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직접 운전을 해보자!
그동안 무거운 경제 이야기를 줄 곧 했으니, 오늘은 가벼운(?) 자카르타 생활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바로 자카르타에서 운전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자카르타에서 나처럼 직접 운전하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전용 운전기사가 있는 차를 타고 다녔다. 일반 회사의 파견 근무로 온 사람에게는 회사가 집과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을 제공해주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게 돈을 잘 벌어서 직접 운전기사를 고용해서 썼다. 일 때문에 가끔 만나는 한국 대사관 직원이나, 코이카 직원 역시 공관(외교관) 차량과 전용 기사가 있었다.
이 넓은 자카르타에서 마치 기사 딸린 차량 지원 없이 맨 몸으로 일하는 한국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NGO 활동가에게 전용 기사 딸린 차량 지원이 웬 말인가? 나는 군말 없이 직접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같이 일하는 현지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어둠의 경로로 취득한단다? 그러면서 자기도 오토바이 면허만 있고 자동차 면허는 없어서 하나 만들러 갈 건데 나더러 같이 가겠냐는 것이다. 응? 운전면허를 만든다고? 당연히 같이 가야지! 그런데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니, 돈을 주면 만들어 준단다. 엄연히 불법이긴 하지만 가격이 거의 정찰제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일이란다. 5년짜리 운전면허를 발급하는데 대략 10만 원. 브로커를 잘 못 만나면 10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하니까 바가지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운전면허를 어떻게 취득했는지는 비밀이다. 절대 절대 비밀이다!
면허증을 챙겼으면 이제 운전을 시작해보자. 자카르타에서 실제로 운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부분은 운전대가 한국과 반대라는 점이다. 예전에 호주에 있을 때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해서 정면충돌 사고를 낸 친구 이야기가 생각이나 살짝 긴장이 됐다. 호주도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쪽이라 교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고 유형이 비슷하다. 도로에서 그냥 앞 차 따라서 조심조심 운전하면 되지, 헷갈릴게 뭐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맞다. 평소에는 앞 차를 따라 가면 진행 방향을 헷갈릴 일이 없다.
그런데 사고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때나 주변에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교차로에서 차량을 회전하면서 우리는 별생각 없이 익숙한 방향으로 차를 몰아넣는다. 앞에 지나다니는 다른 차가 안보이니까 차량을 회전시킨 후에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방향으로 차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맞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차가 있다면 바로 쾅!
운전석에 타야 하는데, 자꾸만 조수석 문을 여는 것은 귀엽게 봐주자. 동승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너 있게 문을 열어준 척하면 된다. 운전석과 마찬가지로 조향 장치와 와이퍼 스틱의 방향도 서로 반대쪽에 위치한다. 깜빡이를 켜야 하는데 자꾸 와이퍼를 켜서 민망하다면, 자연스럽게 워셔액을 뿌리고 앞 유리를 닦는 척 하자.
자카르타에서 처음 운전한 차는 TOYODA FORTUNER 수동 변속기 모델이었다. FORTUNER는 기아 모하비와 크기가 비슷한 대형 SUV다. 한국에서도 대형 SUV를 몰았던 터라 큰 차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골에 계신 아버지의 포터 화물차(수동) 운전에도 익숙한 터라 수동 기어 조작도 어렵지 않다 ….. 고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물론 평소에는 수동 기어도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수동 기어는 조작하기에 따라서 부우웅 하고 RPM을 올리면서 확 치고 나가는 맛이 있어서 운전하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차가 막히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약 10년 전, 대우차 수동기어를 몰고 영동고속도로 강릉에서 서울로 운전한 적이 있다. 대우차는 현대차나 기아차와 달리 클러치가 신경질적으로 팡팡 튕겨 나와서 클러치를 밟았다 뗄 때 발목이 유난히 더 피곤하다. 아무튼 그 날 9시 뉴스에는 ‘영동고속도로 강릉에서 서울까지 10시간 이상 걸려, 영동고속도로 사상 최악의 교통정체’라는 기사가 났고, 나는 발목에 관절염이 생길 뻔했다.
그런데 자카르타에서는 그 정도의 엄청난 교통체증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자카르타의 도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자카르타 수도 이전의 모든 것’ 1편을 참고해 주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에는 수동기어 차량이 많은데, 수동 기어 차량의 가격이 싸고, 나중에 기어가 고장 났을 때 수리비가 적게 들어서 서민들이 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RPM 조절을 잘만 하면 수동 기어가 오토매틱보다 연비도 더 좋다. 그런데 교통체증이 극심한 자카르타에서 수동 기어는 절대 비추다. 정말 돈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오토매틱을 몰자.
자카르타는 도로가 좁아서 큰 차가 지나가기 어려운 길이 굉장히 많다. 오토바이가 도로의 빈 틈을 파고들고, 차와 차, 차와 오토바이가 사이드 미러를 서로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가기 때문에 큰 차를 몰면 이리저리 피하느라 운행 속도가 더디다. 큰 차는 도로에서 더 자주 멈추고, 더 자주 속도를 줄여야 한다. 좁은 길에 큰 차를 몰고 잘 못 들어갔다가는 나오기 위해서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려야 할 수도 있다. 큰 차는 끼어들기(자카르타에서는 필수)를 할 때도 상당히 불리하다.
하지만 자카르타는 노면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위협적으로 운전하는 광기 가득한 차가 많기 때문에 큰 차를 타면 안정감과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운전기사가 따로 있다면 역시 큰 차가 좋다. 아무튼 얼마 후 나는 FORTUNER에서 HONDA Jazz 오토매틱으로 차를 바꿨다. 참고로 Foutuer는 라틴어 Fortuna 에서 따온 이름으로 운을 뜻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지배자가 신하들을 다스릴 때 furtuna, 즉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virutu 즉 덕에 의존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행운은 덕이 부족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며, 덕과 실력이 있는 사람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에서는 Good luck 이라는 표현을 쓸 때 주의해야 한다. 자칫하면 상대방의 실력이 부족하니 운이 따라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Fortuner라는 이름의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행운에 기대기 보다는 실력과 내실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심 때문이지, 차가 너무 크고 스틱이라서 운전하기 어려워 싫어한 것은 절대 아님(?). 지금 몰고 있는 차인 Jazz는 이름부터 맘에 든다. 아담하면서도 날렵한 디자인, 운전할 때는 스포츠 드라이빙 느낌이 살짝 나는 정말 Jazzy 한 느낌의 차다.
왜 매번 일본차를 사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글에서도 밝혔듯이 인도네시아에는 97%의 자동차가 일본차다. 따라서 한국차를 구하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아무튼 자동 변속기에 크기도 적당한 HONDA Jazz로 차를 바꾸고 나서 운전이 2배 이상 편해졌다.
자카르타에서 본인이 직접 운전할 것이라면 수동 기어에 큰 차는 절대, 절대 비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