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비용을 알아보자
한국 사람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지내면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들까? 글쎄,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필요한 생활비는 서로 다르겠지만 전반적인 물가를 살펴보면 대략 윤곽이 나올 것이다. 가정 먼저, 인도네시아는 집세가 상당히 비싸다. 전세는 없고 모두 월세인데, 월세 가격이 거의 서울과 비슷하다. 혼자 살기 적당한 조그마한 10평짜리 아파트가 한 달에 50~60만 원씩 한다. 그리고 20평 정도 되는 쓸만한 아파트는 월세가 100만 원을 훌쩍 넘고, 월 200이 넘는 고급 아파트도 즐비하다. 일반 기업체의 해외지사 파견 근무를 나온 사람에게는 대게는 월세 100만 원이 넘는 나름 괜찮은 집과 기사 딸린 차량이 제공될 것이다. 만약 회사에서 집을 제공해주서, 집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자카르타 생활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해결된 셈이다. 만약 혼자서 집세를 감당해야 한다면, 한국 사람이 살만한 집은 최소 월 40만 원은 줘야 할 것이다. 물론 월세가 더 싼 집도 많이 있지만 그다지 안전하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회사로부터 전용 차량을 지원받는 경우 교통비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전용 차량이 없다면, 생활비에서 교통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대중교통이 열악하기 때문에 주로 택시나 Grab, Go-jek(Uber의 아시아 버전) 등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 비용이 만만찮다. 편도 5,000원 정도 하는 택시를 아침저녁으로 탈 경우 교통비로만 매일 1만 원씩 나가는 셈이다. Grab이나 Go-jek은 차량 서비스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서비스도 제공한다. 오토바이 택시는 차량에 비해 가격이 절반, 혹은 그 이하인데, 안전 때문에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길이 막힌다면 차 사이로 막 가는 오토바이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오토바이 택시도 종종 이용하게 된다. 오토바이 탑승 시 헬멧 착용은 필수인데, 헬멧에서 땟국물이 흐르는 것은 일종의 보너스다.
자 이제 먹는 것을 걱정해보자. 사실 집과 교통비는 지출이 상당히 고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식비는 쓰기 나름이다. 자카르타의 음식 가격은 음식의 종류와 레스토랑의 상태에 따라서 편차가 매우 크다. 음식 값이 싼 현지 식당에서는 한국 돈 1,000원이면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식당은 Warung tegal, 일명 '와르떽'이라 부르는 허름한 백반집이다. 와르텍에 가면 보통 10여 종의 반찬이 각각의 통에 담겨있는데, 그중 본인이 원하는 반찬 2~3가지를 고르면 밥과 함께 담아서 준다. 반찬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한 그릇에 보통 1,000원에서 1,500원 정도 한다. 닭고기 한 조각은 보통 500원 정도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500원이 아까워서 닭고기 반찬을 빼고 나물 반찬으로만 밥을 먹는다.
한국 사람은 이 처럼 허름한 현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드물다. 한국 사람은 한국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 식당은 가격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비싸다. 김치찌개가 한 그릇에 대략 120,000 루피아, 환율 계산을 하면 한국 돈으로 10,000원이다.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꽤 여럿 있지만, 대부분 고깃집이고, 김치찌개 같은 식사 메뉴를 파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음식을 만들 때 한국 재료와 인도네시아 재료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그 맛이 한국에서 먹던 맛과 오묘하게 다르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국 사람이 한국 식당에 가면 김치찌개 같은 식사 메뉴만 먹지는 않는다. 대게 한국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술과 고기를 한국에서와 비슷한 패턴으로 먹는다. 그렇게 한국 식당에서 고기와 술을 곁들여 먹는 저녁 식사 비용은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나온다.
자카르타에서 현지인과 비슷하게 먹고 다닌다면 한 끼에 1,500원, 그리고 한국에서 먹던 대로 먹고 다니다면 한 끼에 10,000원 정도다. 그리고 그 중간 가격의 어중간한 식당도 아주 많기 때문에 음식 값은 쓰기 나름이다. 음식 값을 아끼면 한 달 식대로 20만 원이면 충분할 것이고, 넉넉하게 쓴다면 60~70만 원은 쓸 것이다. 나는 한국 식당은 가끔씩 가고, 주로 현지 음식 중에서 깔끔한 음식을 찾아서 먹는 편이다. 피자나 햄버거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먹고, 커피도 종종 사 마신다. 그래서 한 달 식비로 대략 40만 원 정도 쓴다.
인도네시아 식당에서는 물을 따로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음식 주문과 음료 주문을 함께 받는다. 2,000원짜리 국숫집에서 국수 한 그릇을 시키고, 작은 생수 한 병을 같이 시키면 500원이 추가된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물을 안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현지인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마 속으로 '저 사람은 왜 물을 안 시키지? 돈도 많으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카르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마실수가 없다. 나는 집에서 하루에 1.5리터짜리 생수를 두병씩 쓴다. 한 통은 마시고, 나머지 한 통은 라면을 끌이거나 밥을 지을 때 쓴다. 한국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도 있고, 보통은 끓여서 먹는다. 라면이나 밥을 할 때는 어차피 물이 끓기 때문에 수돗물을 받아서 써도 괜찮다. 그런데 자카르타에서는 씻을 때만 수돗물을 쓰고, 나머지는 모두 생수를 사다가 쓴다. 심지어 이빨을 닦을 때도 생수로 닦는다. 1.5리터짜리 생수 한 통은 약 500원이니 물 값으로만 매일 1,000원씩 나간다. 물 값으로만 최소 한 달에 3만 원의 고정비가 나간다. 만약 물을 많이 쓴다면 그 비용은 주욱 주욱 올라간다.
다음으로 통신비에 대해 알아보자. 인도네시아의 모바일 통신 비용은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나는 한 달에 LTE 데이터 10기가짜리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비용이 1만 원도 안 된다. 모바일 통신 비용은 싸지만 유선 인터넷 서비스는 그저 그렇다. 가격은 대략 월 2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속도가 굉장히 느리고 비가 오면 자주 끊긴다. 월 2만 원짜리는 20 Mbps 짜리 회선이고, 30 Mbps, 50 Mbps 등으로 속도가 올라갈수록 가격도 올라간다. 100 Mbps 짜리 회선은 가격이 7~8만 원 정도 하는데, 비가 오면 끊기는 것은 같다. 그리고 실제 인터넷 속도는 대부분 명시된 속도의 절반 이하로 나온다. 유선 인터넷 서비스는 역시 한국이 최고다. 모바일 서비스도 한국이 좋긴 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마지막으로 마트에서 장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마트에 가면 먼저 라면과 김치를 쇼핑 카트에 넣고, 캔맥주 6팩도 넣는다. 망고나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도 고르고, 한국 사람이 음식 할 때 꼭 필요한 파, 양파, 마늘 등도 빠뜨리지 않는다. 우유와 시리얼도 잊지 않고, 감자칩을 좋아하기 때문에 lays도 두어 봉 집어 든다. 김치찌개에는 참치가 빠지면 서운하니까 참치캔도 잊으면 안 된다. 그 외에 칫솔과 치약, 비누와 세제 같은 것들도 떨어지면 새로 산다.
인도네시아 공산품의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싸다. 현지에서 나는 식품류의 가격은 한국에 비해 많이 싼 편이다. 망고가 1Kg에 3천 원 정도 한다. 그러니 3천 원이면 망고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쌀은 5Kg에 약 7천 원인데, 한국은 쌀 5Kg에 약 2만 원 정도 한다. 먼저 쇼핑 카트에 넣은 캔맥주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이네켄 작은 캔 하나에 약 2,500원이고, 현지 맥주인 빈 땅은 한 캔에 2,000원 정도 한다. 라면과 김치 같은 한국 음식은 한국에 비하면 조금 더 비싼 편이다.
이렇게 한 번 장을 보면 한국에 쓰는 비용 대비 약 70%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 생각보다 많이 싸지는 않다. 물론 현지인처럼 라면과 김치, 맥주와 감자칩 같은 비싼 것들을 빼고 장을 본다면 훨씬 싸게 장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몇 푼 아끼자고 라면과 김치, 맥주와 감자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장을 보면 약 5만 원 정도가 나가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보니까 한 달에 약 20만 원 정도가 생활 쇼핑 비용으로 나간다.
전기세와 수도세는 대략 한 달에 약 5만 원 정도 생각하면 적당할 것이다. 한국에 비해서 전기료가 싸지 않은데, 에어컨을 많이 틀기 때문에 전기세가 매달 고정적으로 4~5만 원씩 나온다.
자, 이제 집 값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을 월 단위로 모아서 전부 더해보자. 교통비 30만 원, 식대 40만 원, 물값 3만 원, 핸드폰 1만 원, 유선 인터넷 3만 원, 식료품 쇼핑 20만 원, 전기&수도세 5만 원, 다 합쳐서 102만 원이 나왔다. 한국 사람이 자카르타에서 한국에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하려면 한 달에 100만 원은 든다.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라도 자주 마시면 생활비는 그 보다 훨씬 올라갈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의 구매력을 비교하는 자료로 빅맥지수가 종종 사용된다. 2020년 현재 한국의 빅맥 가격은 3.89달러로 전 세계에서 18번째로 빅맥이 비싼 나라다. 인도네시아는 빅맥이 2.41달러로 한국 가격의 62% 수준이다. 단순히 빅맥 지수만 가지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구매력을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국에서 빅맥은 정크푸드지만 인도네시아 서민들에게는 나름 고급 음식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와르텍 백반 1,200원 vs 빅맥세트 4,000원). 노동자 평균 급여와 빅맥 지수를 함께 비교하면 실질적인 구매력 비교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최저임금보다 조금만 더 받으면 월급이 200만원 쯤 되고, 자카르타 서민들의 평균 급여는 약 35만원 정도다. 월급이 6배나 더 많다면, 빅맥 가격이 1.6배 비싼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즉, 빅맥 가격은 한국이 더 비싸지만, 급여는 그 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빅맥을 쉽게 사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빅맥 지수와는 달리 한국의 구매력은 인도네시아와 비교하여 1.6배 이상 높다.
나는 자카르타에서 매달 생활비로 100만 원을 조금 넘게 쓴다. 특별히 과소비를 하지 않고, 값 비싼 한국 식당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도 매 달 그 정도 나간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끼려 하면 그 보다 훨씬 더 아끼면서 살 수도 있다. 실제로 자카르타 현지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30~40만 원 선인데, 그 조그만 월급으로 옷도 사고, 오토바이 기름도 넣으면서 잘 다닌다. 현지 물가와 구매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나의 자카르타 체감 생활비는 한국 대비 약 70% 정도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 의견이다.
(물가가 한국의 70% 라고 하지만 공기의 질이나, 교통 등 생활 편의성도 한국의 70%인 것은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