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체제의 한계를 느낀 사람은 패러다임 전환을 할 기회를 얻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15세기는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당시 기득권인 로마 교황청이 천동설을 표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 반동분자가 나타난다.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천동설을 지지했지만, 재판장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강력히 주장하지 않았다면, 종교재판에 회부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왜 죽음을 무릎쓰면서 지동설을 주장했을까? 과학자가 아닌 우리는 거창한 이유를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신념", "측정에 대한 믿음" 같은 관념이 갈릴레이에게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자와 과학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다른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다. 천동설로 수학계산을 하는것보다 지동설이 계산하기 편하다.
그러니 갈릴레이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수학자, 과학자 입장에서는 죽기보다 힘든 계산방법을 계속 쓰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게 더 낫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입장에선, "천동설이 지동설보다 별로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천동설의 세계에서는 지구가 중심이다. 왜냐? 우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천년이 지나도 우리 후손들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느낄 수 없다. 당연히 지구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별들(천체)이 원운동을 한다는 천동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천동설이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행성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금성과 목성이 거꾸로 도는 "역행"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왜 금성과 목성은 태양처럼 한 방향으로 "순행"하지 않고, "역행"하는 것일까? 기원전 3세기 그리스 문명의 아폴로니우스와 히파르코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전원"과 "대원"을 도입하여 "역행" 현상을 해석했다. 행성은 기본적으로 주전원을 도는데, 그 주전원의 중심이 대원을 돈다는 것이다. 마치 앞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그 안에서 또 뒤로 뛰어가듯, 큰 규모와 작은 규모의 운동이 합해졌다고 "역행" 운동을 설명했다. 벌써 말만 들어도 복잡하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계산이 될 수 있어야 했다.
위와 같은 움직임을 수학공식으로 구현하려면 매우 복잡한 공식들이 도출된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려기보다는 그냥 복잡하고, 길고, 어렵다는 맛만 느껴보자. 천동설의 관점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계산하려 하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계산을 수행해야한다.
티코 브라헤는 이러한 계산을 수행해 천동설을 보완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달과 태양은 지구를 돌고, 나머지는 태양을 돈다는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행성의 순행과 역행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다.
티코 브라헤 덕분에 유럽 사회에서 천동설 모순은 해결 되었다. 그러나 그 계산은 티코 브라헤 같은 천재만 수행할 수 있었다. 천동설의 관점을 유지한 채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은 수학의 천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지동설의 세계에선 태양이 중심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린 죽을 때까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느낄 수 없다. 다만, 계절의 변화처럼 매우 간접적인 사실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갈릴레이 입장에서는 태양을 중심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양을 중심에 둔 채로 수학적 모델링(Mathmatical Modeling)을 해야 계산하기 쉬운 공식들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지동설에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각각의 궤도를 짧은 형태의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궤도 하나에 공식 하나인 것이다.
반면, 천동설은 "대원"과 "주전원"을 포함하는 공식 및 대원과 주전원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는 공식이 필요했다.
천동설의 한계와 지동설의 유용성을 알고 있는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아니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이라면 어떤 방법을 채택할 것인가?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인가? 아니면 손쉬운 계산인가?
갈릴레이는 당시의 기득권에 막혀, 재판장에서 천동설을 지지한다 타협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느꼈던 천동설 계산의 답답함은 후대 과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후대의 과학자들은 천동설을 폐기하고 지동설을 채택하였다.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그 결과, 프로 천문학자가 아닌 우리들도 간편하고 손쉽게 태양계 행성 움직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의 역사는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혁명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발전한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과학 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혁명을 설명하는 "패러다임(Paradigm)"을 이야기했다. 패러다임이란 기존의 사회가 받아들인 믿음, 가치, 기법 등의 총체를 말한다.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린 "혁명"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져 새롭거나 전복하는 무언가가 과학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느껴야한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한계 인식이 필요하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한계를 느껴야 하는것이다. 갈릴레이가 느낀 것은 계산의 한계였다. 천동설 패러다임에서는 계산이 너무 힘들다. 감각적으로는 천동설이 맞는 것 같지만, 그리고 주변사람들도 다 받아들여 당연한 것 같지만, 천동설은 천체 운동의 계산에서 한계를 가지는 패러다임이다. 갈릴레이는 계산의 이득을 주는 지동설 패러다임을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는 수학자가 아니라 계산의 한계를 느낄일은 없다. 그러니 패러다임 전환은 다른 세상 얘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이야기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청년들은 정말 많이 힘들다. 지옥같은 공부와 쉴새없는 평가에서 살아남아 사회에 나오니 일할 자리가 없다. 꿈을 펼칠 기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이 하라는데로 열심히 달려왔건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런 사회적 현실 속에서 절망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인생을 살아가며 한계를 느끼는 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먼 훗날의 역사가가 지금의 청년들을 갈릴레이처럼 인식하지 않을까?
우리 청년들과 갈릴레이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 체제의 한계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갈릴레이는 천동설 체제에서 계산의 한계를 느껴 지동설을 주장했고, 과학혁명을 시작한 위인이 되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운 근대 과학이 갈릴레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패러다임을 전환한 사람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대한민국의 한계를 느낀 청년 세대들이야 말로, 우리 체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자격이 주어진 사람들이다. 즉, 우리나라를 바꿀 미래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우리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좋게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지금을 살아내고 버텨내는 청년들 각자가 “자기가 한계를 인식한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란 걸 말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자기 분야에서 한계를 인식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