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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Jul 30. 2023

Z세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다. [둘]

스물아홉의 회고, 하나.

 돌아보면 나는 끝까지 무엇인가 성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교 입학 당시 연합고사를 꽤 높은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야간 자율학습, 보충학습 다 제쳐두고 매일 피시방을 가고 아침에는 매를 맞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고2 여름이 됐고 전교에서 맨 뒤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에게 놀라 미친 듯이 공부하니 고3 모의고사는 인서울까지 볼 만한 성적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완전히 공부를 손에 놓아버리고, 수능을 무슨 학습지 마냥 풀어버리고 대충 성적 맞춰서 소위 지잡대학교 경영학과로 입학했다. 입학해서도 수업은 안 가고 벼락치기로 공부하니 상위권 성적이 나오니 예전처럼 주변에선 머리 좋다는 칭찬 일색이더라. 그 말 하나를 위안 삼으며 난 하면 된다는 오만함 하나로 쭉 놀다가 군대로 입대. 이렇게 살아도 지방에서는 꽤 먹고살만한 배경을 제공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고, 나 또한 그냥 뭐라도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었다. 참 한심한 인생이었다.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평생 전주 지방에서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생활하다가 수도권에서 재학하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깜짝 놀랐다. 삶의 밀도 자체가 달랐고, 전역 이후에 무엇을 할지 부대 내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간을 헛되이 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서울 샌님도 아닌 것이 음악 페스티벌, 서울 곳곳의 축제, 수많은 학교가 모여 있기에 동아리나 커뮤니티 간 교류도 많아 사교의 영역도 엄청났다. 그런 것을 보니 그냥 무작정 서울에서 학교를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도 그들과 똑같이 했다. 그들이 무언가 공부할 때 나는 부대에 들어오는 모든 베스트셀러 책을 다 읽고, 수도권 4년 제로 편입하려고 무작정 그냥 아무 영어 공부나 했다. 그리고 전역하고 향 후 1년 내 계획을 진짜 미친 듯이 치밀하게 짰다. 거기에는 무조건 해외여행을 가봐야겠다는 것도 있었다. 단순히 여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 나에게는 '전주라는 작은 도시가 전부였는데 서울로 한 발 내디디니 서울이 내 전부가 되었으니까, 유럽을 가면 내 세상은 지구일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전역하기 전에 마지막 휴가부터 알바를 구해서 했고,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 2달 동안 알바를 하루에 세 개를 하며 경비를 모아 내 첫 해외여행인 폴란드로 혼자 향했다.


 참 답도 없었던 것이 당시에 비행기 경유시간 이런 것은 생각도 못하고 공항에서 갇혀서 꼬박 노숙하고, 여차저차 도착했더니 자정 가까이 되어서 그 새벽에 숙소까지 도보로 이동한 것들, 버스 타는 방법을 몰라서 하루 더 머문 일, 존 1, 2 개념이 뭔지 몰라서 시골 산자락 숙소로 간 일, 귀국 비행기 늦어서 모든 기다리는 줄 사람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먼저 탑승했던 일 등 별의 별일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단순 무식하게 간 이 여행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홀로 해외여행은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있어서 20대 이후의 첫 성공적인 계획의 실현이었다. 그 성취감은 내가 하려면 할 수 있다는 이유 모를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에 군에서 계획했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편입하기 위해 필요한 영어자격인 당시 토익 900점을 2달도 안 돼서 달성했고, 가고 싶던 경희대학교 역사학과에 1차 합격을 통지받는 등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이 내 계획대로 실행되는 신기한 모먼트를 맞이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어간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던 와중, 어머니의 부고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나는 그냥 집 근처 지방거점국립대학으로 편입한다. 전역 이후 잠깐 빛이 나려던 내 삶은 완전히 무너졌고, 술독에 빠져서 2년을 보내고 남은 아버지와 동생과의 관계마저 파탄 나면서 겨우 졸업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이 졸업장 하나만 남았고, 몸도 정신도 완전히 파멸적인 상태였던 나는 그냥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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