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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Jul 20. 2020

인도네시아 역사, 제 2대 대통령 수하르토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 2부, 군부 독재의 그늘


 제 2대 대통령인 '수하르토'는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를 군부 쿠데타로 축출하고 1967년 스스로 대통령에 오른다. 군부쿠데타의 명목은 공산주의 축출이었다. 당시 전세계 모든 국가의 반공주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를 밀어내고, 무자비한 독재자 수하르토에게 대통령 자리를 안겨준 셈이다.


 2대 대통령 '수하르토'는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와 이름이 비슷하니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성이 따로 없고 이름만 있는 경우가 많다. 여권이나 신용카드를 발급하려면 성과 이름을 각각 적어야 하는데, 그러면 이사람들은 그냥 성과 이름을 대충 나눠서 적는다. 이를테면 '수하'를 이름으로 하고 '르토'를 성으로 적어 버리는 식이다. 아니면 '수하르'를 이름으로 하고 '토'를 성으로 하던지 ... 초대 대통령도 '수카르노'가 풀네임이고, 2대 대통령도 '수하르토'가 풀네임이다. 처음에 인도네시아 사람 대부분이 Family name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속으로 '뭐야 이 사람들, 근본도 없는 미개한 사람들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고, 출신 성분을 따지는(?) 나름의 문화는 있다. 그저 성씨가 없는 것 뿐이다. 그래도 '수카르노'처럼 한 단어처럼 쓰이는 이름을 성과 이름으로 중간에 자르는 것은 좀 이상하다. 아무튼 인도네시아에서는 1967년부터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내려오고, 독재자 '수하르토'가 지배하는 철권독재 시대가 시작된다.


 수하르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먼저 미국과의 관계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미국이 냉전 시대 공산주의와 맞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널리 퍼뜨린 정의의 나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미국은 정의는 관심 없고 그저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은 무엇이든 되는대로 저질렀다.  


 1960년 대 중반은 미.소 간의 냉전이 최고조로 치닫는 시기였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미국 진영의 민주주의' 혹은 '소련 진영의 공산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며 친 공산주의 성향을 보인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미국은 인도네시아가 공산화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수하르토 군부가 정권을 찬탈하는 것을 물밑에서 밀어줬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든 말든, 인도네시아가 공산주의화 되는 것만 막으면 됐던 것이다. 사람 목숨 보다 공산주의를 몰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전에 있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살바도르'를 보면 미국이 엘살바도르에 공중 폭격기를 띄워서 민간인을 무차별 폭격을 하는 내용이 있다. 엘살바도르 내전은 군부 세력과, 시민군 사이의 싸움이었지만, 시민군이 공산주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반공주의인 군부 세력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지원한 반면, 시민군을 향해서는 폭격기까지 띄워서 학살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영화 '살바도르'는 지금 봐도 명작이다. 아무튼 그 때의 미국은 그랬다. 인도네시아와 살바도르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농간에 의해 내전이 심화되고, 정치가 오히려 불안정해지는 역사를 겪어 왔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수하르토는 1921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수하르토는 네덜라드 식민정부로부터 교육을 받은 후 1940년 네덜란드 식민지군에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그러다가 1942년 일본 제국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자 이번에는 일본군이 지원하는 군대에 장교로 입대하였다. 마치 박정희가 만주국 장교로 활동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1945년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하고, 인도네시아 독립진영이 독립을 선포하자, 인도네시아 국군의 전신인 인민보안대로 소속을 옮긴다. 1945년 일본이 물러가자 네덜라드가 다시 쳐들어와 1948년까지 인도네시아를 약탈하는데, 이번에 수하르토는 네덜란드에 맞서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한 편에서 싸운다. 당시 1945년에서 48년 사이의 독립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인하여 수하르토는 군부 내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수하르토는 처음에는 네덜라드 식민지군 부사관이었다가, 친일파 군대 장교였다가, 다시 독립군 장교가 되었으니 그 때 그 때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아주 잘 찾아서 살아 남았다 할 수 있다. 

 수하르토는 쿠데타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사람을 죽였다. 인도네시아의 군부 쿠데타에는 박정희의 5.16이나 전두환의 12.12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학살이 뒤따랐다. 수하르토의 쿠데타는 9.30 쿠데타라 불리는데, 이 9.30 쿠데타 과정에서 학살된 사람은 약 100만명이며, 투옥된 사람은 약 200만명에 달한다.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정부 시기에 인도네시아에는 약 300만명의 공산당원이 있었는데, 그 많은 공산당원들이 9.30 쿠데타 과정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수하르노와 그 추종자들은 1965년 9.30 쿠데타 직후부터 약 1년 동안 살인을 즐기듯이 자행했는데, 그 살해 방식이 워낙 잔인하고 살인에 대한 기준도 뚜렷하지 않았다. 학살자들의 눈에 잘 못 비치면 아무나 닥치는대로 죽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공포에 떨수 밖에 없었다. 학살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반대세력이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학살은 공식적으로는 정부군이 아니라 군부를 등에 업은 시민 자위대가 주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북청년단 쯤 되는 이슬람 민병대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마구 죽이고 다녔다. 이 끔찍한 양민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에는 당시 학살 주도자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무용담(?)을 고백하며 사람을 죽인 방식을 재연하기까지 한다. 액트오브 킬링은 감상하기에 편안한 영화는 아니지만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출처 : 유튜브 액트오브 킬링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7D8AuWMaxjo ] 


 그렇게 수백만의 피를 재물 삼아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수하르토는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학살로 잡은 권력은 더 많은 학살을 통해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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