지냥의 예루살렘 왕국과 살라딘의 이슬람 아유브 왕조 간에 벌어진 ‘하틴 전투’ 전후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이어진 예루살렘 공방전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10월에 예루살렘이 살라딘의 수중에 떨어지며 항복협정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철수하고, 2년 후 영국 국왕 리차드1세가 참여한 3차 십자군 원정의 시작이 영화의 에필로그이다.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발리앙’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거의 전부이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킹덤 오브 헤븐>은 극장판이 아니라 ‘디렉터스 컷’인데, ‘디렉터스 컷’에서 극장판에 비해 53분이나 늘어난 분량은 발리앙 서사의 완결성을 채우는 데 중요하게 동원된다.
발리앙은 역사의 실존인물이지만 영화가 그려낸 것과는 달랐다. 프랑스 어느 촌구석의 대장장이가 성지 예루살렘에 가서 세상을 구한다는 서사를 위해 역사적 인물 발리앙은 가공되었다. 서출 혹은 사생아가 영주가 되고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는 구조는 실제 발리앙의 시대엔 불가능했다. 누구라도 원하는 무엇이 될 수 있다는 허위이지만 그래도 한동안 통용된 말하자면 ‘아메리칸 드림’과 더 흡사해 보인다. 그렇다고 그러한 구조의 통속성이 전언의 의의를 갉아먹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발리앙이 삶으로 웅변한 것은 천박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인류애란 영원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발리앙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려진, 예루살렘왕 ‘보두앵 4세’의 누이이자 나중에 왕위에 오르는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는 실제 역사에선 발리앙의 정적에 가깝다. 예루살렘 수성전에서 두 사람이 성안에 함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의 나머지 관계는 거의 허구이다.
영화는 이분법의 세계관으로 구성된다. 얼핏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하며 대립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종교와 무관하게 선인이 악인에 맞서 세상을 지켜내는 이야기이다. 시종일관, 선한 사람은 선하고 악한 사람은 악하다. 서사는 발리앙과 살라딘(가산 마수드)의 대치로 치닫지만, 두 사람은 서로 싸우면서도 악한 이들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일에 협력한다.
무능한데다 사악하기까지 한 기 드 뤼지냥(마튼 크소카스) 등 악의 진영에 맞서 발리앙과 살라딘, 그리고 나병에 걸린 왕으로 유명한 보두앵 4세는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와 동지애를 실현한다. 이러한 영화적 진술은 현실과 많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론 진실이기도 하다. 역사서를 집필하는 게 아닌 만큼 ‘몰빵 캐릭터’를 만든 게 스콧의 허물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되 ‘몰빵 캐릭터’를 창안해 전언을 뚜렷하게 하는 예를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볼 수 있다. 만화적 설정이라고 하여도 좋고, 고대 서사시의 참조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발리앙과 살리딘을 과도하게 미화함으로써 인물의 현실성과 역사성을 잃어버렸지만 감독은 대신 분명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 사이의 갈등이 심화하는 국면에서 십자군이란 예민한 역사를 영화화하고도 적어도 종교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어쩌면 기독교 일각에서 불편한 감정을 표시했을 수 있었겠지만, 만일 심하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현재가 아닌 1000년 전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만큼 아마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또는 자신들과 다르다고 판단하여 그랬지 싶다.
스콧 감독이 ‘몰빵 캐릭터’를 만들면서 미화한 내용이 특정 종교의 찬양 같은 것이 아니고 보편적 인류애였던 만큼 그의 예술방법론은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나의 진단이다.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킹덤 오브 헤븐: 디렉터스 컷>의 상연시간은 기존 극장판보다 53분을 추가한 총 190분이다. 극장판으로 시청하면 비약으로 느껴질 만한 것들이 있기에 “반드시 디렉터스 컷으로 봐야할 작품”으로 분류된다.
감독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영화에는 올랜도 블룸부터 에바 그린,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제레미 아이언스 등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대거 출연했다. 영화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올랜도 블룸과 에바 그린이었겠지만, 극중 존재감으론 보두앵 4세 역의 에드워드 노튼과 살라딘 역의 가산 마수드가 단연 다른 배역을 압도한 듯하다. 특히 얼굴 없이 가면만으로 ‘나왕 보두앵’으로 알려진 보두앵 4세를 연기한 노튼은 칭찬받을 만하다.
조연 배우도 탄탄하다. <해리포터>의 데이빗 듈리스와 브렌단 글리슨,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니콜라이 코스터 왈도, 알렉산더 시디그 등이 이 영화에 출연해 미래를 기약했다.
영화 대사 중에 개인적으로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신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해 못 하면 신이 아니니 걱정마시오.”(God will understand, my lord. And if he doesn’t, then he is not God and we need not worry.)
시신을 태우는 것을 불경하게 여긴 중세에서, 예루살렘 내의 역병을 방지하고자 시신을 태우기로 한 결심의 논거로 제시된 말이다. 재치 있는 말이면서 동시에 올바른 신의 이해를 보여준다. 가장 유명한 대사는 살라딘이 한 다음의 말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지, 전부이기도 하고”(Nothing, …, Everything!)
“예루살렘이 무엇이냐”고 묻는 발리앙의 질문에 살라딘이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만큼 굳이 여기서 해설을 시도해 의미를 국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참고로 영화에서 발리앙보다 연장자로 나오는 기 드 뤼지냥(1160년~1194년)은 발리앙(1140년대~1193년)보다 20년가량 연하이다. 그가 살라딘의 포로가 된 것은 사실이며, 석방된 후 그는 예루살렘왕국의 왕위에 연연하다가 나중에 리차드1세와의 친분으로 키프러스 왕국의 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