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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주 Jan 26. 2020

내게 남은 런던의 키워드, '버스킹'

삭막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 버스킹의 미학.

  


  런던을 짧게 이틀간 방문한 후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해보자면 '역시 런던은 런던이다!'였다. 물론 오랫동안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보면 소감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만, 소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런던이 더욱 활기차고 다채롭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런던아이는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고, 빅벤도 마찬가지. 킹스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은 영화에서 보던 그냥 9와 3/4였다. 딱히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 특별할 것 없는, 알고 있던 그대로의 모습들. 그러나 "런던은 '역시' 런던이구나"라고 느꼈던 요소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버스킹이다.



  그간 영국 소도시들을 여행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버스커들이 많아 즐거웠는데 특히 이번 런던 방문에서 인상 깊었던 건 버스킹의 형태가 다양했다는 것이었다.


  이틀간 세 가지 모습의 새로운 버스킹을 만날 수 있었다. 첫째는 피카딜리 서커스 역 앞에서 두 명의 댄서가 길거리를 지나가던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던 것. 그들을 얼마 지나치지 않은 곳에서 만난 두 번째는 롤러스케이트 묘기. 셋째는 코벤트가든 광장에서 본 누드(?) 마술쇼.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그저 버스커 혼자만이 주체가 되어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공연을 완성시킨다는 거였다.


  영국이라 하면 보통 신사의 나라라 하여 왠지 수도인 런던에서는 킹스맨의 콜린 퍼스처럼 도도하고 꼿꼿하게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버스커들과, 또 이들을 둘러싸고 함께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길거리의 시민들을 보며 갖고 있던 편견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즐길 수 있었다.


  런던에서는 광장이든 시장이든 좁은 인도든 차만 지나다니지 않는다면 그 어디든 무대가 된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아래에서 더우면 더운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그냥 비가 오는 대로, 주변에 있는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든, 성별이 무엇이든, 인종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함께 어우러져 순간순간을 즐긴다. 그리고 이들은 창백하고 바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런던과 닮아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꿈이 뭐예요?'라 물으면 보통은 '행복해지는 거요'라고 답하지만 1분 1초가 매 순간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현대인들의 삶.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인생의 발달과업을 하나하나 완수해나가기 바빠 보이는, 멀리서 보면 그저 삭막하고 차가워 보이는 보통의 삶. 그러나 아무런 조건 없이 인연이 되어 만난 가족들, 친구들 또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떠들며 웃고 배우고 노래하며 추억을 쌓는 순간순간들이 보통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이 순간들 덕에 우리는 삶을 따뜻하고 행복하다 정의한다.


  이게 내게 런던 아이나 빅벤보다 버스킹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어요?'라고 물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성적이나 업적보다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먼저 생각나는 이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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