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신뢰를 낳는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 2nd -

by 글짓는 목수

"간호사가 다르게 읽어준 것은 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거야. 난 쓰여 있는 대로 읽었어. 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난 진실을 좋아하지 않아."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3부, 410p -


진실이 불편하다면 알지 않는 것이 좋을까? 그럼에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면 그건 무엇 때문인가? 그건 불편한 진실을 모르면 자신의 삶이 기만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속이는 자가 있고 속는 자가 있다. 속이는 자는 속는 자를 필요로 한다. 속이는 자는 진실을 은폐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더 많은 이익과 혜택을 누리면서 그들 위에 계속 굴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유도 모른 체 불이익과 피해와 억압을 당하지 않으려면...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in 乘鶴山


최근 한국 증시가 활황이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돌파하며 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여러 요인 중 한 가지를 꼽아서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을 읽다가 문득 서두의 구절을 읽으며 떠오른 상념이 읽던 책을 멈추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바른생활 콤플렉스


[바른생활]이라는 교과서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이 교과서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이런 교과서가 있었다. 이건 지금으로 치면 윤리나 도덕 교과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윤리도덕을 비롯해 바른 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숙지해야 할 질서와 예절도 가르친다.

[바른생활]

소설 속에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쌍둥이(루카스=Lucas & 클라우스 Claus)가 등장한다. 그들 중 한 명이 병원에 머물게 된다. 전쟁은 병원을 학교로 만들었다. 전쟁으로 버려진 고아나 다친 아이들이 모여서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가르침과 지도를 받는다. 간호사는 교사의 역할을 한다. 그럼 몇 없는 의사는 아마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주인공은 병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온 편지를 대신 읽어준다. 그런데 거짓말로 지어내서 읽어준다. 마치 자신이 소설가가 된 듯이 편지 내용과는 반대로 읽어준다. 부모가 보내준 사랑스럽고 다정한 편지의 내용은 악마의 저주를 퍼붓는 편지로 바뀌어 아이들에게 들려진다. 그 사실이 간호사를 통해 들통나면서 그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자신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준 것이라 말한다.


이건 진실이 불편한 경우에 벌어지는 일일까?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바른생활대로 사회에 나가서 살면 어떻게 되는가?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경우를 보기 드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이 가난하고 쉽게 사기당하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와 학교가 교육하고 알려준 데로 열심히 배우고 따라 하면 성공하고 부유해질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개인 과외를 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방식, 편법과 탈법으로 더 많은 돈을 번다. 바르게 돈을 버는 것은 바보짓이다. 왜 자신의 노동으로 일을 해서 열심히 살면 계속 가난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각종 자산들은 계속 증식되고 불어나서 이제 급여의 상대적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교에서 교육받은데로 근면한 노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하는가? 과거 모든 정치인들이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고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천언했지만 그들은 왜 그러지 못했는가? 안과 밖이 다른 모습의 괴리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투자의 전제는 신뢰이다.


월급이 자산 가치의 증가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음은 이제 모든 국민이 알게 되었다. 걔중에 아직도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소외 계층과 무지한 계층도 존재한다. 그들은 아예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사회가 보듬고 부양해할 사람들이다.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면서 투자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자신의 노동이 여과 없이 자신의 소득으로 직결되는 사업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투자가 병행되고 얻는 만큼 잃을 위험도 크다. 하지만 사회와 국가가 안전한 신뢰망을 구축하면 이 실패율은 떨어진다. 시장도 실패율이 떨어질 거란 믿음이 전제되면 반응하게 되어 있다. 한국은 저평가되어 있었다. 불신 때문이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정치는 사회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이 주가조작과 사익을 취하기 위해 입법과 사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국가에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내국인은 호도하는 언론과 사기꾼들에 속아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물 밖에서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외국자본은 그렇지 않다. 내부인을 내부를 명료하게 볼 수 없다. 정치인 입김으로 기업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나라에 자신의 피 같은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이건 전 세계 투자자들이 같은 마음이다.


왜 미국 시장(뉴욕과 나스닥)에 가장 큰돈이 몰리는가? 왜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생겼는가? 미국이 가장 투명한 시장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은 자본시장법은 아주 엄격하다. 시장을 교란하거나 위법을 행하는 자에게 관용이란 없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이런 금융 사기범들을 솜방망이 처벌로 다뤄왔다. 평생을 일궈온 재산을 송두리째 뺏앗아 먹는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 만약 그런 자가 정치인이면 형을 다 살지도 않고 조용히 출소해서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왜 앞에서 국민들에게는 바른생활을 떠들어대고 교육시키면서 그들은 왜 그 반대의 행동들을 일삼는 것인가? 이 모순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부와 권력에 취했기 때문 아닌가. 이건 도박의 원리와 같다. 확률이 낮은 곳에 배팅하면 금액이 커지는 원리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여론 몰이와 바른 소리로 한 곳으로 몰아넣고 다른 곳에서 터뜨리면 횡재를 할 수 있다. 도박의 기술이다. 기만이다. 도박이 사기로 변질되기 가장 쉬운 사행성 사업이 아니던가? 때문에 카지노는 철저한 관리대상이다. 카드놀이나 각종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포커페이스와 상대를 현혹하는 말솜씨등으로 상대의 정신을 딴 곳으로 옮기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기만 전술이다. 전쟁과 경쟁과 비즈니스에선 이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술이 국가와 정부를 움직이는 자들이 사용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정치인이 왜 부자가 되는지는 이와 연관이 깊다. 정치인이 되려는 목적이 부를 쌓기 위한 것인가? 부를 쌓으려면 기업인이 돼야 맞지만 권력은 언제나 돈을 탐내고 돈은 권력을 무서워한다.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명예로운 사명이지 부를 쌓는 직업이 아님에도 정치인이 돈 욕심을 부리면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될 순 없지만 이것에 가장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던가? (지금은 좀...) 기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기업인의 경영관리 능력으로만 평가되고 판단되는 곳이 가장 이상적인 시장이다. 미국이 그런 점에서 그것을 가장 잘 관리했기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실리콘 밸리로 모여들었던 것 아닌가? 능력과 실력 있는 또라이 천재들이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 경제발전과 기술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는 쥐어짜는 경제 시스템의 끝났다. 그건 20세기 이전의 경제 발전 방식이다. 이제는 기술의 혁신과 발상의 혁신이 기업의 흥망 성쇠를 결정하는 시대이다. 효율은 AI와 로봇이 대신할 것이다.


투자 심리 -브랜딩과 마케팅


코스피 5000은 한국 자본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25년 말 기준 외국인의 코스피 점유율이 35%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한다. 이건 역대 최대치이다. 정치적 불안의 해소는 한국 시장의 신뢰도를 올렸다. 외교를 통한 국가적 위상이 올라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외교력은 국가의 대외 신임도를 올리고 그건 결국 국가 경쟁력이 된다. 물론 국가의 기본 체력과 산업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을 어떻게 잘 포장하고 대외적으로 디스플레이하느냐는 국가 정부의 역할이 아주 크게 작용한다. 이전에는 정부가 그것을 못해서 국가 신임도와 경쟁력을 오히려 깎아 먹은 격이었다. 기업도 브랜딩과 마케팅이 중요하지만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이 함께 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된다.

코스피 5000 시대

자본 시장은 냉정하고 또한 정확하게 반응한다. 자본은 피도 눈물도 없지만 신뢰성과 수익성이 높은 곳에는 반드시 모여들기 마련이다. 일단 돈이 한 번 모여들기 시작하면 더 많은 돈이 따라 들어온다. 돈은 돈을 모은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과 같다. 목적없이 구경하러 몰려드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관광객도 그 도시의 번화가는 꼭 한 번 들린다. 일단 그곳에 가서 돌아다니면 돈 쓸 일이 생기게 된다. 소비는 언제나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다. 투자 심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식에 관심 없던 사람도 이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본 시장은 철저한 분석이 전제되지만 그 이후에는 심리전이다.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부, 35p –


전쟁으로 서로를 기만해 살육하는 시대에 진실은 감추어지게 마련이다.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시대에 교육은 진실을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그걸 알았기에 교육받지 않았다. 둘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세상을 명확히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었다. 불편하지만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른다는 것은 때론 그 시스템 밖에서 머무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이 정상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은 엄청난 위기를 극복했기에 엄청난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위기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기회의 시작은 진실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불편했던 진실들이 드러남으로 신뢰가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시켰다. 공개적인 토론과 회의들 그리고 모든 정책 결정에 있어서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장을 만들어 주는 모습들이 국내외 신뢰를 얻은 것이라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 세계의 피 같은 돈들이 한국으로 몰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계엄

알다시피 인간이 구축한 세상은 허구이다. 돈도 국가도 기업도 모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들에 강력한 믿음(신뢰)을 부여함으로써 힘을 가지는 것이다. 이 신뢰는 진실에 기초한다. 물론 진실을 완벽히 은폐할 기술적 능력 혹은 시스템이 있다면 가짜 진실로 호도해도 상관없다. 모르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더 큰 힘을 가져올 수 있다. 나라가 부강해지고 내 삶이 풍족해지면 이념이나 색깔 싸움은 어느샌가 사그러든다. 누구도 3차 세계대전을 원치 않는다. 그건 누구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인지는 역사에서 다 배우지 않았는가? 무지한 자는 과오를 반복하지만 역사에서 배운자는 그렇지 않다. 전쟁의 희생양은 언제나 돈 없고 힘 없는 국민들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야 좀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느냐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사구시 (實事求是)


실사구시(實事求是), 과거 정약용 선생의 말처럼 정치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사실’은 이제 완전하진 않아도 ‘진실’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명제가 더해져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언론도 TV, 인터넷도 없었기에 은폐, 눈속임이 쉬웠을 것이다. 진실을 만들어서 퍼뜨릴 수 있었을 시대다. 그때엔 저작거리에 퍼지는 이야기들이 진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의혹과 의문이 없을 순 없지만 토론과 대화를 통해 계속 풀어가려는 노력이 따라야만 사회와 공동체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 이건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간 대화와 교류가 많아져야 신뢰가 쌓인다. 이 대화와 교류는 상하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여야 한다. 그럼 서로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와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공통의 진실은 공통의 목표를 가져다 준다. 왜냐, 진실의 공유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것이 함께할 신뢰를 만들기 때문이다. 진실에 기반한 신뢰가 구축되면 공동체는 성장한다. 모두가 세계도 하나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면 그 자리엔 진실된 신뢰가 자리 잡는다.

진실이 신뢰를 낳는다.


당신은 진실로 신뢰적인가?


Ágota Kristóf [The Notebook, The Proof, The Third Lie: Three Novels] in 止觀書架 (박상진 호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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