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 필요한 이유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다가 떠오른 상념

by 글짓는 목수

"우리는 왜 불륜 문학 앞에서 불편해지는가?"


문학을 오래 읽다 보면 이상한 감각이 따라온다. 불륜은 분명 사회가 금지한 행위인데, 소설 속에서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아름답게 묘사되며, 심지어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그 순간 우리는 불편해진다. 윤리적으로 틀린 선택을 한 인물에게,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가. 왜 비도덕적인데 아름다운가...




또다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채식과 폭력 그리고 예술과 외설 사이의 불륜. 거기서 질문이 생겨 잠시 멈췄다. 그리고 또 한 편의 글이 시작되었다. 독서 모임 호스트가 되어 발제문을 만들기 위해 다시 읽게 되었다. 벌써 3번째 재독이다. 이제 술술 읽힌다. 하지만 불편함은 더해졌다. 10년 전 독서 초보가 접했던 이 책은 거북함과 불쾌함 그 자체였다. 10년이 지나고 3번째 읽는 이 책은 이제 불편한 이해와 다소 어색한 공감이 섞여 들었다. 최근 1~2년 사이 문학 작품을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커져가던 질문이었다. 문학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륜이라는 소재가 나에게 ‘왜일까?’라는 불편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한 강 [채식주의자]

여기서 말하는 ‘불편함’은 단순한 도덕적 거부감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우리가 인간을 판단하는 방식이 어긋나는 순간에 생기는 균열이다. 우리는 문학이 우리 편이기를 원한다. 옳은 편에 서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학은 종종 우리를 배반한다. 그리고 그 배반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문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문학은 정말 불륜을 옹호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는가.


문학은 윤리가 아니다


문학은 윤리를 쓰지 않는다, 인간을 쓴다. 문학은 윤리 교과서가 아니다. 문학의 임무는 옳음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문학은 언제나 옳음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이 흔들리는 지점을 기록한다. 윤리는 안정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나 문학은 안정이 아니라 붕괴를 따라간다.


불륜은 그 붕괴의 가장 선명한 형태다. 불륜에는 이미 모든 서사적 요소가 들어 있다. 욕망과 죄책, 비밀과 배신, 사랑과 책임, 구원과 파멸. 작가는 갈등을 만들 필요조차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순간, 세계는 이미 그들을 심문하고 있다. 그 사랑은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을 향해 간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문학이 불륜을 쓰는 이유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학이 관심을 갖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에 이르게 한 인간의 상태와 그 인간이 처한 환경이다. 문학은 늘 질문한다. 왜 이 사람은 지금 이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대부분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를 향해 있다. 인간의 삶은 윤리로 설명할 수 없다.


존재의 확인


불륜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문학 속 불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히 성적 욕망에서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권태에서, 공허에서, 자아 상실에서, 늙어감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 인간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불륜은 사랑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 회복의 시도에 가깝다. 지금의 직업, 지금의 결혼, 지금의 역할 속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때, 인간은 누군가를 통해 다시 ‘나’를 확인하려 한다. 누군가의 눈 속에서, 누군가의 손길 속에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한다. 불륜은 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위험이다. 그것은 단순한 관계의 일탈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이 불륜을 오래 붙잡는 이유는, 그 선택이 인간 존재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화처럼 느껴지는 이유, 이해가 먼저 오기 때문이다.


문학이 불륜을 다룰 때, 독자는 종종 윤리보다 감정에 먼저 도착한다. 주인공의 선택은 분명 잘못되었는데, 그의 고독은 설득력이 있고, 그의 갈망은 진실해 보인다. 그때 우리는 판단을 미루고, 이해부터 하게 된다. 만약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이해를 넘어 공감에 이른다. 여기서 독자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미화’라는 착각을 만든다.


그러나 문학은 불륜을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학은 불륜을 하는 인간의 의식을 따라가며 보여줄 뿐이다. 인간을 끝까지 이해하면, 죄는 덜 악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옹호나 변론이 아니라 탐구와 해부의 결과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끝내 파국으로 간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죽는다. 대부분의 불륜 서사는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학은 냉정하다. 욕망은 아름답지만, 그 대가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끝내 보여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전 문학은 비극적이다. 문학은 판결하지 않는다.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남겨 둔다. 고독과 상실, 공허와 침묵 속에 인물을 세워 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독자를 불러 앉힌다.


불륜의 의미 – 공동체와 개인의 충돌


문학이 불륜을 쓰는 이유는, 작가가 그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직접적이지 않게 간접적으로 독자 스스로 그 질문을 만들어낸 것처럼 묻는다. 그것이 공동체와 개인의 충돌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간을 보호하는가, 아니면 서서히 지우는가. 책임은 인간을 완성시키는가, 아니면 질식시키는가. 욕망을 억누른 삶은 윤리적인가, 아니면 비인간적인가.


불륜은 이 질문들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그래서 불륜 서사는 늘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다. 사랑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동체와 개인, 제도와 인간, 규범과 욕망, 책임과 자유의 문제다. 문학은 불륜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삶의 구조를 흔든다.


이때 문학은 위험해진다. 독자의 윤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확신을 흔들고, 판단을 유예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문학은 가장 솔직해진다. 솔직함은 종종 불편함을 부른다. 그래서 문학을 쓰는 자는 그 불편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순문학은 순수해서 불편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117p -


영혜의 순수함은 누군가에겐 영감과 환희를 주었지만 누군가에겐 고통과 파멸을 가져다주었다. 현실의 삶에서 순수해진다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순수한 물(증류수)은 몸에 해롭다. 우리가 아이처럼 순수하게 살 수 없는 이유이다. 아이가 순수하고 솔직한 건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나 같은 어른에겐 허락되지 않는 모습이다.


선을 넘기 위한 예술


우리는 왜 끝내 불쾌함을 느끼는가. 불륜의 문학 앞에서 우리가 불쾌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예술 속에서도 선을 지키길 바란다. 우리는 문학이 우리 편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학은 종종 우리를 곤란한 자리로 데려간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륜은 변명할 수 없는 선택이다. 동시에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그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겨왔던 욕망과 공허를 드러낸다. 문학은 그 순간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그 얼굴을 전혀 낯설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도 있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 잊고 살아서 다시 마주하니 어색한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게 자신일 줄을 몰랐을 뿐이다.


위험하지만 정직한...


문학은 불륜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읽는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은 불륜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질문이다.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善 or 線)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보여줘야 하는가. 문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윤리도덕 수업이 아니다.


문학은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나)을 보는 것이다. 문학이 불륜을 다루는 이유는 불륜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순간 인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라,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학은 불륜을 옹호하지 않는다. 문학은 불륜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끝까지 이해하려 할 뿐이다. 그래서 문학은 위험하다. 그리고 순수하며 동시에 인간에 대해 가장 정직하다.


우리가 순수하지 못하고 정직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문학을 통해 그런 자신을 볼 수 있기에...

한강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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