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청춘 2025년 여름호 신작시
지관순
버터 사러 가는 길에 양 한 마리를 주웠지 양은 한 마리 비도 안 오는데 흠뻑 젖어 울고 있는 양 한 마리 버터를 사러 가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 되었고 양 한 마리만큼 슬픈 눈으로 어린이집을 쳐다보자 어, 어, 첫 글자가 떨어져 나갔지 린이네 집은 내가 태어난 집처럼 기울었지 한쪽이 먼저 녹는 버터 같았지 뱉어, 뱉어, 칠판을 버리러 나온 사람이 칠판 등을 두드렸지 맘에 걸렸던 문장들이 바닥에 흥건했지 어떤 잘못을 삼켰길래 저렇게 자신을 쏟고 있나 버터는 자신을 들볶을 때나 유용한 것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걸까 버터 사러 가는 일은 점점 위험해졌고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기를 쓰고 뭔가 내놓았지 아직 사지 않은 버터의 심장이 녹아내렸지 맛있는 냄새를 맡은 양, 양이 내 품을 파고 들었지 네 시는 양이 많구나 순하니까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네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무엇을 빼야할 지 모르는 해가 버티고 서 있었지
-계간 문학청춘 2025년 여름호
버터만 생각하며 가는 길,
흠뻑 젖은 양의 출현에 버터 사러 가는 길은 희석되고 굴절된다.
아직 사지도 않은 버터가 녹기도 한다.
바삭한 과자를 구우려던 욕구는 어떤 길에 내몰리게 된 걸까.
양은 내 품 안에 있고
나는 결국 버터를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