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아침이 조금 낮아진다. 꿈결인 듯 창밖으로 희미하게 전해지는 비 듣는 소리. 이제 누운 채로 완연하다. 어느새 꽃이 질까 걱정할 시기는 지났다.
아침잠이 많은데, 어제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평소보다 30분 일찍 눈을 떴다. 비가 온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봄날 아침의 비가 특별할까. 개들이 분주하다.
아침식사를 마친 개들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간다. 사람은 정자 아래에서 비 오는 봄날의 아침을 보고, 개들은 빗속에서 봄날의 아침을 적신다. 빗속에서 개 오줌이 흔적 없다. 봄날이 가려나 보다.
이영애ㆍ유지태가 주연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제목은 지은 제목이 아니지만 잘 지은 제목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대사는 잘 지은 대사지만 그다지 신통방통한 대사는 아니다. 글쎄 변하지 않는 사랑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변한 사랑 앞에서, 변해가는 사랑 앞에서 "어떻게 변하냐"라고 묻는 게 사랑인의 자세이긴 하다. 변할 것이 분명한 사랑 앞에서 변하지 않을 사랑을 꿈꾸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라면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하긴 어느 사이엔가 젊은 날 그렇게 좋아한 라면을 먹지 않게 되었다. 라면이 싫어진 게 아니라, 내 몸이 탄수화물을 잘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서이다. 물론 대파든 잔파든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끓여서 맛있는 김치와 함께 먹는 라면은 언제나 올바르다.
영화 속 이영애의 대사 "라면 먹을래요"는 원곡 '봄날은 간다'의 다음 가사를 영화적으로 옮겨 적은 것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다음 가사를 옮겨 적은 것일까.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은 듯 걸리버는 에어컨이 놓인 구석 자리에 머리를 콕 처박고 가는 봄을 서러워한다.
▲ 걸리버 나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