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날이 온다>에 대한 해외평을 보면 “재치 있고 소름 끼치는 풍자”(타임스), “섬세하고 균형잡힌 풍자”(가디언), “계속해서 웃긴다”(시카고 트리뷴) 등이 눈에 띈다. 아마 전체적인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리라고 짐작하지만, 인용한 부분만 보면 시카고 트리뷴의 단평은 뭔가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그날이 온다>는 분명 코미디이지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종류의 코미디가 아니다. 극장을 나서며 생각거리를 안고 나가게 할 매우 진지한 영화이다. 진지한 내용을 코미디란 형식에 담아내어 비판을 극대화할 때 흔히 풍자라는 말을 쓴다. 가디언과 타임스의 평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범죄 코미디?
배급사에서는 <그날이 온다>를 “비폭력주의 혁명가 ‘모세’(마샨트 데이비스)가 농장에서 쫓겨날 위기로 월세를 구하려다, 실적 꽝 FBI 요원 ‘켄드라’(안나 켄드릭)와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그려낸 예측불가 범죄 코미디”라고 소개한다. 짐작건대 마케팅상의 고려에서 비롯했겠지만, 이 영화가 추구한 강력한 사회비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예측불가 범죄 코미디라는 표현에서 틀리지 않은 말은 ‘예측불가’이고, ‘코미디’는 아무튼 웃기기는 하니까 맞는 말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틀린 말은 ‘범죄’이다. 통상 FBI가 범인을 잡는다고 할 때, 또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할 때 이 영화에서는 범인이 저지르는 범죄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죄’가 틀린 말 같기는 한데, ‘A=A’라는 동일률의 함정에서 빠져나온다면 국가기관에 의한 범죄가 나오기에 결론적으로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경찰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형용모순이 이 영화의 기본구도이다. 나아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범인을 (범죄를 저지른) 경찰이 체포하여 감옥에 보낸다. 주체의 동일률이 무너진 반면 관계의 동일률은 유지된다. 반어나 풍자의 기본조건이 성립하는 셈이다. 이것을 비극으로 그릴지 희극으로 그릴지는 창작자의 선택이다.
국가기관에 의한 범죄 하면 우리는 간첩조작 사건처럼 악랄할뿐더러 대놓고 폭력적인 마구잡이 행각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날이 온다>에서 미국 국가기관 FBI의 범죄는 물론 악랄하고 폭력적이지만 외형상 지질하고 어리숙하게 그려져 악랄과 폭력의 인상이 반감된다. 그러나 그러한 반감이 풍자의 시위에 올려지게 되면 줄어든 정도를 능가하는 증폭이 발사된다. 지질하고 어리숙한 행각을 통해 본질상 악랄하고 폭력적인 국가(기관)의 범죄를 그렸다는 점에서 코미디란 장르가 적합했다는 판단이 들고, 풍자라는 지적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영화제목 <그날이 온다(The Day Shall Come)> 자체가 반어이자 풍자이다. 영화 <1987>의 대미에서 운동가요 ‘그날이 오면’이 울려 퍼지는 대단한 장면과 비교해도 좋겠다.
영화 속의 혁명가인 주인공 모세는, 흑인이고 흑인 해방 혹은 흑인 인권 운동을 주창하는데 극중 이름을 모세로 설정했다. 모세가 ‘출애굽’이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방운동의 영도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흑인운동과는 약간 어긋남이 있는 듯한 유대인의 상징인물로 주인공 이름을 작명한 데서는 일종의 해학이 느껴진다. 영화 주인공과 구약성서의 주인공 모세 사이에는 명목상의 동일률 아래 내용상의 확실한 비대칭이 우러난다. 영화 주인공 모세가 펼치는 운동의 상징물이 유대민족의 성왕(聖王)과 관련된 ‘다윗의 별’(스타 오브 식스)인 것 또한 일종의 익살 같기는 하다. 비폭력 혁명을 주창하는 흑인운동가 ‘모세’라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며 그러므로 이러한 황당한 인물을 테러와 연결지으려는 FBI의 행태는 더 황당해지게 된다.
영화보다 더 부조리한 현실
황당한 얼개는 억지웃음을 겨냥한 크리스토퍼 모리스 감독의 창작이 아니었다. 웃음을 끝까지 시원하게 웃어대지 못하는 게 <그날이 온다>의 황당 스토리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극화했다. 모리스 감독은 미국 법무장관이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를 기획한 범죄단체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뉴스를 접한 뒤 우연찮게 뉴스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테러 기도로 발표된 사건은 단지 돈을 목적으로 한 촌극이자 국가기관의 연출에 불과했다는 것을 파악한다. FBI 정보원이 일군의 변변치 않은 사람들에게 5만 달러를 줄 테니 미국을 공격하라고, 또는 공격하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제안했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던 그들은 달랑 5만 달러를 들고 미국을 공격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은 테러보다는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돈에 집중하였고 실제론 보유한 무기조차 없어 아주 미미한 테러를 실행할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 번의 재판을 거친 뒤 영어의 몸이 되었다. 엔딩 자막에서, 30년형 등 그들에게 내려진 어이없는 판결을 보여준다. 심지어 극중 모세의 아내가 테러조직 지원을 이유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짤막한 설명은 부조리의 극치를 체감케 한다.
불합리하고 부도덕할뿐더러 허술하기까지 한 국가기관의 수사 관행과 판결에 충격을 받은 모리스 감독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비슷한 사례가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FBI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거나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법을 어기도록 유인했고, 범법의 순간에 그들을 체포하여 실적을 올렸다. 이러한 계획이 FBI 단독으로 입안된 게 아니라 여러 연방 기관의 협력과 방조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같이 조작된 사건에 대해 98%의 비율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범법자에게 평균 25년형이 선고됐다는 것이다.
2년에 걸친 조사를 마친 뒤 모리스 감독은 놀라운 사실에서 놀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그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영화 기획에 돌입해 연출뿐 아니라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영화는 의도에 부응했고, 작품성에서도 성공적이었다. 각본과 연출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모세 역의 신예 마샨트 데이비스가 자신의 몫을 다했고, 어떤 측면에서 모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인 FBI 요원 켄드라 역을 맡은 안나 켄드릭이 영화가 풍자의 힘을 발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극중 켄드라를 통해 관객은, 한국 경찰에서 대공업무를 수행한 고문기술자 같은 비인간적 캐릭터에 비해, 평범하고 관점에 따라 ‘인간적인’ 미국 경찰 캐릭터가 결과적으로 더 사악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민주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국가기관은 언제나 그런 사악에 빠져들 수 있고, 때로 질주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Film Bunker) 코미디를 통해 새삼 인식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