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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May 18. 2023

웃긴? 슬픈? 웃다가 슬퍼지는, 슬퍼서 웃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

영화평(영화리뷰) 슬픔의 삼각형

영화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이 “완벽에 가까운 블랙 코미디”(Team JVS)일 수도 있다. 블랙 코미디에 관한 정의가 애매한 데다 다의적이긴 하나 어느 정도 수용할 만한 평가이다.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Forbes)라는 평가엔 동의하지 못하겠다. 어떤 사람은 웃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많이 웃기지 않았다. 너무 직접적으로 현실을 파고들어 리얼리즘이나 다름없었다. 포브스 또한 액면 그대로 웃음에만 주목한 것은 아니지 싶다. 


in der Wolken


관객은 보통 리얼리즘에서는 웃으려고 하지 않는다. 드물게 웃음과 리얼리즘이 공존하는 장르가 말하자면 블랙 코미디이다. ‘블랙 코미디’에서 ‘블랙’ 요소가 매우 강력하다면 아무리 ‘코미디’ 요소를 버무려 넣어도 웃음이 마뜩잖게 된다. 관객에 따라 ‘블랙’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아니면 ‘블랙’과 대조 때문에 ‘코미디’를 더 즐기기도 한다. 반대로 ‘블랙’의 자장(磁場)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관객은 ‘코미디’ 영향권에 잘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슬픔의 삼각형>처럼 리얼리즘이 강한 블랙 코미디에서 희극성은 그러므로 리얼리즘을 뜬금없이 들어내고 또 맥락 없이 이탈할 때 발현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 최고 웃음 요소는 “in der Wolken”이다.

슬픔의 삼각형


총 3부로 구성된 <슬픔의 삼각형>은 젠더, 부, 자본주의, 정치, 권력, 계급, 인종 등 사회 문제를 골고루 다룬다. 흐름상 난민 등 몇 가지 문제를 포함하기 어려웠지만, 하도 꼼꼼하게 문제를 챙겨서 영화로 만든 사회학 교과서 같다.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1부는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모델 커플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가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극을 끌고간다. “돈(을 이야기하는 것)은 섹시하지 않다”는 야야의 주장이 아마 1부의 문제를 요약한 대사이지 싶다. 전면에 보이는 것이 그렇다는 얘기고 패션계 스케치를 통해 젠더 문제 뒤편에 있는 자본주의와 계급, 상업성 혹은 물신성을 이른바 블랙 코미디의 프리즘으로 보여준다. 


2부 무대는 초호화 크루즈. 협찬으로 승선한 칼과 야야 커플 외에 크루즈에 탑승한 인물은 부자와, 부자를 모시는 승무원이란 두 계급으로 나뉜다. 크루즈 상황 묘사가 현실 그대로여서 어떤 이는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겠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모습 또는 사회 현실이 투사돼 불편할 수 있겠다. 태풍 속의 만찬은 외형상의 슬랙스틱 너머에서 왜인지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주의를 직관하게 만든다. 


2부는 전복의 전 단계이다. 이 단계를 특징짓는 사건은 구토이다. 토마스 선장(우디 해럴슨)과 ‘똥팔이’ 러시아 자본가 디미트리(즐라트코 부리치) 사이의 취중 대담은 아수라장 속에 선내 방송으로 중계돼 태풍의 하이라이트 격으로 멀미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엉망진창화면과 너무 잘 어울리는 부조리한 BGM이다. 

변기에서 똥물이 솟구치고 그 똥물이 크루즈를 휩쓸어버리는 장면은 3부의 예고편이다. 영화 <기생충>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에서 이 장면이 반지하 생활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담담한 서술이라고 한다면 <슬픔의 삼각형>에서는 전복의 전조를 보여주는 하나의 비유가 된다.


3부에서는 세상이 180도 바뀐다. 초호화 크루즈 안에서 작동한 계급질서가 뒤집히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한다. 다만 이 전복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며 결말에서 제시되듯 구 질서는 복구된다. 또는 복구될 예정이다. 배 침몰의 원인이 태풍이 아니라 해적인 것과 수류탄을 만들어 돈을 번 자본가가 자기가 만든 수류탄이 터져 숨지게 만든 것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세계관이 반영된 흥미로운 메시지이다. 현실이 난공불락이라 하여도 영화적 현실에서는 소박한 전복의 기대라도 품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지배와 종속, 폭력과 순응은 보통 위선과 포장으로 은폐되고 더러 다른 것으로 전치되기도 하지만, <슬픔의 삼각형>에선 누군가의 얼굴에 뚜렷한 ‘슬픔의 삼각형’처럼 노골적으로 날것이다. 얼굴을 돌리지 않는 한 안 볼 수 없다. 보톡스가 유력한 해법이 된다. 보톡스가 슬픔을 지운다. 부자 승객의 요구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돛에 존재하는 때마저 닦아야 하는데 미간 사이 슬픔을 지우는 게 대수인가. 종국의 웃음은,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영화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통찰할 수 있는 이에게 가능해진다. 


영화 전체를 통해 아마 가장 웃기는 인물은 오직 “in der Wolken”이란 말만 할 줄 아는 독일인 여성(슐만 아만다)일 것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상대 말을 알아들을 뿐 자신은 말하지 못하는 이 여성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이 “in der Wolken”이다. “구름 속에서”란 뜻의 독일어이다. 이 영화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내뱉은 거의 유일한 대사이다. 맥락 없이 존재하는 유일한 대사라는 데서 새로운 맥락이 생기긴 한다. 처음에는 히치콕 식의 맥거핀 비스름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영화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in der Wolken”을 외치게 한 데서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감독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짝퉁 명품 판매상에게 간절하게 던지는 “in der Wolken”이란 대사는 많은 의미를 담았고, 그 전에도 “in der Wolken”으로 다양한 의미를 던졌다. 관객마다 다른 해석이 이뤄진 게 묘미라면 묘미겠다.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장치여서 좋았다. 


전복은 왜 전복되는가


배가 침몰하며 해변에 표류한 8명 생존자 사이에 곧 새로운 지배관계가 만들어진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권력이었듯, 여기에서 먹을 것이 권력이 된다. 크루즈에선 계급 피라미드 밑바닥에 위치한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자본주의가 사라진 무인도에서 캡틴(선장) 자리를 꿰찬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지배자였지만 무인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자들. 그들을 포함하여 선상에서 그가 떠받들어야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캡틴이 된 필리핀 여성 청소부. 영화는 피라미드를 뒤집으면 역피라미드가 되지 않고 다른 피라미드가 될 뿐이란 냉정한 현실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이런 전복이 다시 전복되는 대미에서, 애비게일의 선택을 열린 결말로 남겨둔 채 칼의 질주로 영화가 끝난다.


돈과 자본주의 생활양식이 사라진 곳에서 먹을 것과 성은 중요한 자산이고 동시에 권력이자 흥정 수단이 된다. 조난한 곳에서 대립구도는 애비게일과 야야 사이에서 생기는데, 칼이라는 젊은 남성의 성을 두고 옛 세계 소유자의 것을 새 세계 권력자가 약탈한 데서 비롯한다. 애비게일이 2부 앞쪽에서 칼과 야야가 잠든 방을 청소하러 간 장면이, 3부에서 칼을 자신의 구명정으로 데려와 함께 자는 장면과 대응한다. 영화가 마저 그리지 않았으나, 어쨌거나 자본가는 구원받게 된다. 낯선 곳(In der Fremde)에서 구제되어 다시 구름 위로(in der Wolken)로 올라갈 것이다.


오디세우스


2부 시작 부분에 칼과 야야가 선상 비치체어에 누워있는 장면의 소품이 눈길을 끌었다. 칼이 읽고 있는 책이 <율리시즈>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표기이자 난해하기로 소문난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이다. 웬만한 지성으로는 덤벼보기 힘든 이 책을 그다지 지적이지 않은 칼이란 인물의 배 위에 올려놓은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정확한 의도는 짐작할 따름이지만 영화에 그려진 대로 아무튼 칼의 여정이 오디세우스처럼 순조롭지는 않으리란 복선임은 분명하다. 칼의 오디세이아 목적지는 어디인가. 칼이 질주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 것은 배 위에다 이 책을 올려놓으며 예정한 것인가.


제목에 사용된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눈썹 사이 주름을 가리킨다. 1부 칼의 오디션 장면에서 ‘슬픔의 삼각형’을 지적받는다. ‘슬픔의 삼각형’이 있다는 건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이다. 현대의학은 보톡스 주사로 이 슬픔을 지울 수 있다. 영구적이지 않은데다 슬픔이 과도하게 당겨진다는 단점은 감수해야 한다.

다섯 번째 장편 <더 스퀘어>(2017)에 이어 여섯 번째 장편인 <슬픔의 삼각형>(2022)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연속 수상하며 외스틀룬드는 칸영화제 최고상을 2회 수상한 역대 9번째 감독이 되었다. 


다음은 알코올 중독자 미국인 선장과 러시아 자본가 ‘돼지’가 대화하며 끄집어낸 인용문이다. 특이하게 미국인 선장이 공산주의자로 그려지며 마르크스와 레닌을 계속 인용한다. 디미트리가 ‘필요’ 운운하며 유일하게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인용하는 대목 또한 해학 포인트다. 그때 대화상대는 배의 선장이 아니라 해변의 선장(캡틴)이다. 


“공산주의자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람. 그럼 반공주의자는 뭐라고 하게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는 사람” (로널드 레이건)
"바보와 논쟁하지 마라. 그들은 같은 수준으로 당신을 끌어내린 다음 우겨서 이긴다"(마크 트웨인)   
"사회주의는 딱 두 곳에서만 작동한다. 그것이 필요 없는 천국, 이미 존재하는 지옥"(로널드 레이건)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 같은 이념이다"(에드워드 애비)   
"사회주의의 문제는 결국 다른 사람의 돈도 탕진한다는 사실이다"(마거릿 대처)
"교수대에 오를 최후의 자본가는 밧줄을 판 자"(칼 마르크스)   
"오늘날 가장 강력한 힘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불멸의 욕망이다"(존 F. 케네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란 언제나 고대 그리스의 것과 같다. 노예 소유자만이 갖는 자유"(블라디미르 레닌)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칼 마르크스)


'슬픔의 삼각형' 속 찰비 딘 크릭



***2022년 8월 29일 세균성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한 찰비 딘 크릭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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