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와 버드>
<베일리와 버드>는 영국 리얼리즘의 거장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극영화 신작.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아놀드 감독이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이후 HBO 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 시즌2를 포함해 총 세 편의 미국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뒤, 자신의 출세작인 <말벌>과 <피쉬 탱크>를 촬영한 고향 켄트 주로 돌아와 <베일리와 버드>를 찍었다. 켄트주의 거친 풍경 속,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12살 소녀 ‘베일리’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남자 ‘버드’의 만남을 통해 찰나의 순간이 영원한 기억으로 확장되는 뜻깊은 비상을 그린다.
리얼리즘과 판타지
‘날것의 리얼리즘(Raw Realism)’이란 분류에 속하는 감독인 안드레아 아놀드의 리얼리즘에는 ‘날것(raw)’ 외에 ‘친밀한/사적인(intimate)’, 여성주의 등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키친 싱크 리얼리즘(Kitchen Sink Realism)’이란 용어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통해 현실에 훅 들어가는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아놀드 감독이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를 감행했다고 설명하는데, 이 설명은 리얼리즘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녀는 “<베일리와 버드>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영화다. ‘고층 건물 옥상 끝에 서 있는 남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풀어야 할 퍼즐처럼 느껴졌달까? 그 아이디어가 나를 선택한 거다”라고 말한다. 아놀드 감독은 원래 자연스럽게 각본을 써 내려가곤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존 리얼리즘 기반 방식에서 판타지 요소를 더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놀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마법 같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동안 스스로 정한 엄격한 연출 규칙을 지켜왔지만, 이번에는 그걸 한번 깨보기로 했다.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였으며,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데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철없는 아빠 버그(배리 케오간)와 방황하는 오빠 사이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베일리(니키야 애덤스)의 일상에 갑자기 등장한 신비한 인물 버드(프란츠 로고스키)는, 베일리의 현실에 균열을 만들고 그 사이로 들어와 구원자의 역할을 한다. 구원자의 행위와 존재는 판타지로 그려진다.
출구 없는 팍팍한 삶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한 감독의 연출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며, 끝내 깊은 감동을 전한다”는 평을 끌어낸 원인이었다. 리얼리즘을 벗어난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 해방감을 느꼈다는 감독의 소회처럼, 영화는 현실의 무게와 환상의 해방 사이를 유영하며 특별한 감성을 구축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버드’는 등장인물의 하나를 넘어 영화 전체의 얼개를 만드는 핵심 상징이다. 버드는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약간 비정상적인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베일리 엄마의 동거남에게서 베일리를 보호하기 위해 새의 형상으로 변해 동거남을 물고 날아가 버린다. 폭력과 가난으로 점철된 현실의 절망으로부터 베일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버드는 대미에 해당하는 아빠의 재혼 예식 장면에도 베일리를 찾아온다. 버드는 베일리의 암담한 현실을 구원의 판타지로 고양하는 매개체이며,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12살 소녀에게 세상이 여전히 마법 같을 희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파랑새이다. 버드는, 버드 말고는 여전히 리얼리즘을 고수하는 감독이 이 영화에 심어놓은 구원과 희망의 판타지며, 소외와 억압에 직면한 베일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자유의 갈망을 은유한다. 감독은 버드를 통해 베일리의 성장을 축복한다.
하지만 버드란 판타지 말고는 출구가 없는 영화의 상황은, 날것의 리얼리즘을 더 참혹한 리얼리즘으로 만드는 듯하다. 갈증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오아시스라는 환상은 절망을 더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날것의 출구없음을 보여주는 시선에 감독이 인간적인 온기를 추가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놀드 감독이 1961년생이니 그녀 또한 나이를 먹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리얼리즘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베일리와 버드>는 영국 빈곤층의 현실을 예리하게 추적한다. 베일리의 주변 환경은 사회적 돌봄 자체가 사라진 ‘방치된 아동’ 문제를, 그 연장선상에서 철없는 아빠 버그와 방황하는 오빠 헌터의 대비는 미성년이 준비 없이 부모가 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은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의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가감 없이 날것으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카메라의 흔들림은 영화적 미학을 넘어 베일리의 불안정한 삶과 감정적 동요를 관객에게 전이하는 주요 장치이다. 관객이 베일리의 눈높이에서 숨 쉬고 함께 움직이는 듯한 ‘1인칭 현실’ 효과를 극대화하며 관객을 그녀의 삶 속으로 밀착시킨다.
영화는 아빠와 아들의 사례 비교를 통해 사랑과 책임에 관해 성찰한다. 아버지 버그의 재혼은 영화 전반(全般)을 끌어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미성년 부모에게서 태어나 부모가 헤어진 뒤 아빠와 사는 베일리는 아빠의 재혼과 함께 새엄마와 그녀의 자녀와 함께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맞이하게 된다. 베일리와 마찬가지로 미성년인 오빠 헌터는 여자친구의 임신을 책임지기 위해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지만, 여자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도피행각은 좌초한다.
부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 두 미성년기의 사랑은 관객에게 미욱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고 함께 삶을 공유하려는 인물들의 절박한 감정을 보여준다. 특히 헌터가 아버지가 자신을 낳았던 그 나이에 자신 또한 아버지처럼 임신을 책임지려 하자, “너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많이 힘들었다”는 버그의 대사는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관통하는 뼈아픈 고백이다.
사랑이 그저 사랑만이 아닌 책임이며, 그 책임이 빈곤한 삶 속에서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대사이다. 이러한 결속과 책임의 노력은 베일리의 도움으로 친부를 찾아낸 버드의 상황과 대비를 이룬다. 버드의 친부는 버드 출산 후 모자의 곁을 무책임하게 떠났는데, 미숙하고 힘들었지만 그 자리에 남아 아이를 키운 버그의 모습과 비교된다. 미성년의 출산이란 사회적 문제와 함께 출산 이후 개인의 책임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관한 고민을 담았다.
그러나 리얼리즘?
베일리가 처한 환경은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부족을 동시에 고발한다. 아버지 쪽의 베일리를 포함한 남매 외에, 폭력적인 남자와 동거하는 어머니 쪽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는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존재하는 기막힌 상황에서, 베일리는 어른스럽게 사태를 헤쳐 나간다. 자신이 제대로 받지 못한 돌봄을 동생들에게 되돌려주려는 대리 양육자의 일을 떠안는 모습은 대견하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대와 가족애를 지키려는 베일리의 아름다운 노력이 가상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소외에 직면한 아동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사회적 돌봄과 권위의 공백은 베일리의 오빠 헌터가 친구들과 함께 일종의 소년 자경단처럼 행동하는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의 자경단 활동은 어른의 보호가 부재한, 기댈 것 없는 환경에서 청소년 스스로 질서를 확립하거나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는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정당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감독은 이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깊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럼에도 노력하는 개인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살벌한 리얼리즘을 통과하면서도 영화는 베일리의 개인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춘 뚜렷한 성장 영화의 궤적을 그린다. 초경을 경험하며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린다. 아빠와 겉으로 대립하는 듯하지만, 두세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전동 킥보드와 같은 이동수단에 함께 오르는 순간들은 부녀 간의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빠의 재혼 예식에 결국 아빠가 원하는 옷을 입고 참석하는 베일리의 모습은,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도 아빠의 행복을 인정하고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절제하려는 성숙한 노력의 표현이다. 사회가 미성숙의 길로 떨어지고 있지만 소녀는 성숙한다. 베일리가 외적인 상황과 별개로 내면의 성장을 통해 스스로 다독이며 어른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어른스럽지 못한 사회에서 빨리 어른이 돼야 하는 아이의 모습은 성장영화이며, 그 전형적이지 않은 성장통은 사회고발이 된다. 베일리 역을 맡은 니키야 애덤스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베일리 또래 학생이다. 반항적이면서도 섬세한 12살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순수한 에너지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베일리와 버드>는 사회고발과 소녀의 성장을 넘어, 삶의 균열 속에서 잠시나마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위안과 비상에 관한 영화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눈물을 글썽이며 찾을 수 있는 위안 같은 게 있을 법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베일리와 버드의 대사가 핵심 전언이다. 이 대사가 관객에 따라 찡하게 다가올 수도, 공허하게 울릴 수도 있다.
"정말 아름답지 않니?"
"뭐가요?"
"오늘"
안치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