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가족>
연예인 박수홍을 통해 유명해진 법 원칙이 친족상도례이다. 대한민국 형법 제328조에 의거해 친족 또는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 특정 범죄에 대해서 형을 면제하도록 한 게 이 원칙이다. 모든 범죄는 아니고 주로 재산권과 관련한 친족 사이의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하거나 경감하며, 일부는 고소했을 때만 처발하는 친고죄로 정한 것이 이 원칙에 속한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지는 않고 독일 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 비슷한 원칙이 있다. 명과 청, 로마 등 고대 제국에서도 유사한 원칙이 작동했다. 친족상도례가 무한정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살인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원칙 적용이 배제된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서 친족 내의 범죄 면제나 은닉에 관한 논의가 좀 더 복잡해졌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포스터에 “당신의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 당신의 선택은?”이란 문구를 못 박으며 관객에게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영화의 주제임을 분명히 한다. 친족 내부의 범죄가 아니고 또 살인이 일어났기에 친족상도례가 아예 적용되지 않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친족상도례에 속한다.
살인은 기본값
형제 부부와 부부의 자식 각각 한 명 등 6명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자녀는 살인을 저질러 문제를 설정하는 기능을 맡고 형과 동생 부부 4명이 문제를 풀어간다. 살인이 주어지고 친족(직계 비속)의 범죄를 인지한 두 부부가 이 문제를 두고 번뇌하고 갈등하는 양상이 영화의 얼개다. 중요한 소재인 살인을 애초에 풀어놓고 영화를 끌고 가기에, 만들기 어려운 영화에 속한다. 사건보다는 심리에 초점을 맞춘 윤리학 교과서 같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연 4명은 상상할 만한 캐릭터의 포트폴리오를 따른다. 물질적 욕망을 우선하기에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그의 동생으로 원칙주의자이자 인격자인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가 두 축이다. 형제의 배우자로 어린 아기를 키우며 육아와 자기 관리에 모두 철저한 ‘지수’(수현),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 간병 등 모든 일을 해내는 수퍼우먼 ‘연경’(김희애)이 나온다. 4명 중 지수는 재완과 재혼한 사이여서 살인을 저지른 딸에 대해 혈족은 아니고 친족에 속한다. 피가 섞이지 않아 냉정하다는 비난을 극중에서 실제로 받는다.
주요한 계기는 요즘 영화답게 핸드폰에서 나온다. 옛날 영화라면 편지를 사용했을까. 아이들의 범죄가 담긴 CCTV 영상을 보고 두 부부는 자신들의 자녀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밖에 없다. 자녀를 자수시키거나 범죄를 묵인하는 것. 선택이 쉽지 않지만 또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친족상도례라는 원칙이 왜 있겠나. 자식이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어도 그 자식을 살인자로 선뜻 단죄받게 할 부모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와중에 살인의 증거를 없애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영화 <공공의 적>이 많이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므로 ‘보통의 가족’이라면 영화가 그렸듯 은닉이나 방조가 아닌 묵인 정도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자녀들이 미성년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다는 점과 책임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모두 고려된다. 실제 양형에서 그럴 것이고, 부모라면 훨씬 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통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살인마저 터놓고 시작한 마당에 살인 대응을 보통으로 해서는 관객에게 외면당한다.
자동차와 개연성
밑밥은 초반의 자동차 사고이다. 운전자 간의 흔한 도로 위 감정싸움이 실제 폭력사태로 이어져, 항의하러 도로에 나선 상대방 운전자를 차 안의 다른 운전자가 차로 치어버린다. 차에 치인 운전자는 재규의 병원에 입원하고, 재완은 차로 친 운전자를 변호한다. 재완이 고의로 상대방 운전자를 차로 뭉갠 피의자를 변호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부유층 자제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질주는 이 사고를 포함해 모두 세 번 등장한다. 나머지 두 번은 형제간에 일어난다. 한 번은 형이 또 한 번은 동생이 질주한다. ‘자동차’는 조력하는 스토리에서 영화가 끝날 때쯤 핵심 스토리로 바뀐다.
영화는 자녀의 살인이라는 특별한 사건과 중산층 가정의 보통의 대응을 보여주다가 최종적 반전을 대미에 배치한다. 극 구성상 살인이 비교적 빨리 등장하고 반전이 대미에 나오는 게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친족상도례에 머물려는 인물과 ‘사회상도례’로 나가려는 인물이 대립하다가 고민과 혼란 끝에 친족상도례에 머물기로 보통의 가족은 합의에 이른다.
자동차와 함께 핵심적 오브제에 해당하는 핸드폰이 이 합의를 무력화하는 장치로 동원된다. 핸드폰을 통해 CCTV 살인 영상을 접하며 극의 전환이 촉발되었듯 다시 한번 핸드폰을 통해 핵심 전환이 준비된다. 친족상도례에 머물려는 인물과 ‘사회상도례’로 나가려는 인물이 자리를 서로 교환하고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최종적 반전은 앞서 제시한 밑밥을 활용한다.
윤리학 교과서의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다. 이쪽도 가능하고 저쪽도 가능하다. 중대범죄이지만 자녀의 일이기에 친족상도례에 머무는 선택, 자녀의 일이라도 중대범죄이기에 ‘사회상도례’로 넘어서는 선택이 모두 가능하다. 사법적 선택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이다.
이때 영화가 그릴 것은 선택 논리의 정합성과 스토리의 개연성이다. 결국 친족상도례가 승리하는 이 영화에서 흠결은, 친족상도례 원칙의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의 효과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개연성에서도 어느 정도 허점을 노출한다. 허진호 감독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해 보면 논리의 정합성과 사건의 개연성을 파괴해 관객에게 인상적인 전언을 남기려고 한 것일까. 혹은 친족상도례 원칙의 완벽한 관철이 아니라 친족상도례 원칙의 극단적 방식의 천명을 통한 상호 파멸이 허진호 감독의 노림수였을까.
허 감독은 “인간이 갖는 양면성이라는 소재가 너무 매력적이었고, 그것을 탐구하면서 거기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서정성을 빼고 긴장감 넘치는 느낌을 가져가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주연 배우 설경구는 “인간의 가식적인 모습들, 민낯들, 감춰졌던 얼굴들. 내가 사회에서 누군가를 대할 때, 솔직한 얼굴인가, 가짜 얼굴인가. 민낯은 어떤 얼굴인가. 사건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는 어떨까라는 지점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는, 윤리학 교과서 문제를 풀 듯 관객이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영화적 완성도에 관한 판단도. 결국 그 판단은 대미가 적정했느냐에 관한 것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외신의 다음 평은 너무 무난하지만 참고해 볼 수는 있겠다. 버라이어티는 “생각을 자극하는 파국의 엔딩! 예측할 수 없는 스릴러”라고 전했다.
안치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