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요즘
글을 쓰면서 자주
내가 아니라
누가 먼저 이 문장을 떠올렸는지 묻는다.
아니,
누가 아니라
무엇이 먼저 썼는지를.
플롯을 짜고,
눈물의 위치를 계산하고,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손.
차가운 키보드 위
그 손 끝에는 체온은 없고
후회나 망설임도 없다.
그렇게 문학은
조용히 인간의 손을 떠난다.
처음부터 장르란 없었다.
이야기는 노래였고,
철학은 기도였으며,
사유는 신화였다.
장르는 나중에 만들어졌다.
나누기 위해, 가르치기 위해,
평가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
그 질서부터 AI에게 넘어간다.
규칙은 학습될 수 있고
학습이 복제될 수 있다는 사실.
불편하지만 이건 이미 오랜 인간의 역사였다.
우리는 고전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있지 않은가...
시공간만 바뀌었을 뿐...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있다.
그 글은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며,
철학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하다.
이야기처럼 걷지만 목적지가 없고,
논증처럼 말하지만 결론이 없고,
시처럼 울리지만 운율에 갇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장들 속에서
한 인간의 생애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병과 고독,
분노와 좌절,
끝내 남겨진 한 줄기의 위험한 확신.
그 글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 글은 한 세계를 건넨다.
AI는 문장을 잘 만든다.
그러나 AI는 시간을 살지 않는다.
사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틀린 생각을 오래 붙잡는 시간.
어느 날 그것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말이다.
부끄러운 세계관으로 몇 해를 건너왔다.
그래서 인간의 좋은 문장은
종종 불완전하다.
논리 사이에 균열이 남고,
확신 속에 의심이 남는다.
그러나 바로 이 모순의 자리에서
문학이 태어난다.
앞으로
잘 만들어진 문학은 넘쳐날 것이다.
지금도 넘쳐나고 있다.
안정된 플롯,
오류 없는 매끄러운 문장,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
그러나 인간이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잘 만들어진 글이 아니라
잘 살아낸 글이 아닐까...
소설인지 시인지 알 수 없는 글.
이야기 같기도 하고
고백 같기도 하며
사유 같기도 한 글.
평가하기 어렵고
요약하기 힘들며,
추천 목록에 잘 오르지 않는 글.
그건 그 글들이
정보를 주지 않고,
한 인간의 시간을 건네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야기는 AI가 가장 많이 쓸 것이다.
인류가 여태껏 쌓아온 이야기 보다 더 많이.
그리고 인간은
그중 몇 편만을 조용히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좁은 자리에서,
아주 느리게 쓰이는 글들이 남을 것이다.
한 존재가
시간을 통과하며 남긴 흔적,
장르의 바깥에서 태어난 문장.
나는 믿는다.
그곳은
AI가 가장 늦게 도달할 곳이 아니라
어쩌면
끝내 도달하지 못할 곳일지도 모른다는...
문학은 결국 이렇게 남을 것이다.
잘 쓰인 글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오래 살아낸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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