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치악산 구룡사
2020년을 맞이하며 버킷 리스트에 '템플 스테이'를 적어 넣었었다. 불교 신자이신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사찰에 방문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인지 새로운 지역에 여행을 가면 꼭 한 번은 절에 들려 기도를 하고 돌아오곤 했고, 절에 가면 맡을 수 있는 특유의 향 냄새를 좋아했다. 되도록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에 가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고 싶어 평일인 월요일에 치악산 구룡사에 떠나게 됐다. 옳지! 템플 스테이에 신청객들은 우리를 제외하면 휴식형으로 들어오신 한 분이 전부였다.
휴식형으로 방문하신 분은 템플 스테이 일정에 참여하지 않으셔서 오로지 우리 둘과 스님이 독대하여 대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시간에 스님께서는 불교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모든 감정에 너무 빠지지도 피하지도 말고 그저 바라보라 하셨다. 마음속에 기쁨이 일어나면 '기쁨, 기쁨, 기쁨..' 분노가 일어나면 '분노, 분노, 분노..' 이렇게 되뇌면 자연스레 감정은 내 안에 터전을 잡고 앉고 나는 그를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감정을 객관체로 바라보면 이내 마음은 다시 평화를 되찾아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제고 없어질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 과정이 불교에서는 '마음 챙김' 즉,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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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 스님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단어 선택과 껄껄 웃을 때 보이는 통쾌한 표정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빛바랜 법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눈 덮인 산길을 걸었다. 운동화가 눈을 밟을 때 내는 뽀득뽀득 소리에 흥을 돋으며 세렴 폭포에 올라 고드름을 녹여 물을 마셨다. 우리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겨울산이 좋다고 함께 껄껄 웃었다.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곁들이며,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에서 배울 것들과 놓을 것들에 대해 논하며. 몇 번 다짐했지만 또 저지르고 마는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기로 한다. 사람을 알기 전에 그의 직업으로 그를 지레짐작하는 일. 예측 불허의 대화는 예측 불허의 추억을 만들어냈다. 명상 시간에 배운 대로 추억이 만들어낸 즐거운 감정이 그 순간을 관통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 '즐거움, 즐거움, 즐거움..' 고요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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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나는 단단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강인함을 바라보며 전후좌우가 낭떠러지 같아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왠지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단단하고 견고하고 강하지는 않지만 조금 물렁하고 허술하고 정이 많고 그래서 가끔은 상처 날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나를, 그저 바라보고 가만히 쓰다듬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정보
-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구룡사
-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한시간
- 템플 스테이 비용 60,000원(108염주 포함)
- 법복 제공, 아침 등산시 아이젠 제공
- 수건 및 개인 세면도구 준비
- 15:00 입실, 13:00 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