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기린 그림에게

- 시집『버찌의 스물여섯 번째 도서관』중에서

by 부불리나

내가 그린 기린 그림에게




키다리라는 말을 기다리라는 말로 알아들어요


사각형을 그려 놓고

어서 뿌리를 내려야지 속삭였더니

목구멍이 깊어졌어요


넌 디딜 곳 없는 사다리 같아

그런 말을 들은 날엔

휘파람에서 박하 향이 났어요


아카시아 나무가 자랄수록

거울이 예뻐지고

이해라는 말이

꿈을 다그칠수록 허리가 매끈해지던 걸요


눈동자가 속눈썹을 걷어차도

엄지손톱 위에 열 십 자를 그리면

죄가 얇아졌어요


밤은

양팔로 안아주기 미끄러운 세계

어떻게 벗어야 무늬를 놓치지 않을까요


초침 소리가

뿔에 걸려 넘어져도 웃거나 놀라지 않아요

앞다리를 구부리다 왈칵

나를 엎지른 날엔


목덜미를 아무리 닦아도 내가 그치지 않던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