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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탄생설화2]마태복음의 예수는 ‘성골’ 유대인

by 안치용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의 관점에서 동정녀 탄생을 다룬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또는 정혼) 중에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되어 있어,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을 파악하였으며, 그 임신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을뿐더러 잉태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몰랐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당시 유대인 결혼 풍습에 따르면 약혼 또는 정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정식으로 결혼하여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갔다. 결혼(약혼) 중에 이혼(파혼)이 가능했으나 이혼(파혼)제도는 남성 중심으로 운영됐다. 아무튼 요셉은 불미스러운 일을 파악하고도 약혼녀 마리아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고 이것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즉 파혼하려고 하였다. 이때 「마태복음」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하였다.



이때 주(主)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 불린다. 이어 꿈에서 예수 사건 전체를 요약해서 예지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1~23절)


「마태복음」에서 ‘다윗의 자손’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알려준 것은 다음과 같다. 1)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에 의한 것이다. 2) 아들을 낳을 것이다. 3) 그 아들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4) 이 일은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구약성서)을 이루려 함이다.



1번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먼저 (혼전 임신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부정(不貞)을 저지르지 않았고, 마리아의 태중 아이의 아버지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중에 성모(聖母)로 추앙되는 예수 어머니인 마리아의 품행이 방정함을 증명함으로써 마리아와 나아가 부정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의 무결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모자 모두의 무결성을 주장한 배경에, 혹시 곧 살펴볼 유대인들의 ‘예수 사생아설’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자 모두의 품격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예수 탄생의 무결성(無缺性)은 또 다른 중요한 지점으로 연결되는데, 예수 잉태의 원인이 성령이라는 언급이다. 사람이 잉태의 원인이 아니므로 마리아는 부정 혐의를 벗고, 예수 또한 인간의 씨에서 비롯하지 않았기에 인간의 죄성(罪性)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며, 나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에 마리아란 인간 여성에게서 태어났어도 그는 신인(神人)이 된다. ‘참신이자 참인간(vere Deus vere Homo)’의 교리는 예수 출생 설화가 그 시작점이다. 양성론으로 알려진 이 교리는 출생 설화로 간단히 정리될 사안이 아니어서 기독교 형성기에 극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성서가 출생 자체에 양성(兩性)의 근거를 부여한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2번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의 구분을 지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의미 있는 가정은 아니지만 만일 예수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는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주요 종교 중에 여성을 창시자로 한 종교는 없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천명되지 않은 하나님조차 남성으로 간주하는 판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게 생겼다 해도 가부장제 이념에 역행하기에 오래 살아남기 힘들었을 터이다. 요셉에게 전해진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주의 사자의 말씀은 ‘그를 네 아들로 받아들여라’는 뜻이다. 이로써 예수는 인간세계의 기준으로 요셉의 혈통이 되며, 따라서 요셉이 ‘다윗의 자손’이듯 예수 또한 ‘다윗의 자손’이 된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계보로 시작한다. 제일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임을 명시하고 실명들로 구체적인 족보를 적었다. 앞서 밝힌 대로 「마태복음」 기자는 유대인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저술되었으며 주류 유대교에 맞서 소수 종파인 기독교를 지켜내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명시하는 것은 유대교와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즉 「마태복음」은, 이방 선교에 주력한 바울 노선과 달리 유대 민족 또는 유대교 내 기독교의 헤게모니 투쟁 노선을 견지하였기에 ‘다윗’이라는 정통성의 상징이 중요했다.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 혁명기에 멘셰비키에 맞선 볼셰비키의 투쟁을 연상시킨다. 볼셰비키는 다수파란 뜻이지만 오랫동안 소수파였고, 그런 점에서 유대교 내 소수파였던 초대교회와 닮았다. 둘 다 역사의 주류로 부상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태복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명시’하는 데서 약간의 난점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브라함에서 요셉에 이르는 계보는 인간의 혈통에 근거하였는데, 엄격하게 말해 피로는 예수가 이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였는지, 「마태복음」 기자는 1장 16절에서 특별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라고 적시하였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빌로니아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대, 바빌로니아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 모두 세 번의 14대를 기록한 예수의 족보에서 어떤 인물이 누구의 남편으로 표시된 건 요셉이 유일하다. 물론 ‘14대’씩 쌓은 세 개의 시대 구분 자체도 큰 의미를 갖는데, 특히 유대교나 유대인에게 그럴 것이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상대적으로 기독교인에겐 의미가 덜하지만, 예수가 세 개의 시대의 끝에 위치한 것은 그가 과거의 역사를 완성하고 새 시대를 열 것이란 상징이기도 하다.



「마태복음」에서 시대 구분이란 거시적 상징과 함께 “마리아의 남편”이란 미시적 상징은 필수불가결했다. 신인(神人) 예수가 인간 혈통을 기준으로 마리아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인간세계의 기준으로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되려면 마리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사정이어서 「마태복음」은 궁여지책으로 “마리아의 남편”을 등장시킨 듯하다.



이러한 난점을 의식한 듯 신약성서 외의 어떤 기독교 문서들에서는 마리아를 애초에 다윗의 자손으로 기록하여 세속의 혈통 논란을 종식했다. 외경인 「마리아 탄생 복음」 1장 1절은 “축복을 받고 영원히 영광스러운 동정녀 마리아는 다윗왕가의 후손으로서 나사렛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교육을 받았다”이다. 장 칼뱅도 그의 주저 「기독교 강요」에서 마리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경인 4복음서 중에서는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이란 기록이 포함되지 않았다. 예수는 인간 혈통 기준으론 다윗 가문에 입적된 셈이어서 논란의 소지를 남긴다.



3번과 4번은 구약성서와 연결된다. 3번 “‘그 아들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란 문구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열망을 반영한 표현이다. “‘자기 백성’”이란 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화로운 시기를 상징하는 다윗왕과 연결되어 태어날 아이가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임을 함축한다. 특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지음으로써 나라를 잃고 이방인의 지배 아래 살게 된 이스라엘 민족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기원전 587년 이후 예수 시기까지 이어진 거대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구약성서에 기반한 이스라엘의 희망의 신학을 표명한다. 이 일을 담당할 이가 메시아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큰 지도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모세이다. 「마태복음」 초반부에 등장하는 헤롯의 유아 살해, 요셉 일가의 이집트 피신 장면 등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모세를 연상하였으리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태복음」은 예수와 모세를 등치시킨다.



4번은 구약성서 선지자의 예언이 실현됨을 말하는데, 「이사야서」 7장 14절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를 근거로 동정녀 탄생을 연결 짓는다. 이 대목은 성서의 대표적인 오역 사건이기에, 「마태복음」 기자가 의도적으로 오역하였는지 아니면 당시에 존재하던 구약성서 헬라어 번역본(70인역)의 오역을 답습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처녀’ 대신 ‘젊은 여자’(성경험이 없는 여자가 아니라 출산경험이 없는 젊은 여자)란 단어가 표기돼 있다. 동정녀 탄생을 「이사야서」에서 예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오역 건은 널리 알려진 일이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한국어 성경에서 신약의 오역에 맞춰 구약의 본문까지 바꿔버렸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영어 성서 판본들에서는 「이사야서」 7장 14절을 ‘the virgin’과 ‘a young woman’으로 혼재하여 쓰고 있다. 독일어성서 판본들에서도 ‘eine Jungfrau’와 ‘ein junges Weib’가 섞여서 사용된다.



요약하면, 「마태복음」은 유대 민족의 역사를 바탕에 깔고 아브라함·모세·다윗과 예수를 연결지으면서 동시에 예수를 신인이라고 기술한다. 다윗의 자손 요셉의 입장에서 즉 예수의 (양)아버지를 중심으로 또 구약과 신약의 긴밀한 연결의 관점에서 예수 탄생을 설명한다.




--<예수가 완성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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