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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iel Jun 05. 2020

#1 개발도상국의 아이들

누구나 나처럼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다

나는 2년 전, 동남아의 발전협력 현장에서 1년의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 중도하차를 결심하고 나니 어떤 이들은 나를 현장에서의 낙오자이니 앞으로는 현장에서 일하기 힘들 거라고 겁주기도 했고, 집에서는 나에게 20대 후반에 이런 시간낭비가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결론적으론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비록 경력증명서 같은 종이 쪼가리는 남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찍은 모든 사진과 기억, 생각, 경험은 나의 6개월어치의 시간보다 훨씬 그리고 충분히 값지기 때문이다. 


발전협력 현장에서 잠시라도 경험했고, 국제협력을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길을 가고 싶은 연구생으로서 계속될 이 분야에 대한 막막함과 그 속에서 성장해나갈 나의 생각과 경험을 이곳에 담아보고자 한다.


개발협력을 처음 접한 건 2015년 필드트립 프로그램으로 가게 된 미얀마에서였다. 2015년 미얀마는 첫 민주선거를 앞두었고, 국제사회의 관심은 뜨거웠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그 열기 속에 정계, 제계, 학생, 소수민족, 국제기구를 넘나들며 2주 동안 미얀마 사회 곳곳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지금을 선택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활기 넘치는  양곤의 유명한 시장에서의 한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영어를 말하는 현지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관광객의 행선지를 안내해준다. 그러나 귀엽고 친절한 가이딩의 대가는 그들이 손에 쥐고 다니는 자그마한 물건들을 사주는 것이었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그 아이들의 물건들을 사주면 안 된다고 했다. 학교로 갈 아이들 점점 더 시장으로 내몰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날수록 사회경제 발전이 더디다는 것은 당시 이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나조차 쉽게 얻을 수 있는 결론이었다.



나는 문득 그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에게 다가온 꼬마에게 나는 가이드가 너무 고마우나 물건을 사진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음료수를 사 줄 테니 같이 먹겠냐고 했다. 아이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음료수를 마시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지나다니는 외국인과 또래 친구들에게 귀동냥으로 영어를 배워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 다니냐는 나의 황당하지만 황당하지 않은 질문엔 아이는 학교에 가고 연필을 사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꿈은 이 시장에서 상점을 내는 것이라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치 내 머리에 압정이 하나 꽂힌 것 같은 기분으로 무겁게 며칠을 보냈다.


아웅산 마켓, 2015


나는 그저 국제사회가 궁금했고,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그때가 딱 공부가 재밌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가 무거운 압정을 달고 와 버린 것일까 고민했다.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적 장래희망을 적는 질문에 내 또래들은 대부분 경찰, 배우, 리포터를 써냈던 기억이 났다. (아, 물론 요즘은 건물주를 그리도 많이 써낸다지) 사실 꿈은 높고 대단한 것이어야 할 것 같은 나의 허황된 고정관념도 있었겠지만, 미얀마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논했던 발전적 이야기들과 이 이아이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양곤 거리, 2015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의 기준으로 그 아이의 꿈을 해석하고 의미 부여한 것이다. 그 아이의 꿈이 내 기준에선 안타깝긴 했지만 상점을 연다는 것은  안정된 경제생활을 뜻하는 것이니, 그 꿈은 당시 아이에겐 최선이고 가장 현실적이지만 높고 대단한 꿈이었을 테다. 측은함이 앞서 내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가졌었던 건지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그러나 그 아이와의 만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나는 경험과 공부를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에게 못해줬던 말이 있어 남긴다.


너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그리고 나는 우리의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게.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나는 아이의 꿈을 응원한다.

또한 나의 꿈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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