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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용 Jul 28. 2024

스테로이드를 왕창 때려 부은 쇠 맛 나는 논스톱 로맨스

영화평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

영화평(영화리뷰)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극중에서 JJ 역을 맡은 데이브 프랑코가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로즈 글래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대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매 순간 흥분과 긴장에 휩싸이게 된다”고 말한 게 크게 과장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영화사는 액션과 로맨스, 블랙 코미디와 퀴어, 범죄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영화라고 소개한다. 그렇다. 골고루 섞여서 각각이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의 주요 배경은 1980년대 미국 뉴멕시코이다. 그중에서도 무더위 아래 땀으로 얼룩진 허름한 체육관과 사막의 사격장에서 영화가 전개된다. 라스베이거스가 찬조출연하나 감독은 지저분하고 적막한 사막 지대를 영화의 핵심 공간으로 고수한다.


시간 배경이 왜 1980년대인가. 로즈 글래스 감독은 “1980년대가 90년대를 뒤덮은 허무주의 직전의, 모든 것이 과잉인 궁극의 시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잉 혹은 거품이 정점에 달하면 무너지거나 터지는 것 말고는 다음 행로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민주화운동과 이어 87체제가 성립했고 다음해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세계적으로 1980년대는 미소 냉전이 극한으로 치닫다가 1985년 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된 후 타협을 길을 모색해 냉전이 막을 내린 시기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1989년이다. 1990년대는 정신사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가장 빈번하게 널리 사용된 시기였다. “90년대를 뒤덮은 허무주의”는 아마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는 듯하다. 두 용어가 같은 말은 아니지만,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관점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영화는 모더니즘의 잔영을 서부 사막의 석양인 양 후경으로 깔고 먼지를 일으키는 포스트모던한 사막의 질주를 감행한다. 보디빌딩은 질주의 현상이다. 레즈비언인 두 주인공 루(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가 보디빌딩을 매개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된 근육이 자연스럽게 여성성과 결합한다. 의미 없이 체육관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루가 갑자기 등장한 근육질 보디빌더 잭키에게 매료되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어 스테로이드가 등장하고 힘과 과시의 열망이 화면에 넘쳐난다. 사격장이 또 다른 공간인 것은 적절한 조합이다. 근육과 총은 결국 등가이다. 폭력성과 지배의 상징이기도 하다. <델마와 루이스>라든지 기존 퀴어영화에선 근육과 총, 폭력과 지배에서 벗어나는 대체로 평화로운 여성성을 그렸다면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선 퀴어영화이지만 젠더와 무관한 폭력을 그린다. 성이 중요하지 않다. 모두 폭력에 익숙하고 평화에 둔감하다. 따라서 이 영화에 페미니즘이 장착되었다면 페미니즘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새로운 지평의 페미니즘이다. 남성이 악하고 여성이 선하다는 도식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악하다.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평등이 구현된다. 사랑 말고 가치를 부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글래스 감독은 “기존과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것이 건강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유머가 가득한 펄프 느낌의 폭발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욕망과 치정, 복수, 폭력, 탈출 등을 이러한 연출 의도에 맞춰 거칠지만 섬세하게 표현했다. 유머를 기본으로 깔고 있어 관객은 과몰입하지 않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데이브 프랑코의 평가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연출하였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추구하진 않았다. 영화사의 유산을 영리하게 계승해 계산된 클리셰를 살짝 비틀어 웃음과 재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주 낯설고 새로운 시도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꼬아 어그러지게 만들 때 관객은 열광하는 법이다.     


자유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감독이 말한 펄프 느낌의 해피엔딩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의 복수와 해방 장면에서 단연 스테로이드로 충만한 만화적 서사를 추구했다. 몇 년 전 파키스탄을 강타한 강우를 ’스테로이드 몬순‘으로 표현한 바로 그 느낌이다. 


엔딩 장면은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폭력과 범죄로 설정하였다. 사랑은 모든 걸 넘어서고 정당화한다. 연인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극진한 사랑이다. 부친살해 코드가 가부장제 타파와 적당하게 어우러져 묘사된다. 신화소를 드러내기보다 펄프적인 감각으로 형상화한 데서 다시금 감독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억압과 통제를 극적으로 돌파하여 자유와 사랑을 쟁취하는 결말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인 듯 아닌 듯 영화적인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열어놓고 끝낸 <델마와 루이스>의 유명한 결말 장면과 이 영화의 결말이 엉뚱하게 겹쳐지며 영화에서 다시쓰기의 묘미를 체감하게 된다.

루의 아버지로 사이코 범죄자 랭스턴을 연기한 중견 배우 에드 해리스가 “틀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철저하다”라고 글래스 감독을 평한 것은 대체로 수긍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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